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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의 아츠버스(ArtsBus)…유라시아를 달리다 <5>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와 폴란드 바르샤바

아우슈비츠 수용소 있던 폴란드 … 탁본으로 남긴 2차대전의 기억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4-12 18:46:58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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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트해에 위치한 칼리닌그라드
- 러시아 작가 에브제냐의 초대로
- 실타래 풀어내는 퍼포먼스 등
- 현지인·유학생들 앞에서 공연

- 국경 인접한 폴란드 바르샤바
- 도시 곳곳서 전쟁의 상흔 묻어나
- 건물에 남은 총탄 탁본 만들며
- 당시의 아픔 공감하는 계기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 우리는 일정대로라면 리투아니아로 가야 했지만 에브제냐 렙테바(Evgenija Lapteva)의 긴급 소환을 받고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로 향했다. 그는 2014년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국제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로 부산국제행위예술제 등에 초대됐다. 젠틀 레이디(Gentle Lady)라는 퍼포먼스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위예술가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에서 ARTsBUS(아츠버스)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우리를 초대했다. 지난 뒤여서 하는 말이지만 처음에는 칼리닌그라드로 오라고 했을 때 다시 러시아 본토로 되돌아 가야 하는 줄 알았다.

■유럽 속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폴란드 바르샤바 거리에서 탁본작업을 하고 있는 필자.
생소한 칼리닌그라드는 발트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본토의 국경으로부터 약 600㎞ 떨어진 러시아의 월경지다. 유럽에서 다시 러시아로 국경을 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우리는 에브제냐를 만나기 위해 칼리닌그라드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해 11월 11일 늦은 밤 도착했다. 그는 우리가 묵을 숙소로 자신의 친구 집을 소개했고, 소박하지만 맛있는 저녁 식사까지 제공해 주었다. 우리가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온 탓인지, 밤이어서 그런지 에브제냐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6년 만에 만난 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였다. 지금은 이혼해 언니와 살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아이는 뇌수막염으로 인해 정신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기에 제대로 된 모유수유를 하지 못한 에브제냐는 젖몸살을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있으니 넘치는 젖이 감당이 되지 않아 그 모유를 모아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는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를 했다고 말했다. 무거운 삶의 무게에도 작가로서의 끈을 그렇게라도 붙잡고 싶은 그는, 뼛속까지 예술가였다. 그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아픔과 슬픔이 대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이 되길 희망한다.

■삶의 무게를 예술로 승화

문화발전공간 카타르시스에서 펼친 ARTsBUS 팀의 공연.
다음 날 우리는 그가 소개하는 곳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문화발전공간 카타르시스’(Культпросветпространство Катарсис)라는 곳이었는데 한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 기꺼이 공연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홍보할 시간이 없었기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공연 준비를 했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러시아의 고려인인가? 하는 생각을 할 즈음, 그들의 대화에서 부산사투리가 들렸다. 그들은 칼리닌그라드 대학으로 온 부산외국어대학교의 교환 학생들이었다. 이국만리 땅에서 부산 사투리를 들으니 반가웠다.

오후 7시, 예상보다 많은 50여 명의 관객이 모였고 우리는 짧은 영어와 현지 교환학생들의 통역 덕분에 러시아 관객들을 상대로 ARTsBUS가 달려온 길을 이야기하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박현정, 최형석, 이광혁의 라이브 음악 공연과 언덕의 퍼포먼스 그리고 필자의 퍼포먼스 순서로 행사는 진행됐다. 특히 언덕은 음악팀의 라이브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얽히고설킨 붉은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내는 행위를 통해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퍼포먼스를 해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이튿날 우리는 에브제냐와 비디오 퍼포먼스를 만들었다. ARTsBUS와 첫 만남을 기억하고 동방의 예술가들과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나누고자 하는 그의 욕망과 욕구를 표현했다. 길게 늘어선 동쪽 방향에서 ARTsBUS가 천천히 다가오고 반대편에서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에브제냐가 걸어오다 중간 지점에서 만나 아무 말 없이 교감을 나눈 뒤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가는 내용이였다. 차 없는 거리 장면이 필요한 우리는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 작업하며 추위에 떨었지만, 에브제냐의 얼굴이 갈수록 상기되고 밝아지고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홀로코스트의 나라… ARTsBUS는 어떻게 기억될까

이 퍼포먼스를 마지막으로 폴란드로 향했다. 다시 러시아 국경에서 복잡하고 지루한 입국 절차를 거쳐 폴란드 입성 성공.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상처가 깊이 남아 있고 아우슈비츠 유태인 포로수용소가 있는 곳이다. 바르샤바 곳곳에 전쟁 추모비와 군인들을 추모하는 동상들이 설치돼 있고 시들지 않은 꽃들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폴란드 국민 마음 깊은 곳에 전쟁의 아픔이 생생히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르샤바 거리에서 아주 오래된 건물의 외벽에 남아 있는총탄의 흔적을 발견했다. 건물 관계자의 말로는 200년 정도 된 아주 오래된 건물인데,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건물의 절반 이상이 파괴돼 새롭게 보강을 하고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강원 철원노동청사의 외벽 총탄 자국을 이용해 탁본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 건물이 가진 2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탁본으로 남기기로 했다.

작업을 한참 진행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그는 자신도 예술가이며 이 건물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퍼포먼스 행위를 한참 바라보던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의 기억을 꺼냈다. 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의 80%이상의 건물이 무너졌고, 군인들은 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도 마구 부수고 사람을 죽였노라고.

다행히 가족은 생존했지만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고 말하는 할머니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말을 잇지 못했다. 폴란드 할머니의 깊은 아픔이 전해져 내 얼굴과 작업들이 모두 눈물로 적셔졌다. 그는 탁본을 뜨고자 천 뭉치에 먹물을 묻히고 조심스럽게 벽을 두드리는 나의 행위가 마치 그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의 행위가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People don’t want to see the real thing these days.(요즘은 사람들이 진짜를 보려고 하지 않아) To look at it and see it is different.(응시하는 것과 보는 것은 달라) Look at the reality and touch it.”(현실을 응시하고 건드려 봐)라는 말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우리가 만난 세계 시민들에게 ARTsBUS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부산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 바이칼호수, 모스크바를 지나 여기 유럽까지 온 우리의 모습은 그들에게 분명 생소할 것이다. 또 한국이라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돼 모든 분야에서 양측이 서로 경쟁하고 분리돼 있는 현실은 어떻게 비춰질까? 우리는 ARTsBUS의 유라시아 횡단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많은 물음이 머릿속을 맴도는 하루였다.

시각예술가·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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