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음을 사사(師事)라 하고,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 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학문을 닦음을 사숙(私淑)이라 한다. 안연이나 자공이 공자를 사사한 제자라면 맹자(사진)는 사숙한 제자다.
공자 사후 100년 정도 뒤 태어난 맹자는 의(義)로 유가의 지평을 넓혔다. ‘공맹지도’라는 타이틀을 얻어 청출어람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한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하다는 맹자의 주장을 들어보자.
“생선 요리도 내가 먹고 싶고, 곰 발바닥 요리도 내가 먹고 싶지만, 한 가지만 먹고 싶다면 생선 말고 곰 발바닥 요리를 먹을 것이다. 그냥 사는 것도 내가 살고 싶은 것이고, 정의롭게 사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다면 그냥 사는 것을 버리고 의로운 삶을 살 것이다. 내가 사는 것도 소원하는 것이지만, 사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그래서, 구차하게 살지 않을 것이며, 내가 죽는 것도 싫어하는 것이지만, 죽기보다 더 싫은 것이 있다. 그래서 환란을 피하지 않는 바가 있는 것이다. (…) 이 또한 그만 둘 수 없는 것이겠는가. 이것을 본래 마음을 잃어버렸다고 함이다.”(성백효 역주 ‘맹자집주’ 고자 상편 10장)
이를 두고 도올 김용옥은 ‘맹자 사람의 길’에서 “맹자는 너무도 강렬하게 우리 인간에게 도덕적인 삶의 실천을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권유는 이론적 각성이 아니라 즉각적인 삶의 반추이며 실천이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맹자는 “그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말며, 그 하고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려고 하지 말 것이니 이와 같을 뿐이다”고 했다.(성백효 역주 ‘맹자집주’ 진심 상편 17장) 맹자가 공자의 인에 자신 철학의 핵심인 의를 확장한 연유를 여기서 알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이를 갈무리했다. “도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 지극하도다!”(이호형 역주 ‘다산맹자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