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탁기로 가사 해방? 주부 일감은 더 늘었다

세탁기의 배신- 김덕호 지음 /뿌리와이파리 /1만8000원

  •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  |   입력 : 2020-05-21 19:31:57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생활가전 집안일 줄인다 했지만
- 청결·위생 기준 갈수록 높아져
- 지난 100년 노동시간 되레 증가
- 최근 감소세는 페미니즘 운동 덕

울컥했다. “엄마는 밥 하는 사람”이라는 아이의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과는 또 달랐다. “가사기술이 여성들을, 주부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켰는가”라는 질문에 정면에서 “아니다”고 말하는 책을 만나서다. 식사를 준비할 때 전기밥솥, 가스레인지를 이용하고 간간이 레토르트(즉석조리) 식품을 요리하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의 도움을 받는다. 빨래는 세탁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하는데도 집에서는 하루종일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기분이다. 앞선 세대와 비교해 배부른 투정 같아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지만 ‘세탁기의 배신’은 “여성들이 집안일에서 해방된 적은 없다”며 주부의 힘든 가사노동을 알아 준다.
LG전자가 1996년 부산지역 각 대리점을 순회하며 식기세척기 세탁기 등 가전제품 실연 판매행사를 하는 모습. 국제신문DB
가전제품은 주부들에게 편리함, 편안함, 효율성을 준 대신 더 많은 일을 만들어주었다는 게 전체 내용이다. 세탁기가 힘든 빨래를 힘이 덜 들게 하고 과정을 단순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가 지나면서 개인위생과 청결 기준은 훨씬 높아졌다. 아침 저녁 가족 수만큼 수건이 쏟아져 나오고, 매일 셔츠와 외출복이 세탁기에 쌓여 간다. 세탁기 때문에 가사노동의 강도가 줄어 든 대신, 빨래 횟수가 늘어나면서 세탁에 드는 총시간은 오히려 증가하게 됐다. 저자는 가전제품이 여성을 해방시키기는커녕, 결과적으로 주부들에게 또 다른 일거리를 만들어 주면서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지겨운 일과가 돼 여성들을, 주부들을 해방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특히 1920년대 미국 소비자본주의의 첨병에 선 광고 사진들을 통해 당시 가전제품의 광고 메시지가 소비자(주부)의 욕망을 어떻게 충족하고 설득시켰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상품 광고의 이미지들과 메시지를 통해 표현된 가사기술의 능력과 이상적인 여성상은 ‘지옥 같은 세상’에서 남편이 고군분투한 뒤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집을 ‘천국 같은 안식처’로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이었다.

저자는 지난 100년간 가사노동의 사용시간이 감소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지만, 이는 가사기술의 도입과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웬만한 가전제품들이 포화상태에 이르던 1950~60년대에도 가사노동시간은 크게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미국에서 주부의 가사노동시간이 감소한 것은 집안의 기계화와 전기화가 가져다 준 현상이라기보다는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력 하에 남편의 가사노동 참여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안타깝게도 저자의 분석대로라면, 현재와 같은 소비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더 많은 가전제품이 출현하더라도 역사학자 루스 코완이 제기한 ‘기이한 패러독스’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100년간 노동절약을 목표로 한 가사기술은 주부의 힘든 일은 줄여주었는지 몰라도 가사노동시간은 줄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가 주목한 근본적인 이유는 남편의 일자리에선 노동에 대한 대가로 임금이 제공되지만 가사노동은 시장경제에 포함되지 않는 ‘그림자노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낱 같은 희망이지만 가사노동이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최소한이라도 공평하게 분배되고, 여기에 자녀들이 자발적으로 가사노동에서 자신들의 일을 찾아 부모를 돕는다면 ‘코완의 패러독스’는 상당부분 해결될 여지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4. 4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5. 5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8. 8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9. 9[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10. 10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3. 3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4. 4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5. 5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6. 6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7. 7"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8. 8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9. 9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10. 10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5. 5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6. 6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10. 10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무상교체 방침
  1. 1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2. 2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3. 3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4. 4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5. 5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6. 6[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9. 9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10. 10[한 손 뉴스] 변호사 업무 재개한 홍준표, 대선 경선 관계자 변호 맡아(종합)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3. 3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우리은행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한국문학관 기행
바람처럼 자유로운 김홍신 문학을 ‘건축언어’로 표현한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송현화-Magic Airs
지나-마음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경비원 /박필상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8일 (음 9월 18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7일 (음 9월 17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지리산 연곡사를 찾아 시 읊은 매천 황현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