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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의 아츠버스(ArtsBus)…유라시아를 달리다 <6> 바르샤바에서 전쟁의 아픈 기억을 기록하다

폴란드 역사적 아픔·분노 뜻하는 단어 ‘잘’, 한국 ‘恨’과 정서 비슷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4-26 19:13:0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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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 일간 강행군에 모두 녹초
-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하며 휴식
- 거리 풍경 사진·탁본으로 남겨

- 2차대전 막판 反獨 봉기 기념비
- 죽음 두려워하는 청년 모습 표현
-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 같아 숙연

- 기념비 지키는 군인들 교대행사
- 시민 자발적 묵념하며 선열 기려
- 얼굴 어디에도 과거 우울함 없어

- 베를린 예술가와의 만남만 남아
- 새로운 인연 기대하며 또 달려

여정의 막바지가 다가오니 모두가 지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엄청난 강행군이었다. 하루에 500~1000㎞씩 운전을 하고 그렇게 도착한 도시에서는 2, 3번의 퍼포먼스를 쉬지 않고 40여 일간 계속했다. 지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거의 민란 수준의 원성이 일어났었다. 특히 음악팀의 최형석과 박현정의 원성으로 긴 회의 끝에 우리는 베를린이 마지막이니 폴란드에서는 좀 쉬어가는 것으로 결정을 했었다.
바르샤바 봉기 기념탑 광장에서 언덕 작가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퍼포먼스로 전쟁 아픔 표현

폴란드에서는 맴버 각자가 개인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를 비롯한 미술팀은 몇 일 더 바르샤바에 머물며 쉬엄쉬엄 작업을 하기로 하고 나머지 음악팀은 일찍 베를린으로 향했다. 나는 우선 거리의 풍경과 모습을 탁본 작업으로 남기는 것에 집중했다. 거리의 일상적인 풍경과 우리가 너무나 쉽게 지나치는 도로 위의 흔적들을 나만의 방법으로 남기고 싶었다.

언덕 작가는 거리 곳곳에서 ‘서기 프로젝트(StandIng Project)’의 기록형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서로의 작업을 지켜봐 주면서 사진도 찍고 영상도 남기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거리의 풍경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 군인들의 표정.
거리에서 작업하다 보니 유난히 바르샤바에 전쟁 관련 기념비와 동상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시내 곳곳에 설치된 전쟁 기념 동상들을 보고 있으면 전쟁의 참혹함과 민중들의 비참한 모습을 어떻게 이리 잘 표현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4년 8월 1일 폴란드 바르샤바를 독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폴란드 국민들이 일으킨 봉기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Warsaw Uprising Monument)’의 군인 표정은 기념비 동상에서 주로 묘사되었던 용감한 모습의 얼굴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받쳐야 했던 당시 청년들의 모습이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 선조들의 모습과 겹쳐 보여 더욱 숙연해졌다. 당시 청년들에게는 민족, 조국, 국가는 어떤 의미였기에 그렇게 목숨을 스스럼없이 던졌을까? 세상의 모든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바르샤바 봉기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 같은 곳인데, 2차 대전의 참혹함과 전쟁으로 인해 비참해진 민간인들의 생활상을 전시한 곳이었다.

지금은 거리 어디에도 그날의 참상은 찾기 힘들어 보이고 그들의 표정 어디에도 과거의 우울함은 없었다. 그러나 기념비 앞을 지키는 군인들이 교대를 위한 제식 행사가 있을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민들도 함께 묵념하는 모습에서 역사를 기억하려는 그들의 의지가 엿보였다.

■침탈의 역사… 한국 닮은 폴란드

1차 세계대전 폴란드 독립영웅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1867~1935) 동상.
역사적으로 한국과 폴란드는 닮아 있는 부분이 많다. 한국처럼 강대국 사이에서 약소국 폴란드는 오랜 시간 핍박의 역사였다. 1772년부터는 이웃 강대국(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들이 폴란드를 나누어 점령했다. 폴란드인은 여러 차례 대항했지만 항거는 항상 강대국 앞에서 실패하였다. 오히려 더 강력한 압박만 불렀다. 역사적으로 계속된 침탈과 압박은 폴란드인의 마음속에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아픔과 울분으로 생긴 정서를 담아내는 그들만의 단어가 있다. 그러한 감정을 표현하는 폴란드어 ‘잘(Zal)’이라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는 ‘슬픔, 후회, 아픔’이라는 뜻인데 ‘분노’와 ‘화의’라는 뜻도 담고 있다. 복합적 감정을 표현하는 이 단어는 외국어로 번역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그와 비슷한 말이 있다. 바로 ‘한(恨)’이다. 서로의 감정을 깊이 교감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것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과 폴란드는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정의 공통분모가 있다. 오랜 고통의 시간이 한국과 폴란드인들의 마음속에 어떤 울분을 만들었고 그것이 한(恨)과 잘(Zal)이 되었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쟁으로 인한 고난의 시간은 우리 몸속에 DNA로 남아 대를 이어 기억되는 것 같다. 지난해 11월 15일 바르샤바에서의 마지막 날, 심야 거리에서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거리 탁본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고 우리 ARTsBUS는 베를린으로 향했다.

전쟁에는 가해국과 피해국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번 여정의 마지막을 2차 세계대전의 가해국 독일 베를린에서 보내려고 한다. 지난해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이었기도 하고 청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식민지 조선인의 한을 품고 달린 끝에 금메달을 딴 곳이기에 이번 여행의 종착역으로 결정했다.

■종착지 베를린을 향해

앞서 2018년 베를린에서 한 달간 레지던스를 할 당시 SOMA 갤러리 대표인 나비나라(Nabi Nara) 씨가 “2019년이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이기에 좀 의미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ARTsBUS로 유라시아횡단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기도 하다. ARTsBUS가 시베리아를 지나 모스크바를 향해 달리고 있을 쯤 페이스북메세지로 나비나라로부터 연락이 왔다. 1년 전 이야기 했던 전시가 베를린시의 후원으로 베타니엔 미술관(Bethanien Creative Quarter)에서 ‘UN Wall’ 전으로 열리게 됐고, 한국과 독일의 분단의 역사와 시간을 주제로 양국 시각 예술가 9명이 참여한다고 하였다.

ARTsBUS가 한국 부산을 출발해 러시아의 시베리아를 지나 발트해 국가, 폴란드, 베를린으로 이동하는 동안. 국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 하나의 문제는 북한을 지나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인식을 ARTsBUS가 길 위에서의 만났던 이야기와 공연들로 전시의 마지막 이벤트를 맡아달라고 했다.

늘 그러했지만 우리는 계획이 없는 것이 계획이었고,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늘 감사하며 먼 길을 달려왔다. ARTsBUS의 마지막 종착지에서 의미 있는 행사를 할 수 있었기에 흔쾌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독일로 가는 마지막 국경을 지나면 약 50일 동안의 여정도 끝이다. 모두가 힘들다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한 ‘길’의 마지막이 현실이 되어 나에게 왔다. 아쉽고 또 아쉬운 밤이었다.

길에서 만났던 폴란드 할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To look at it and to see it’ is different(응시하는 것과 보는 것은 달라). Look at the reality and touch it(현실을 응시하고 건드려봐!)” 베를린에서는 어떤 일들을 마주할 수 있을까? 또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까 하는 궁금함과 베를린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우리는 또 달렸다. 국경을 달리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외쳤다. 안녕 폴란드!!! 폴란드여 영원하라~~

시각예술가·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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