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가 콕 집어 비난한 ‘향원’
- 사이비 진실·신의·청렴으로
- 덕 어지럽히는 인물로 묘사돼
- “권력자는 균등·화합 이뤄야”
- 새로 임기 시작한 의원 300명
- 한 명도 향원으로 전락 말기를
5일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인 망종(芒種)입니다. 벼나 보리의 겉껍질에 붙은 깔끄러운 수염, ‘까끄라기’가 ‘망’입니다. ‘종’은 ‘씨’와 ‘뿌리다’는 의미를 함께 가졌지요. 망종은 모내기에 적당한 시기라는 뜻입니다. 보리 베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벼농사와 보리 수확이 겹치므로 농부가 바빠지는 때랍니다. 오죽했으면 ‘발등에 오줌 싼다’는 소리가 나왔을까요. 이번 주말 근교로 나들이 한다면 부지런한 농부들이 이미 모내기를 끝낸 논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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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대 국회 개원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린 국회 본관 앞 모습. 이용우 기자 |
벼든 보리든 튼실한 알곡은 풍요의 상징이자 농부의 자부심이지요. 그런데 농사를 짓다 보면 불청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알맹이 없는 ‘쭉정이’는 농부의 마음을 아프게하지요.
‘가라지’는 더 심합니다. 논에선 볏과의 한해살이 풀 ‘피’가 가라지겠지요. 벼 같으면서 벼가 아닌 피가 벼의 성장을 방해하는 탓입니다. 비슷한데(似), 그러나(而), 아닌(非), 사이비(似而非)는 농사를 망치는 원인이지요.
사이비가 비단 농사에만 문제겠습니까. ‘피 다 잡은 논 없고 도둑 다 잡은 나라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논의 피를 아무리 뽑아내도 한없이 나오듯이 도둑도 끝없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서 푼짜리 물건 훔치는 사람만 도둑일까요. 여성을 못 살게 굴고, 음식 가지고 장난치고, 세금 축내고, 한 줌도 안 되는 권세로 제 세상인양 뭇사람 위에 군림하고…. 세상이 더 맑아지고, 더 살 만해지려면 이런 도둑, 사이비를 가려내는 일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사이비’는 ‘맹자’(孟子) 마지막 편인 ‘진심’(盡心) 끝부분에 나옵니다. 맹자가 제자인 만장(萬章)에게 공자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공자께서 꼭 집어 미워하신 향원(鄕原)입니다. 향원은 ‘마을에서 신실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으로 그 자체로는 나쁜 뜻이 없으나, 공자께서 위선적인 인물로 지칭하면서 부정적 의미를 띠게 됐지요. 사이비 군자, 지금으로 치면 사이비 지식인이나 사이비 정치인이겠지요. 제21대 국회 임기가 지난달 30일 시작됐습니다. 전체 300명 의원 중 151명이 초선입니다. 모든 의원이, 특히 초선 151명 가운데 한 명도 ‘사이비 정치인’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라나 델 레이의 ‘Money Power Glory’(QR코드 스캔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l3t8L5sfJto)를 들으며 시작합니다. 끊임없이 돈과 권력과 영예를 되풀이는 하는 가사는 오직 ‘나만을 위한 세상’을 부르짖는 듯합니다. 그 반대의 세상을 그리면서 들어주세요.
■공자가 그토록 미워한 사람, 향원
‘논어’(論語) 17편(양화) 13장. 공자 말씀이 단호합니다. “향원(鄕原)은 덕의 적(德之賊·덕지적), 파괴자이니라.”
인(仁)을 주창한 공자께서 적이라 규정한 향원은 어떤 존재일까요. 주자의 설명부터 볼까요. ‘덕과 비슷하나 덕이 아니다. 오히려 덕을 어지럽게 하니 덕의 적이 된다. 그래서 깊이 미워하신다’니 알쏭달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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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장을 찾은 초선 의원들. 이용우 기자 |
‘맹자’에 속시원한 답이 있습니다. 향원은 평소 진실하면서 신의가 있는 듯하고 청렴결백한 것 같아서 사람들이 다 그를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사이비 진실, 사이비 신의, 사이비 청렴, 사이비 결백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의 말씀을 덧붙입니다.
“비난하려 해도 들추어낼 것이 없으며, 풍자하려 해도 풍자할 것이 없으며, 세상에 영합하여, 바른 것과 비슷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이비를 미워한다. 가라지를 미워함은 그것이 곡식을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 궤변을 미워함은 그것이 의(義)를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 말 잘하는 자를 미워함은 그것이 신(信)을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 정나라 음악을 미워함은 그것이 아악을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 자주색을 미워함은 그것이 붉은색을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고, 향원을 미워함은 그것이 덕을 어지럽힐까 염려해서이니라.”
덕은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는 인격의 원천이지요. 위선을 일삼고 세상에 아첨하는 향원과 달리, 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 즉 군자(君子)입니다. 공자께서 ‘성인은 아직 보지 못했으나 군자만이라도 만나봤으면 좋겠다’던 그 군자죠. 21대 국회의원 모두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권력을 가진 자가 진정 걱정할 것
이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진정 걱정할 것’을 물으며 마무리하겠습니다.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소임을 다해야 하겠지요. 표를 준 유권자도 이를 두 눈 부릅뜨고 살펴봐야 합니다.
공자께선 ‘논어’ 16편(계씨) 1장에서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며(不患寡而患不均·불환과이환불균), 가난을 근심하지 말고 안정되지 못함을 근심하라(不患貧而患不安·불환빈이환불안).” 노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계손씨 일족이 작은 땅, 전유를 삼키려고 합니다. 그 속내를 정확하게 짚은 공자께서 오히려 위정자가 살펴야 할 세가지 요소를 강조합니다. 고른 분배인 균(均), 이를 통한 조화인 화(和), 그리고 분배와 조화로 이뤄지는 평안인 안(安)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인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나 다름 없습니다. 향원 같은 사이비 정치인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던 백범 김구도 강조했던 바입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위해 백범은 보잘 것 없고 힘든 일을 서로 다투어서 하는 ‘쟁족’(爭足)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21대 국회가 산뜻하게 출발하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선명해집니다. 국회 문을 제대로 열도록 여야가 뜻을 모아야 하고, 위안부 후원금 횡령 의혹 등 논란에 휩싸인 윤미향 의원 거취를 매듭짓는 일입니다. 열쇠가 없는 게 아닙니다. 다산 정약용이 남긴 ‘육렴’(六廉)입니다. ‘목민심서’ 내용을 두 글자로 압축하면 공정과 청렴, 공렴(公廉)이 되듯이 목민관으로서 자세를 다잡는 기둥입니다. 그것은 재물과 여색 그리고 직위에 청렴하며 투명한 공직생활과 공직자로서의 위엄, 강직한 성품을 요구합니다. 의원 생활의 좋은 좌표 아닐까요.
사연만큼이나 여운이 긴 노래로 마치겠습니다. 1930년대 쿠바 여성 가수가 옛사랑을 회상하는 내용의 작품을 만듭니다. 이를 쿠바의 재즈 그룹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리메이크했고, 여기에선 10대 남매가 부릅니다. Isaac et Nora의 ‘Veinte aʼnos’(QR 코드 스캔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oDEu39FLYpw)가 주는 청량감이 남다릅니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