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서 우리 버스 고쳐준
- ‘겉빠속촉’ 현지인의 베풂에
- 다른 사고현장 수습 도와 보답
- 세련되고 화려한 모스크바
- 현지 문화예술 집약 도시 인상
- 탁본 퍼포먼스 등 지켜본 시민들
- 한국문화와 한류에 깊은 관심
- 러시아 마지막 상트페테르부르크
- 한국 리듬에 시베리아 감상 녹여
- 지역 예술가 대상 즉석 공연도
바이칼호의 신비로움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의 초원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던 중 알렉산더를 만났다. 러시아 이름 중에 흔하디흔한 알렉산더. 우리로 치면 김 씨 이 씨 정도 될까.
 |
| 모스크바에서 언덕 작가의 퍼포먼스 모습. |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 선 버스
이정민 대원이 운전대를 잡고 시베리아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잘 가던 우리의 ARTsBUS(아츠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영하의 날씨에 시베리아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아~~이게 무슨 일인가? 그토록 걱정하던 15년 된 버스의 고장이었다. 앞이 캄캄해졌다. 고장 난 시간이 오후 2시쯤이었는데, 우왕좌왕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4시가 되니 기온이 떨어져 영하의 날씨가 됐다. 대원들의 눈빛에서 불안감이 역력했다. 드넓은 시베리아의 고속도로에는 20~30분에 1대 정도 차가 지나가기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급하게 외교부에 긴급전화를 걸고 외교부에서 알려준 주러 한국 영사관에 다시 도움을 청했다. 우리의 위치를 설명하기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인터넷이 접속돼야 위치가 확인될 텐데, 시베리아 고속도로에서는 인터넷도 잘 안됐다. 영사관 관계자는 우선 지나가는 차를 무조건 잡아서 도움을 요청하고 다시 전화를 달라고 했다. 여러 차를 보낸 뒤에야 ARTsBUS보다 더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트럭 한 대가 짐을 가득 실은 채 시속 50~60㎞의 느린 속도로 달리다가 우리의 절박한 손짓 몸짓에 멈추었다. 그의 이름이 바로 알렉산더였다.
다행히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배터리에서 나오는 전선의 퓨즈가 고장 났던 것이기에 그 친구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차량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는 감사의 뜻으로 5000루블(한국돈 9만 원)을 건네주었다. 마치 자기 일처럼 차를 고쳐 주었고 처음에는 어떤 대가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아 그가 더더욱 고마웠다.
■‘겉빠속촉’… 고마운 러시안
 |
| 차량 수리를 끝내고 알랙산더와 기념촬영. |
러시아의 기억은 알렉산더 때문에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처음 유라시아 횡단을 꿈꾸었을 때 러시아 구간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은 터라 걱정을 꽤 했는데 의외로 그들의 친절에 놀랐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말이 있다. ‘겉빠속촉(겉은 빠삭한데 속은 촉촉하다)’.
우리는 시베리아의 어디에선가는 알렉산더로부터 받은 선의를 다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렸다. 그러던 중 모스크바에 다다를 즈음, 늦은 저녁 시간 어느 도로에서 앞차의 전복 사고를 목격하였다. 너무 놀라 차를 세우고 고속도로 밖으로 떨어져 전복된 차로 뛰어 내려갔다. 차 안에는 남녀 커플과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차량에서 남자가 내리려고 하고 있어 도와주었고 아직 차 안에 있던 여자를 구했다. 구출 직후부터 두 사람은 척추골절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며 자리에 누웠는데 차량의 폭발이 염려돼 차량으로부터 좀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반듯이 눕히고 ARTsBUS에 있는 침낭과 담요 등으로 몸을 보호해 주었다.
겨우 트럭 한 대를 세우고 911로 전화를 해 구급 요청을 하고 차량이 올 때까지 그들과 함께했다. 다행히 얼마 뒤 911차량이 도착해 구급차로 안전하게 이송하는 것까지 보고 다시 모스크바로 향했다. 급박한 상황이라 서로 이름을 물어볼 시간도 없이 헤어졌지만 영하의 날씨와 혹시 불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로 떨던 러시아 연인의 울음소리가 기억난다. 알렉산더에게 받은 선의를 누군가에게 베풀었다는 생각과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함과 걱정, 우리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어두운 시베리아 고속도로를 다시 달렸다.
■근·현대 문화 품은 웅장한 모스크바
 |
| 상트페테르부르크 LUDA Gallery에서 행사 후 가진 기념촬영. |
그렇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만여 ㎞를 달려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하루에 많게는 1000㎞를 달리면서 도착한 모스크바. 큰 사고 없이 도착할 수 있어서 안도했다. 첫인상은 ‘웅장하다’였다. 푸시킨 미술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현대미술의 장 멀티미디어 아트 뮤지엄 등 러시아의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러시아 문화 예술의 근간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도착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29일, 카를 마르크스 동상에서 언덕 작가와 최형석의 퍼포먼스, 그리고 나의 탁본 퍼포먼스를 모스크바 시민에게 선보였다. 탁본 작업은 서양인들에게는 생소한 스트리트아트(Street Art)였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구경하던 시민은 ‘버스를 타고 한국에서부터 왔다’고 하니 신기하게 생각하며 한국말을 하는 친구를 급하게 불러 이것저것 여러 질문을 쏟아냈다. 이튿날 모스크바 한국문화원에 갔다. 사물놀이를 배우는 클래스에서 한국인 선생님과 현지 러시아 학생들과 교류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사물놀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신기하고, 외국인들에게 힘들게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뿌듯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모스크바 젊은이들은 한국문화와 한류에 관심이 많았다.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왔고, 앞으로 독일 베를린까지 간다고 하니 신기하게 쳐다봤다.
모스크바의 전체적 인상은 시베리아에서 봐 왔던 문화 예술이 함축적으로 집약되어 있으며 유럽 어느 국가의 대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없이 세련되고 화려했다. 냉전 시대 미국과 문화예술은 물론, 경제, 우주기술 등 모든 면에서 경쟁하던 러시아의 저력이 느껴졌다. 특히 크고 작은 미술관·박물관과 도시 곳곳에 있는 동상·공공 예술품 등을 통해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고, 모스크바만의 문화의 향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인간적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다시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로 향했다. 모스크바가 도시 전체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이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인간적인 느낌이랄까. 알 수 없는 묘한 거리 분위기와 건물 등의 규모, 시민 표정도 모스크바와는 확연히 달랐다. 더욱 따뜻했다. 그렇다고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부분은 없어 보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91년까지 레닌그라드로 불리며 러시아의 문화 경제의 중심 도시 역할을 하였고, 1764년 설립된 세계 3대 미술관 예르미타시 미술관도 이곳에 있으니 말이다.
2013년 부산에서 필자가 운영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알렉산더 다쉡스키(Alexander Dashevskiy)와 쉬시킨 호쿠샤이(Shishkin Hokusai) 제냐 레테바(Evgenija Lapteva)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또는 여기서 거주하고 있기에 그들이 소개하는 갤러리, 대안공간을 방문할 수 있었다. 한 곳은 상업갤러리인 ANNANOVA Gallery이고 다른 한 곳은 독립문화 공간 LUDA Gallery였다. 먼저 LUDA Gallery에서 퍼포먼스 공연을 했다. 급하게 만들어진 공연이어서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았지만 20여 명의 지역 예술가 문화 기획자, 큐레이터들이 참석해 의미 있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맴버 전체가 참여하는 공연을 펼쳐 보였다. 한국적인 리듬에 그간 시베리아를 거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퍼포먼스로 나타냈다. 생경한 퍼포먼스를 호기심을 품은 채 바라보는 러시아인들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자, 이제 우리는 유럽으로 간다.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를 지나 폴란드 그리고 독일 베를린. 출발한 지 한 달이 다 돼서야 러시아를 탈출(? )하게 되었다. “안녕~ 러시아, 고마워 시베리아”를 외치며 우리는 에스토니아로 달렸다. 시각예술가·문화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