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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영화‘저 산 너머’ 최종태 감독

“개봉까지 운명 같아…김수환 추기경 대신 대중에 위로·힐링 주길”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0-04-28 19:43:4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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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때 천주교로 개종하면서
- 추기경 어린시절 담은 서적 접해
- 2011년 영화 제작 구상했지만
- 제작비 구하기 어려워 중도 포기

- 선종 10주기 맞아 다시 도전
- 투자·캐스팅 등 우연 이어져
- 개봉일은 추기경 서임 날짜
- 어려운 시기 이 시대 어른 대신해
- 대중에 희망의 씨앗 전하길 바라

“김수환 추기경님이 살아계신다면 이 시기에 큰 도움이 되실 텐데, 이 영화가 김 추기경님을 대신해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와 힐링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종교의 벽을 넘어 사랑을 실천해온 이 시대 진정한 어른이자 지난 2월 선종 11주기를 맞은 고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화 ‘저 산 너머’(개봉 30일)의 최종태 감독이 전한 바람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최초로 영화화한 최종태 감독. 그는 “김수환 추기경님 생전에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듯 영화 ‘저 산 너머’가 오늘날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정록 기자
고 정채봉(1946~2001) 동화 작가가 김 추기경과의 대화로 엮어낸 책을 토대로 한 ‘저 산 너머’는 1928년 일제강점기,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일곱 살 수환의 마음에 믿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그 믿음을 키워가는 성장 영화다. 지난 26일 국제신문 서울본부를 찾은 최 감독은 “‘저 산 너머’는 제작부터 개봉까지 많은 운명적 만남이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우연이 계속됐으며, 개봉일까지도 운명적인 것 같다”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만남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가족의 사랑 속에서 마음 밭에 특별한 씨앗을 키워간 꿈 많은 일곱 살 소년 수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저 산 너머’. 아이디앤플래닝그룹 제공
최 감독이 떠올리는 김 추기경에 대한 기억은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87년 명동성당에 피신해 있던 시위 학생들을 잡으러 온 경찰에게 김 추기경님은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을 밟아야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강한 인상을 받았다”며 33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후 40대 초에 마음의 병을 앓았던 최 감독은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면서 자연스럽게 정 작가의 ‘바보별님’(소년한국일보 연재 제목은 ‘저 산 너머’였고, 단행본 출간 제목이 ‘바보별님’이었다. 지난해 ‘저 산 너머’로 재발간됐다)을 접했고, 2011년쯤 김 추기경에 대한 영화를 구상했다.

“제작비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2018년 겨울, 내년 2월이면 김 추기경님의 10주기인데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친구이자 제작자인 이성호 대표가 참여했지만 제작비 마련은 역시 어려웠다. 가톨릭 서울대교구도 찾아갔지만 자금적으로 도움을 주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서울대교구에서 사회사목을 맡은 유경촌 보좌주교가 많은 관심을 보여줬다. 낙담했던 그때 한신대 백장현 교수가 지인을 소개해 줬는데, 총 제작비 40억 원을 기꺼이 투자해준 아이디앤플래닝그룹 남상원 회장이었다.

“지난해 2월 남 회장님을 처음 만났는데, 영화를 전혀 모르던 분에게 어떻게 영화에 투자하라고 말해야 하나 걱정이 됐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만난 지 이틀 만에 투자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불자인 남 회장님이 종교를 떠나 책을 읽고 영화화를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투자하겠다고 하시더라.” 김 추기경의 어린 시절 일화에 담긴 따뜻함이 묵직한 감동을 전한 셈이다. 남 회장이 투자자로 나서면서 ‘저 산 너머’의 제작은 급진전됐으며, 규모도 더 커지게 됐다.

■시나리오와 캐스팅

투자가 확정되자 최 감독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저 산 너머’의 초고를 다시 읽어보니 부족함이 느껴져 김 추기경에 대한 공부를 더 깊게 했다. 그러면서 더욱 많은 말씀을 접하게 됐다. “각 인물들의 대사에 김 추기경님의 어록을 넣었다. 영화를 보며 김 추기경님의 말씀을 찾는 것도 의미있겠다.”

영화에는 옹기가 자주 등장한다. 가난한 옹기장수집 8남매 중 늦둥이 막내였던 어린 수환은 옹기 속에 들어가 백묵으로 식구들을 그리며 외로움을 달랜다. 실제 19세기 초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골에 들어가 옹기를 구웠다. “김 추기경님의 세례명이 스테파노인 것은 잘 알지만 아호가 옹기인 것을 잘 모르더라. 그래서 재단명도 옹기재단이다. 당시 옹기장수는 천민으로 분류됐는데,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시민과 함께했던 김 추기경님과 가장 어울리는 이미지가 옹기였다.” 영화 후반부에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수환이 집 마당에 있던 커다란 옹기에서 나와서 저 산 너머로 걸어가는 장면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낮춘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

시나리오 작업과 함께 가장 난항을 겪은 것은 역시 캐스팅이었다. 어린 수환과 그의 부모 역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이때 최 감독의 친구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었다. 연세대 신학과 84학번 동기인 안내상은 기꺼이 아버지 역을 맡아줬으며, 수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어머니 역은 대학 후배인 봉준호 감독이 추천한 이항나에게 돌아갔다. “내상이는 10년 정도를 같이 살다시피 했다. 이전의 제 영화 ‘플라이 대디’와 ‘해로’에서는 특별출연만 했는데 이번에는 정식으로 캐스팅을 요청한다고 메일로 편지를 썼다. 이항나 씨는 봉 감독이 영화 ‘4등’에서 연기를 잘 했다며 추천을 했다. 저도 ‘4등’을 봤던 터라 좋았다.”

가장 큰 고민은 어린 수환이었다. “캐릭터적으로 김 추기경님과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오디션 첫날 세 번째로 주연을 맡은 이경훈 군이 들어왔다. 옆모습을 보는데 인중과 입모양이 김 추기경님과 너무 비슷했다. 또 연기도 틀에 박힌 학원 연기가 아니어서 좋았다.” 이후 257명의 아역을 봤지만 최 감독의 마음에는 세 번째 소년이 마음에 남았고, 그가 어린 수환이 됐다.

■‘저 산 너머’에 얽힌 운명 같은 우연

‘저 산 너머’가 탄생하고 개봉하기까지 운명 같은 우연이 여러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이항나에게 일어났다. 2018년 크리스마스에 우연히 서울 명동 거리를 가족과 걷던 이항나는 무교임에도 명동성당의 아름다운 불빛에 이끌려 난생처음 기도를 드렸는데, 이틀 후 ‘저 산 너머’의 시나리오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저 산 너머’의 메인 세트인 수환네 집은 여러 곳을 알아보다가 남 회장의 고향인 충남 논산의 한 고구마 밭에 지어졌다. 그런데 그곳에서 6㎞ 떨어진 곳에 김 추기경 할아버지 생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추기경도 생전에 몰랐던 사실이다.

영화에는 김대건 신부가 동굴에서 강론하는 장면이 있다. 동굴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크랭크업을 앞두고 섭외가 된 곳이 전북 고창 선운사 도솔암이었다. 이미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선운사의 어떤 스님은 아홉 가족이 극락 간다고 해서 스님이 됐다고 하더라”고 말하는 장면을 촬영했으니 이 또한 기막힌 우연의 일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정의 달에 맞춰 개봉하기 위해서 30일을 개봉일로 잡았는데, 그날이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무엇보다 김 추기경이 한국 최초이자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 받은 1969년 4월 30일과 같은 날이었다.

“지난 26일 영화의 배경이 된 경북 군위에서 시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담임 신부님이 인사말을 하며 이 사실을 알려주시는데 소름이 끼쳤다. 올 초만 해도 4월 30일은 황금 시즌이어서 우리 영화가 개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개봉하는 대작들이 없어서 우리 영화가 이날 개봉할 수 있었다. 어려운 시기에 모두에게 우리 영화가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극장에 관객이 없는데 우리 영화가 극장에 관객들을 다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최 감독의 말처럼 ‘저 산 너머’가 종교를 떠나 대중과 한국 영화계에 위로와 희망의 씨앗이 됐으면 한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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