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아귀 힘·호흡 만으로 흩뿌려
- 푸른 꽃 만발한 작품으로 변신
- 추상·구상화 조화보는 재미도
- 강혜은 ‘line-piece’ 맥화랑서
캔버스 위에 누에가 비단실을 뽑아낸 흔적일까. 얽히고설킨 가느다란 색선(色線)은 색채의 향연을 선사한다. 형채를 알아보기는 어렵다. 전형적인 추상화다. 한발 한발 뒤로 물러서자 그림이 점점 형태를 갖춰 간다. 푸른 들판에는 닭, 풀숲, 꽃, 집, 양이 놀고 있었다. 그림에는 추상과 구상이 가느다란 실선처럼 조화롭게 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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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혜은 작가가 부산 해운대구 맥화랑에 전시된 ‘line-piece 1931’ 앞에 서 있다. 숫자 ‘1931’은 지난해인 2019년에 그린 31번째 작품이라는 뜻이다. 전민철 기자 |
강혜은 작가의 ‘line-piece’ 연작이 부산 해운대구 맥화랑에 전시됐다. 작가는 유화물감 덩어리에 손아귀의 힘만으로 적정한 압력을 가해 가는 색선을 캔버스에 층층이 쌓아 올린다.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 채 허리를 숙여서 손아귀에 넣은 물감을 흩뿌리듯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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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 |
올해 64세인 그는 18년 전 이런 색선 작업을 시도했다. 이전에는 유화 위에 스크래치 기법을 사용한 이른바 지워가는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새로운 기법을 시작하려고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머니께서는 부산에서 꽤 규모 있는 맞춤 옷집을 하셨다. 그래서 남는 실을 가지고 놀았다. 물감으로 실과 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다. 유화 물감은 끈적끈적해서 실처럼 뽑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떠올려 보면 내가 이런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작업으로 이어지는 데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물감을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점도가 묽으면 실선이 굵게 떨어지고, 진하면 가늘게 떨어진다. 작가가 원하는 굵기의 선을 뽑아내려 국내는 물론 해외에 시판되는 물감 중 안 써본 게 없을 정도. 물감이 정해져도 비닐에 담은 물감을 손아귀 힘과 호흡으로 조절해 자유자재로 색선을 뽑기까지 숱한 실패를 거듭했다.
“처음에는 손에 너무 과한 힘을 줬는지 아프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지금은 손이 연장이 다 됐다. 원래는 손이 참 작았는데 지금은 농사를 짓는 남성의 손과 비슷하다.”
작가는 이번에 전시된 작품을 ‘딱 중간 단계에 왔다’고 표현했다. “색선을 쓴 초기 작품은 매우 구상적이었다. 지금은 구상과 추상이 결합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계속 봐도 뭐가 뭔지 모르지만 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곱씹어 떠올려도 다시 보고 싶은 무척 추상적인 작품을 내놓고 싶다.”
작가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여대 미술대를 졸업했다. 최근에는 경남 양산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부산과 대구에서 20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 아트페어에서 주목받고 있다. 독일 쾰른 ‘ART FAIR21’ 중국 베이징 ‘International Art Expo’ 미국 뉴욕 ‘Korean Art Show’ 대만 가오슝 ‘ART Kaohsiung’ 등에서 수집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전시는 다음 달 12일까지.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