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 스승인 정자의 ‘사물잠’(四勿箴)을 알뜰하게 담았다.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이라 했으니 사물이다. 정자는 극기복례의 이 4대 실천 조목은 몸의 작용으로 마음에서 말미암으니 몸가짐을 삼가해 그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잠은 바늘 끝으로 자신을 찌르는 것처럼 정신을 집중하며 스스로를 경계하라는 의미다. 앞서 안연이 사물을 실천해 성인의 경지에 다가갔으니, 유가에서 행동규범으로 자리잡은 연유다.
사물잠은 조선에서도 그 자취가 뚜렷하다. 경(敬)의 철학자인 퇴계 이황이 ‘성학십도’(聖學十圖)에 반영했다. ‘성학십도’는 68세인 퇴계가 조선 14대 왕으로 즉위한 선조에게 올린 성리학의 핵심이다.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등 10개의 도표와 해설이 들어있다. 퇴계는 병풍 한 폭을 지어 늘 거처하는 곳에 펼쳐 두고 경계하라고 요청했고, 선조는 이를 받아들였다. 선조 1년 1568년 일이다. 성학, 공자의 학문이 주자를 거쳐 조선에서 어떤 위치인지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퇴계 스스로가 그러했고 선조에게도 요청했듯,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은 위기지학(爲己之學), 즉 나를 위한 학문이다. 극기복례를 위해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이와 대척점에 위인지학(爲人之學), 남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이 있다.
“옛날 학자(올바른 학자)는 자신을 위해 공부했는데, 지금 학자(사사로운 마음을 품은 학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부한다”(‘논어’ 15편 25장)는 공자 지적은 오늘도 유효하다. 위기지학은 자기 성찰은 물론 이상적인 공동체를 위한 실천 덕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