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로 유명한 단원 김홍도는 두 차례나 정조의 초상화(어진)를 그리는데 참여했다. 그만큼 정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1745년 태어나 180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단원이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엔 스승인 표암 강세황(1713~1791)이 있었다. 표암은 시서화에 뛰어날 뿐 아니라 미술비평가로 활동해 18세기 ‘예원(藝苑)의 총수’로 불리는 문인화가이다. 단원과 표암은 정조가 꽃피운 문예부흥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단원과 표암의 인연은 표암이 처가가 있는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하면서 맺어졌다. 서울 남산 기슭에서 3남6녀 중 막내로 태어난 표암은 30대에 안산으로 이사했고, 거기서 어린 단원을 만나 그림을 가르쳤다. 또 단원을 도화서 화원으로 추천, 화가로 자리잡게 했으니 표암이 우리 문화사에 기여한 바가 남다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제, 직장 동료, 예술적 동지로 승화한다. 이는 표암이 쓴 ‘단원기’에 남아 있다.
표암은 60세가 넘어 관직 생활을 시작할 정도로 곡절이 많았다. 10세 무렵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의 안산 생활은 문인화가로, 비평가로 숙성하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그까지 3대가 연속으로 기로소(耆老所·퇴임 관리들의 예우를 목적으로 설치한 기구)에 들어갈 만큼 사대부적 기반도 탄탄했다. 그가 사군자, 그 중에서도 대나무 그림에 힘을 쏟은 연유를 짐작할 만하다. 그런 표암이 단원을 ‘무소불능의 신필’이라 했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사제지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