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물감 수백 번 칠하고 긁어 내고…형형색색 숲과 꽃밭을 펼쳐내다

재불작가 허경애 개인전 ‘봄꽃’, 해운대 갤러리 ‘메르씨엘 비스’

  •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  |   입력 : 2020-03-10 18:51:57
  •  |   본지 1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파도를 담은 푸른색, 가을을 담은 붉은색 등 다양한 원색의 아크릴 물감을 평면에 하나씩 칠하고 말리고, 다시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한다. 물감은 켜켜이 쌓이고 화석처럼 단단하게 굳는다. 물감 저 너머에는 어떤 형상이 꿈틀거리고 있을까. 완전히 마른 물감은 돌덩이 같다. 긁어낼 때 소음은 칠판을 칼로 긁을 때 나는 소리를 연상시킬 정도다. 허경애 작가는 특수 제작한 귀마개를 쓰고 칼로 물감을 긁어내기 시작한다. 고고학자가  공룡 화석을 감싼 돌덩어리를 들어내는 것처럼 치열하고 고요하다. 작가는 긴 시간 동안 물감을 반복해서 긁어내고 물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명력과 숨결이 내려앉는다. 캔버스에는 물감 파편이 형형색색의 봄꽃처럼 피어난다. 

   
허경애 작가의 ‘No. VP0915B3’(가로 140㎝ 세로 210㎝). 갤러리 메르씨엘 비스 제공
그의 개인전 ‘봄꽃’이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에 있는 갤러리 메르씨엘 비스에서 열리고 있다. 판화를 전공했던 작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개념 예술과 디지털 영상 작품까지 다양한 영역을 시도했지만 만족스럽지가 않았고 결국 다시 캔버스와 물감 앞으로 돌아왔다. 판화 작업인 긁기를 떠올리고 색을 입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색을 벗겨내 새로운 색을 발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 올리는 물감은 40~70층. 색은 본능과 직감에 따라 결정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 구성 단계에서 물감을 벗겨낸 흔적과 질감까지 계산한 후 그에 맞춘 색을 차례로 칠한다. 흑백 톤으로 아크릴 물감층을 올리기도 하고,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든 후 칠하기도 한다. 어떤 색을 올렸는지 기록을 남기는 일은 잊지 않는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물감을 뿌리거나, 붓으로 바르는 등 물감을 캔버스에 올리는 방법은 작업 때마다 다르다. 이 때문에 칼로 긁어서 드러난 색을 예측하기란 어렵다. 

이런 방법으로 작가는 필연과 우연이 결합해 나타난, 구상과 추상이 만난 그림을 선보인다. 전시 작품 중 초록색이 가득한 ‘No. VP0915B1~3’ 3점은 작가가 집 앞에 심은 대나무 화분이 어느 순간 울창한 대나무 숲이 되어버린 경험을 떠올리며 남긴 그림이다. 화사한 노란색이 인상적인 ‘No. JP0318BP’는 마치 유채꽃밭을 형상화한 듯하다.

   
허경애 작가의 ‘No. JP0318BP’.
처음에는 화사한 원색에 눈길이 가지만, 칼질이 남긴 색 아래 감춰진 흔적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 흔적에는 여러 각도로 중첩되면서 변화하는 색,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드러나는 색의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색을 쌓아 올린 시간을 긁어서 생긴 골은 삶의 흔적을 떠올리게도 한다.

작가는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조형 예술 석사를 마치고 현재 프랑스 에브르에 살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홍콩 공아트스페이스, 헝가리 칼만 마클라리 갤러리 등에서 십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다음 달 11일까지.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3. 3상어 ‘부캉이’ 33일 만에 수로 벗어나…유도작업 종료
  4. 4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5. 5‘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6. 6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7. 7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8. 8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9. 9‘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10. 10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1. 1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2. 2‘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3. 3부산시 국감서 전재수 시장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설전
  4. 4부산교통공사 사장 임명, 시설공단은 보류… 협치 여지 남긴 전재수
  5. 5'소장품 셀프 출품'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사의 표명
  6. 6제미나이에 물었다는 이 대통령, 野 "제미나이에 국정 의존, 처참한 수준"(종합)
  7. 7울산시 국감, 시장 발언에 국힘 의원들 퇴장
  8. 8교육위 국감 화두 ‘교부금 축소’…“교육감 대응도 안일” 질타
  9. 9부산회생법원 국감 “지역언론 가치 고려 국제신문 살펴야”
  10. 10李 대통령, AI에 물었다…“중수청장 국무회의 배석불가는 억지”
  1. 1‘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2. 2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3. 3송도 바다서 만난 융드립 커피 한 잔
  4. 4부산에 둥지 수산무역협회…김 등 수출 드라이브
  5. 5"세무조사 때 금품·향응 수수"…국세청 직원 5년간 31명 징계
  6. 6가덕 6200억 증액 확약 절실…국회는 특별법 개정안 논의
  7. 7올해 부산 비정규직 58만명 '역대 최다'…1년새 2만5000명↑
  8. 8부산은행, 불꽃축제 등 지역축제 발전에 2억 후원
  9. 9관광과 지역민 함께 성장을…세계가 부산서 묘책 찾는다
  10. 10“친환경 항만 투자 100억 당, 부산 124억 생산유발”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상어 ‘부캉이’ 33일 만에 수로 벗어나…유도작업 종료
  3. 3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4. 4‘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5. 5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6. 6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7. 7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8. 8[속보]20일 부산서 70대 남성 무궁화호 열차에 치여 사망
  9. 9“기존 공부량 유지하며 취약점 공략…남은 주말 수능처럼 모의고사를”
  10. 10‘부캉이’ 수로 출구 부근까지 유도…그물 주위 맴돌며 바다로 안 떠나
  1. 1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2. 2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3. 3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4. 4"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5. 5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6. 6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7. 73연승 KIA, LG 꺾고 23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
  8. 8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9. 9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10. 10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우리은행
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보리수가 휘감아 지킨 불두, 몰락왕조 영광의 기억
얼굴에 담긴 이야기
물극필반(物極必反)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쉽게 따라 배우는 걷기명상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남인목-웃는 나무
강동윤-Pixelated Oasi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경비원 /박필상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2일 (음 9월 12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1일 (음 9월 11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참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유배객 자암 김구의 눈에 비친 남해의 가을 바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