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소 연주로 시작한 첫째마당
- 소녀를 주저앉힌 역사적 과오
- 굿처럼 풀어내 위로한 둘째마당
- 탈꾼 망라 놀아제낀 마지막까지
- 공연 열린 민주공원 소극장 들썩
카를 로젠크란츠는 ‘추(醜)의 미학’에서 ‘추’는 항상 미에 자신을 비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추’가 미를 위한 수단은 아니지만, 미와 떨어져서도 가치가 있는 자율성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반면 아도르노는 ‘추’를 재료(언어, 색, 음 등)의 일탈, 무정형의 형식, 조화의 불가능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무기력한 미의 관점을 지양하고, 현실의 추함을 ‘추’로써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악한 현실을 ‘추’로 막아내는 전략이 아도르노 ‘추의 미학’의 핵심이다. (엄경희, ‘추의 유효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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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의 2020 맞이 굿 탈판 5 ‘거리굿 소녀상 일어서다’의 한 장면. 박병민 사진가 제공 |
이는 하찮고 추해서 가치 없다고 배제당한 것들이 도리어 진짜 추한 것은 현실 세계가 아니냐고 따져 되묻는 전통 연희의 미학과 통한다. 탈춤의 탈은 하나 같이 이목구비가 일그러지고, 말과 행동이 못나고 추하다. 문둥이가 그렇고, 할미가 그러하다. 아도르노가 현대예술의 뚜렷한 경향이라고 말한 추함이 우리 탈춤에 있다. 그러니 탈춤은 전승 예술이면서 현대예술이다.
지난 14일, 15일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창작 탈춤패 지기금지가 마련한 2020 맞이굿 탈판 5 ‘거리굿, 소녀상 일어서다’(이하 ‘맞이굿’)는 예쁜 춤 하나 없이 2시간 50분 동안 관객이 몰두하게 했다. ‘추의 미학’이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는데, 3시간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전 판보다 역대 최고급이라는 말도 들렸다. 공연 전에 이미 판이 열린 것이다. 소문은 길놀이가 되어 듣는 이를 들뜨게 하고, 터 벌임이 되어 민주공원을 거리, 마당, 굿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탈과 춤과 불림으로 민중의 삶을 역사화한 이 시대 거리굿을 엮었다’는 지기금지 채희완 대표의 말은 이 작품을 잘 표현한다. 굿이 개인과 공동체의 아픔을 품고 해원한다면, ‘전승 탈춤의 핵심 중 하나가 당대 사회문제의 민중 언론화’이고, ‘이 시기 민족의 아픔인 소녀상을 중심 내용’으로 삼는다는 이 공연은 ‘굿’임이 분명하다.
공연은 세 마당으로 엮었다. 촘촘하게 짠 것이 아니라 얼기설기 엮었다. 성긴 틈 여기저기에서 찰진 참견이 파고들고, 의외의 신명이 불쑥 올라와도 당황하는 이 하나 없다. 마당 판이다. 첫째 마당에서 석종관 선생의 태평소 연주가 소극장을 날카롭고 두툼한 가락으로 채운다. 태평소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강용의 통영 할미는 어깨를 좁히며 앉은 관객을 들썩이게 한다. 춤 위주로 엮었다지만 춤이 춤으로 그치지 않고 소리를 타고 재담에 얹힌다.
둘째 마당은 공연의 중심으로 소녀상이 일어서는 거리다. 소녀는 시간을 거슬러 아픔과 상흔을 부여잡고 제대로 늙지도 못한 채 차가운 거리에 앉아있다. 소녀가 일어서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당위다. 소녀상이 일어서는 극적 설정은 현실에서 돌파해야 할 모순이다. 일본 영사관 앞 소녀상에 도로 점용료를 물리겠다는 어이없는 행정의 모순, 소녀를 주저앉힌 역사적 과오를 끝내 부정하고 외면하는 파렴치한 모순을 극복하고 소녀상은 일어서야 한다. 굿은 지극히 현실적인 행위라서 굿에서의 바람이 현실에 투영되지 않는다면 굿은 생명을 잃는다. 소녀상이 일어서는 극적 설정이 곧바로 현실 과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셋째 마당은 뒷전이다. 70, 80년대에서 지금까지의 탈꾼을 망라해, 놀고 자빠지는 대동 마당을 열었다. 신·구 탈꾼과 악사들, 기라성 같은 춤꾼들을 한 무대에 모은 것만으로도 공연은 독보적 의미가 있다. 빛나는 기획에 더해 고마운 일은 이 공연이 2018년 12월 10일 세 번째 맞이굿 탈판을 기획하던 중 작고한 생명 문화 기획자 고 강희철 1주기 헌정 공연이라는 점이다. 사회가 당면한 큰 문제를 다루는 것만큼 먼저 간 동료를 불러 같이 노는 것도 중요하다. 개인의 해원이 공동체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의미를 담은 이 공연을 야외마당에서 펼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도, 극장 무대를 이렇게 난리 굿판으로 만드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도 싶다.
춤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