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폭 속 수많은 문자 눈길
- 조현화랑 22일까지 개인전
오페라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조현화랑 해운대점에서 이런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리처드 케네디(사진)의 개인전 ‘missed connection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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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화랑 해운대점에 전시된 리처드 케네디의 ‘OPTIONS’. 조현화랑 제공 |
작가는 화가이면서 오페라 각본을 쓰고 작곡·연출을 하는 음악가다. 그에게 오페라와 그림은 한 몸과도 같다. 지난해 9월 27일부터 10월 25일까지 약 한 달 동안 독일 베를린의 갤러리 ‘페레스 프로젝트’에서 개인전 ‘(G)hosting’을 열기도 했다. ‘관객이 없는 오페라’를 주제로 화이트 큐브 형태인 공간에서 회화·영상·조각은 각각 오페라 배우·음악·무대처럼 역할을 했고,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은 오페라 관객이 됐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오페라에 푹 빠져 있었다. “미국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을에 ‘소그 오페라하우스’가 있었는데, 2달러만 내면 공연 전 연습 과정인 리허설을 볼 수 있었다. 한국 나이로 보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오페라를 즐길 수 있었다.”
작가는 이후 오페라가 가진 다양한 기호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구조 안에서 자신이 수많은 역할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낼 수 있다. 극의 서사, 시적인 가사, 가수의 가창력, 아름다운 음률, 시대를 대변하는 의상, 웅장한 무대장치 등이 어우러지면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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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케네디 |
이번에 전시된 그림은 8점으로 모두 오페라 대본을 시각예술로 표현한 작품이다. 화폭에는 수많은 문자가 등장하고 있다. 작품 ‘OPTIONS’와 ‘Huffing Tons’ 등에는 각각 ‘WroNs yaw siht wate choice that way wroNG’ ‘EXTRA blast TWAL VVVV thrash’라는 알 수 없는 글귀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각 문자는 독립된 주체처럼 자신만의 글씨체와 크기를 가졌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들은 대본을 반복해서 읽는 행위를 상징한다. 가수는 리허설에서 한 소절을 다양한 억양·톤·크기로 반복해서 말하고 노래한다.”
작가는 그림에 성 소수자 공동체가 사용하는 언어이자, 매스컴의 검열을 피하고자 고안된 일종의 암호를 넣기도 했다. 은연중 혹은 의도적으로 보는 이의 참여를 유도하는 그림이다.
그는 이번 작품을 그릴 때 테크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을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며 반복적으로 문자를 써나갔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큰 붓을 이용해 캔버스 전체를 쓸어내렸다. 관람객과 그림이 전달하는 메시지 사이에 경계, 일종의 막이 형성된 셈이다. 조현화랑 윤보람 큐레이터는 “춤은 붓 없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라고 표현하는 작가에게 그림이란 캔버스 표면에 박제된 춤의 잔상일 것이다. 이 수고스러움은 성 소수자 공동체의 상황을 은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작가는 미국 바드 대학교 (Bard College)의 밀턴 에버리 인스티튜트 (Milton Avery Institute)에서 석사학위를 마쳤고, 지난해 첫 개인전을 ‘페레스 프로젝트’에서 열었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며 최근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 할렘 스튜디오 뮤지엄에서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오는 22일까지. (051)746-8660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