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를 소환한 건 뜻밖에도 ‘코로나19’다. 주한중국대사관이 지난 12일 서울시에 마스크 2만5000장을 기부했는데, 그 상자에 ‘歲寒松柏 長毋相忘’(세한송백 장무상망)이라고 적혀 있다. 싱하이밍 중국대사는 “중국이 어려울 때 서울시가 보내준 도움에 보답하고자 한다”며 “추위에도 의연한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오래도록 서로의 우정을 잊지 말자”고 그 뜻을 설명했다.
추사는 유배지에 있는 자신을 잊지 않고 귀한 중국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줬다. 그의 의리와 지조를 높이 산 것이다. 추사가 ‘논어’ 구절을 인용해 ‘세한도’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이다. 추사는 또 ‘사제의 정을 오래도록 이어가자’는 의미로 ‘長毋相忘’이란 인장을 찍었다.
증조할아버지가 영조의 사위였으며,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수도 연경(베이징) 사절단에 낄만큼 당대의 ‘금수저’라 할 추사다. 그도 당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50대에 제주도 유배는 견디기 어려운 좌절과 고독의 연속이었을 터. 그 와중에 이상적이 구해준 서적이 눈물나도록 고마운 건 인지상정이지 싶다.
이상적(1804~1865)은 9대에 걸쳐 30여 명의 역관을 배출한 집안 출신으로 12회나 중국을 다녀왔다. 그 사이 ‘세한도’를 연경에 가져가 청나라 문인 16명의 글을 받았다.
‘세한도’에는 추사가 연경에서 만난 중국 최고 학자 옹방강, 완원과의 인연도 담겨 있다. 연경 옹방강 집에서 본 소동파의 글씨에서 세한도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으리란 추론이 하나요, 완원이 추사에게 준 호 완당(阮堂)을 사용한 것이 다른 하나다.
추사가 59세이던 1844년 그린 ‘세한도’는 이렇게 당대 최고의 인문 정신을 담아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화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