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일상다움을 잃어 큰일을 치르듯 살아가는 요즘이다. 책방 문을 닫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지낸 지 일주일째. 집에만 있어도 위태로움이 엄습해 생활이 곡예가 되어간다. 안심을 잃은 날들 속에서 밀린 책이나 보려고 했는데, 몇 장 읽지도 못하고 관심은 TV 뉴스로만 향한다. 그렇게 종일 뉴스를 보다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어떤 것이 자꾸만 나를 붙잡는다. 화면 우측 하단에 작게 나타나거나 때론 같은 크기로 잡히는 수어 통역사였다. 처음엔 그저 이야기들이 번역되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는 이 말들이 수어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피게 됐다. 수어는 나의 언어가 아니어서 그저 어떤 단어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다였지만 말이다. 공간을 휘젓는 손과 얼굴 움직임이 동반되는 시각적인 언어. 그것은 마치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 속 외계 생명체가 표현하는 미지의 언어처럼 내게 다채로운 말의 표정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언어를 보았다. 하루하루가 속보로 채워지는 동안 그것을 전달하는 수어에 시선을 둔 것은 아마도 최근에 이 책을 읽어서일 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를 보았네’는 청각장애인들의 세계와 그들만의 언어인 수어에 대한 책이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수어는 그 자체로 완전한 언어이며, 구체적이고 활기차고 생생한 청각장애인들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이 언어를 통해 그들은 나름의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며 하나뿐인 ‘종족’으로 존재한다는 것. 따라서 그들을 결함을 지닌 장애인으로 보는 의학적인 시각에서 인류학적, 사회학적, 문화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생각은 물론 오랜 기간의 탐색과 관찰, 질문 후에야 가능했다. 책의 첫 문장은 청각장애에 대한 무지의 인정이다. 그걸 바탕으로 수어의 굴곡진 역사와 수어를 둘러싼 언어와 청각장애 아동발달, 그들의 공동체와 문화 그리고 인간 조건에 대한 질문까지 던진다. 책을 읽고 나면 청각장애인에 대한 나의 무지에 놀라고 수어라는 아름다운 언어에 감염되고 만다.
거리에서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목적지에 와서 안대를 벗었다. 그런 장면은 시각장애인을 잠시나마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청각장애인 체험을 하지 않듯 농인은 청인의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그들을 세상에 내어놓는 것. 그것이 수어임을 이 책은 말한다. 그들의 몸은 수어를 통해 살고 사랑하고 생각한다. 몸을 떠나지 않고 그 몸에 밀착된 언어. 하나의 말이자 생각이자 정체성인 수어를 쓰는 그 몸들은 장애에 갇히기엔 아깝다. 이 책은 우리에게 청각장애인을 볼 수 있는 문 하나를 마련해 준다. 문을 열고 보니 조금 보인다. 그리고 뉴스 속 수어 통역자를 보니 조금 안심도 된다.
책방한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