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문화재청에 3곳 등록 요청
- 유물 보관 부산대박물관도 포함
- ‘1953년 국제신보’ 발견 비석주택
- 당시 생활상 담겼단 평가 받아와
- 관리비 지원받아 특별전 등 계획
비석주택·동항성당·부산대박물관 등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문화유산에 대한 문화재 등록이 추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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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서구 아미동 비석주택 전경 |
부산시는 전쟁 이후 피란민 임시 주거시설이었던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에 위치한 비석주택을 국가 등록 문화재로 등록해 달라고 최근 문화재청에 요청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와 함께 전쟁 당시 빈민 구제와 교육사업에 헌신한 고 하 안토니오 몬시뇰(1922~2017)이 있었던 남구 우암동 동항성당과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옮긴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급 유물 1만8000여 점을 소장했던 부산대박물관에 대한 문화재 등록을 요청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지난 1월부터 지자체 및 관련 기관 추천을 받아 관련 문화유산 발굴 작업에 착수해 왔다. 이를 통해 포로수용소 잔재, 전투상보 등을 발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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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석주택에서 신문이 발견된 위치와 신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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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주택은 구한말 일본인 공동묘지의 석축과 석조묘책 위에 지어진 피란민 임시주거시설이었다. 2014년 8월 도로 확장 공사 중 발굴됐다. 지난해 9월 19일 현장실측 조사 중 주택 벽체 내부와 기둥에 벽지로 사용된 ‘1953년 7월 18일 자 국제신보’ 신문을 발견해 피란민이 임시로 거주했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발굴팀은 신문 내용에 적힌 부고 기사의 날짜를 추적한 후 부산대 도서관에 소장된 원본 신문을 비교해 이를 확인했다. 주택 내부에는 신문은 물론 당시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재료가 켜켜이 쌓여 피란민과 산업화 시기 도시민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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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남구 우암동 동항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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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항성당은 전쟁 당시 1951년 천막 공소(본당보다 작아 본당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구역의 천주교공동체)로 출발해 지역 빈민 구제와 사회복지 사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954년 11월 본당이 설립되는 등 현재 모습은 1970년에 갖췄다. 1958년 7월 5일 화물선을 타고 한국으로 건너온 당시 36세의 신부 고 하 안토니오 몬시뇰은 판자촌이 밀집한 성당 주임신부로 있으며 빈민 구제와 교육사업에 전념했다. 길거리를 배회하던 전쟁고아와 장애인을 사제관에서 키웠고 한독여자실업학교(현 부산문화여고)를 설립했다.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하 신부를 가톨릭교회 명예 고위 성직자인 ‘몬시뇰’에 임명했다. 부산대박물관은 현재 박물관 별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에 1956년 문을 열었다.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옮긴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급 유물 1만8000여 점을 소장했다. 1994년 본관은 현재의 건물로 옮기고, 문화재를 보관했던 곳은 수장고로 사용하고 있다. 건립 당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학교 측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 신청을 계획해 보존 상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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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때 문화재가 보관됐던 부산대박물관 |
국가 문화재로 등록되면 문화재청으로부터 시설 보수·정비·관리비를 지원받고, 향후 특별전 학술 행사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등록 여부는 올해 상반기에 결정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대국민 공모 및 자체 조사를 통해 추가로 관련 문화재를 목록화할 예정이며, 이 중 일부는 등록조사 등 과정을 거쳐 문화재로 등록한다. 부산시 관계자는 “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문화재와 유산이 풍부하다. 3곳은 전쟁 당시 대표성을 간직한 곳으로 등록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