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비올라 ‘the lovers’ 등과 교감
전통적인 회화에서 말이 달리고, 발레리나가 아름답게 춤을 추고, 플랫폼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들어 오는 증기기관차를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렇지만 이는 움직임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듯한’ 찰나를 포착한 정지된 한 장면에 한정됐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동시대 미술에서 ‘움직임’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이렇게 구현되는 작품은 현대 과학기술의 척도를 보여줄 수 있지만, 미술 본연의 감성을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동시대 미술가들에게 ‘기술을 어떻게 통제해 움직임과 감성을 선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  |
| 설치미술팀 KEEN의 ‘아무도 살지않는다’. 폐가 등에서 수집한 문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사람이 지나가면 저절로 문이 열고 닫힌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
작가들이 이런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기술을 활용한 움직임으로 감성을 소통하고 교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Emotion in Motion’ 전이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듀오 1팀과 작가 7명이 선보인 영상·설치·뉴미디어·사진 작품 16점이 전시됐다. 부산과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들은 기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움직임에 특별한 표정과 언어를 녹여내 관람객과 작품이 교감하고 소통하는 것을 유도했다.
2층 전시장에 들어서자 망가지고 녹슬고 낡은 문 150여 개로 만든 설치미술 ‘아무도 살지 않는다’가 있었다. 정찬호 작가와 김수 작가가 함께 작업하는 KEEN이 제작한 작품으로 문은 지역 폐가에서 모았다. 문 곳곳에는 LPG 가스집 전화번호가 적힌 스티커와, 깨진 유리에는 옛날 신문이나, 대중가요 가수의 30년 전 잡지 사진이 붙어져 있어 세월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작품 속을 거닐면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닫히고 열렸다. 철거당하기 직전 재개발지역 골목길을 거니는 묘한 향수에 빠졌다. ‘저런 문 뒤에는 누가 살았구나’ 하는 기억도 떠올랐다. KEEN은 “문으로만 이뤄진 골목을 재현해 다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 스스로 열리고 닫히는 문들은 이쪽과 저쪽 사이에 경계를 만들지만, 문 뒤편은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공간이 된다”고 설명했다.
빌 비올라의 2005년 작품 ‘the lovers’도 눈길을 끌었다.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작품이다. 두 남녀가 물대포와 같은 긴박한 상황을 만났을 때의 움직임을 극단의 느린 영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서로를 격하게 안으면서 지키는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각각 배려하는 감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장지아 작가는 여성의 성과 노동을 주제로 한 영상작품 ‘아름다운 도구들3’을 선보였다. 영상에 나오는 기구는 1950년 사용된 마차, 전차 바퀴를 모아 만들었다. 이 기구의 바퀴에는 새 깃털이 달려 있어, 의자에 올라 바퀴를 굴리면 다리 사이를 스치게 고안됐다. 영상 속 여성들은 의자에 앉아 바퀴를 굴리며 기독교 성가를 부른다.
장 작가는 “바퀴는 중세에 신체를 절단하거나 뼈를 부러뜨리는 고문도구로 쓰이기도 했다”며 “이번 작품에는 바퀴를 굴리면 노동의 고통과 성적환희의 순간을 공유하는데, 행위가 유사해도 상황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작가의 성 소수자와 관련한 메시지를 담은 사진 작품 ‘O-N-M-Y-M-A-R-K-!(나를 따르라)’도 눈길을 끌었다. 이성애자·게이·레즈비언·양성애자·트랜스젠더 10여 명에게 몸에 ‘키스마크’를 새기도록 하고 이를 촬영했다. 전시는 오는 7월 26일까지. (051)220-7400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