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가 문틀·마루 다듬어 재활용
- 소라 자개로 별 표현한 작품도

달빛 한점 없는 밤하늘이 휘황찬란하다. 숯가루를 잘게 쪼개 빼곡히 얹고, 반짝이는 자개를 더해 옻칠로 마감하자 세로 240㎝ 가로 540㎝ 크기인 사각의 나무판은 우주로 변했다. 부산 해운대구 소울아트스페이스 김덕용 개인전 ‘봄-빛과 결’에 소개된 ‘심현의 공간’이다. “우주는 탄소로 이뤄졌다고 한다. 나무도 다 태워버리면 탄소 덩어리인 숯만 남아 우주의 본질로 다시 태어난다. 이런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사람이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고 하는데, 자개로 무수한 별이 된 우리를 표현했다.”

김덕용 작가와 그의 작품 ‘차경(借景)-산수유’. 한옥에서 창은 경치를 담는 액자로 봤는데, 이 작품은 이에 착안해 창으로 보는 다양한 풍경을 한 그림에 녹여냈다. 김종진 기자

나무판 위에 자개만을 사용해 바다를 표현한 작품 ‘귀소’도 이채롭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파도가 넘실거리듯 자개가 눈부시게 빛났다. “전남 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대학 때 서울에 와 혼자 살면서 가족이 늘 그리웠다. 자개는 고향 집을 떠올리게 한다. 자개를 보면 자개장이 떠오르고 그 옆에서 바느질하던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수년 전부터 이를 이용한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문득 ‘자개도 얼마나 집에 가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림 속) 바다에 보내줬다.” 자개는 소라·전복 껍데기로 만들기에 바다를 표현하기에 제격이다.

작품에는 이처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그가 폐가에서 나온 문틀이나 가구 혹은 마루를 재활용해 다듬어 화면의 바탕을 만드는 이유도 이를 표현하려는 욕구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작가는 시간을 담을 나뭇결 위에 가구용 안료, 석채, 단청 재료를 혼합한 색으로 따사로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시선은 그림 나뭇결만이 남은 가장자리에 멈춘다. 툇마루나 고택에서 볼 수 있는 가구에서만 볼 수 있는 나뭇결이라 추억이 더 소박하고 애틋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캔버스보다 나무에 그림을 올리는 게 더 익숙했다. 또 사용한 사람의 흔적이 밴 나무는 절대 뒤틀리는 법이 없어서 그림의 좋은 바탕이 된다. “약 30년 전 대학원 시절부터 소나무 고목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한옥 단청을 보고 나무에 그림을 그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장을 돌면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자 왜 전시에 ‘빛과 결’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자개의 ‘빛’과 나무의 ‘결’을 사용해 이야기를 담아 ‘그리움’이라는 감성을 선사했다.

작가는 1961년생으로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와 같은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외교통상부, 스위스한국대사관, 아부다비관광문화청, 에미레이트 전략연구조사센터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오는 6월 23일까지. (051)731-5878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