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미대 학장으로 근무 했으나
- 귀화 안해 추방된 뒤 유라시아로
- 쓸쓸함·절망 담은 ‘자화상’ 부터
- 소수민족 인물화·풍경화 등 남겨
- 신세계갤러리서 대규모 회고전
그림 속의 남자는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오른손은 왼손을 감싸고, 눈썹 사이인 미간은 골이 생긴 듯 어둡다. 할 말이 있지만 뭔가 주저하는 듯 전전긍긍하는 표정으로 속사정이 복잡해 보인다. 작가는 작품을 다 그리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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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의 소나무(1987년 작) |
카레이스키(옛 소련 고려인)’ 변월룡(펜 바를렌·1916-1990) 작가의 작고 30주기를 맞아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린 회고전 ‘변월룡,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천재 화가’에 걸린 ‘자화상(1963, 유화)’이다. 당시 그는 자신이 고국인 북한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의 고독과 쓸쓸함, 절망으로 무너진 심정을 그림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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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활동계획을 짜고 있는 최승희(1954년 작) |
이번 전시는 ‘젊은 날의 명화’ ‘고국 방문’ ‘유라시아를 거닐다’ ‘삶의 황혼기’로 나눠 그의 일대기에 초점을 맞췄다. 학창 시절 수련 과정을 짐작해볼 수 있는 습작부터 북한, 러시아 사할린에서 포르투갈까지 유라시아 전역을 다니면서 그린 작품, 만년에 과거를 회상하면 그린 작품은 물론 초상화와 동판화까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 3점을 포함한 94점이 전시된다.
작가는 러시아 연해주 쉬코토프스키구역의 유랑촌에서 태어나 호랑이 사냥꾼인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1940년 러시아 최고·최대의 미술대학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레핀 회화·조각·건축 예술대학’(이하 레핀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해, 1951년 같은 학교의 교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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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의 M.P. 알렉세예브(1977년 작) |
그는 “나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호랑이를 쫓아 연해주에 왔지만 너는 꼭 고국으로 돌아가 살아라”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월룡’이란 한국식 이름을 고수하며 한국인으로 살려고 노력했으나, 고국에서의 삶은 1년 3개월(1953년 6월~1954년 9월)에 그쳤다. 당시 북한 당국의 초청으로 평양미술대학 학장 겸 고문으로 취임했지만 귀화 요청을 따르지 않아 추방됐다.
작가는 초상화에서 유화·데생·석판화·에칭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림에는 각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배어있을 뿐만 아니라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인종 차별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에겐 늘 ‘소수민족’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빼어난 실력에도 정교수가 되기까지 24년이 걸린 것을 참고하면 인종차별을 당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회화를 전공했지만 판화 중 동판화가 뛰어나 동료 교수들로부터 “판화는 렘브란트를 뛰어넘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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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화상(1963년 작) |
그의 그림은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 ‘백 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 변월룡’에서 처음 국내에 소개됐다. 냉전시대에 소련 주류사회에 속했던 작가였고, 북한에서 잊혀진 탓에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그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미술평론가 문영대 씨가 1994년 국립러시아미술관에 전시된 작가의 그림을 발견했고 20년 넘게 작가를 연구하는 한편, 끈질기게 유족을 설득한 끝에 국내 전시가 성사됐다.
신세계갤러리 관계자는 “작가의 일대기에 초점을 맞춰 나무보다는 숲을 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의 작품세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 달 29일까지.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