2월 마지막 주, 개강과 새 학기를 맞이하는 입장에서는 끝나가는 방학에 안타까움을 느끼겠지만,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신입생들은 설렘을 갖는 시기일 것이다. 영화 창작자들도 이즈음에는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영상위원회 등이 마련하는 각종 지원사업을 앞두고 자신의 소중한 시나리오를 한창 다듬고 있는 시기이다. 자신의 촬영 현장을 막 상상하면 괜히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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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신이 온다’(2000) 포스터. |
봄을 맞는 풍경들이 그래야 하는데… 비상사태에 돌입한 현재 상황에 맞물려 마구 울어대는 각종 미디어와 긴급재난문자 때문에 따뜻해지는 날씨와 달리 사람들의 마음은 풀리지 않고 있다. 이토록 사람들이 움츠러듬에도 새순은 피어오르면서 봄은 올 테고, 새로운 시작이 있으면 지금의 상황도 끝이 날 것이다.
새로운 시작과 걸맞게 최근 부산영상위는 새로운 운영위원장을 선임했다는 소식과 올해 추진되는 각종 사업의 요강을 발표했다. 부산의 영화 정책을 수립하고 영화예술과 산업에 관련된 각종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부산영상위는 수장의 부재로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지역 영화인과의 소통도 소원해지는 듯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설립 20년 만에 처음으로 임명이 아닌 공모의 방법으로 새로운 위원장을 선출하는 과정은 그만큼 신중했고,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새로운 위원장이 보여줄 행보에 대해 부산 영화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표층은 잠잠하지만 여기저기 눈동자 굴리는 소리들이 요란하다.
영화 ‘귀신이 온다’(鬼子來了·Devils On The Doorstep.2000.강문)는 1945년, 중국 북부의 철건리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군’의 병영이 있는 철건리에 살고 있는 마다산이라는 사내는 어느 날 밤 정체불명의 ‘나’라는 존재로부터 ‘일본군’과 통역관이 들어 있는 자루 두 개를 건네받는다. ‘나’는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자루를 잘 보관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죽이겠다는 협박을 남기고 떠난다.
이후 철건리 사람들은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거나, ‘일본군’에 발각될까 봐 두려움에 떨며 6개월간 자루를 보살피게(?) 된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짓게 만드는 것은 ‘나’와 ‘일본군’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타자로 인해 만들어진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은 철건리 사람들을 점차 옥죄어 간다. 6개월이 흐른 뒤 철건리 사람들이 변화하는 순간은 ‘두려움’이 ‘기대’로 변하는 때다. ‘나’가 돌아오는 것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루를 일본군에게 건네면 보상을 받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는 철건리 사람들의 생각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본인들은 자루를 억류한 것이 아니라 잘 보살폈으므로 오히려 일본군이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다다른 이들은 자루 속 일본군을 앞세워 일본군 병영을 찾아가게 된다. 그날은 1945년 8월 15일이다. 영화는 철건리 사람들을 ‘도무지 어찌할 바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은 귀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봄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 역시 눈앞에 귀신을 둔 것처럼 움츠러들고 있지는 않은가? 벌어지는 상황에 그저 맞추는 것이 아닌 주변의 환경과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 시기다. 새로운 부산영상위에 지역의 영화인들 또한 지원사업의 단순 수용자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또 다른 주체로 인식되는 기반을 마련하고 소통을 넓혀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2월도 다 지나는데, 시나리오는 한 줄도 안 나가고. 나만 그런가 싶어 아직 춥다.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