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나는 나면서부터 알았던 사람이 아니며,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배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때 중요한 건 묻고 또 묻는 태도다.
공자가 추인지자(郰人之子)라는 힐난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예라면 내로라 하는 공자다. 그가 노나라 시조인 주공(周公)의 사당, 태묘에서 매사를 꼬치꼬치 물었더니 “누가 추인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했냐”는 뒷말이 나왔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추읍의 대부를 지냈기 때문에 공자를 ‘추인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 결국 제대로 예를 모르고 아는 체 하는 것 아니냐는 시비를 건 셈이다. 이 말을 듣고 공자는 “이것이 바로 예”라고 점잖게 정리했다. 그만큼 겸손하며, 제대로 알 때까지 묻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는 이야기일 터.
공자에겐 주위의 모든 이가 스승이었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노자를 찾아가 예에 대해 물었다거나, 사양자에게서 거문고를 배우거나 장홍으로부터 음악을 익혔다는 기록 등이 그 예다. 순임금의 소(韶) 음악을 배울 땐 3개월 동안 고기맛을 잊어버릴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런 적극적인 자세는 제자들을 교육할 때 더욱 효과를 발휘했다. 유교무류와 교학상장이 대표적이다. 모든 사람을 가르쳐 이끌 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유교무류(有敎無類)와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 있었기에 끊임없는 자가발전이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분해서 밥 먹는 걸 잊고, 알고 나면 즐거워서 근심을 잊고, 시나브로 늙어가는 세월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공자의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절정은 세상 사람이 성인이라고 추켜세울 때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다. “성인이나 인의 경지라니 내겐 가당치도 않다. 다만 그렇게 되고자 공부함에 싫증내지 않고, 남 가르치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것이라면 몰라도.”
온 세상을 스승으로 모신 만큼 제대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뜻을 세운 공자의 면학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