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앞을 지나며 들어오지 않더라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을 자는 오직 향원뿐이다.”
공자가 향원을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맹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맹자는 향원 비판을 마무리하며 “군자는 떳떳한 도를 회복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군자와 향원 사이 간극이 너무 크다. 공자가 제시한 또 다른 인간상에 주목하는 이유다. 맹자의 설명이다.
“공자께는 ‘중용의 도를 행하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할 수 없다면 반드시 광자(狂者)와 견자(獧者)를 택하겠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셨다.”
광자와 견자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뜻이 높고 크지만 말한 바를 다 실천하지 못하는 광자다. 광자 다음이 견자다. 청렴하지 않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지만 다소 소극적인 사람이다.
이런 광자와 견자를 오히려 향원이 비판했으니 참으로 향원은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는 격이다. 이를 두고 맹자는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향원”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엔 향원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낯빛은 근엄하고 옳은 소리만 하니 자태와 언행이 참된 군자의 그것과 닮아 있고, 근후하여 꼬집어 비난할 데가 없으니 군자의 행실과 비슷하다. 당연히 성현은 이런 인물을 더욱 깊이 경계한다. 세상에 아부하면서도 항상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속된 무리와 한 패가 되어 무사안일과 적당주의에 안주한다. 결국 개혁을 방해하고 참된 정치의 진로를 막아 혹세무민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치는 인물이 바로 향원이다.” 율곡 이이의 지적이다.
군자를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로 바꾸면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을 규명하는 청문회 불참 탓에 ‘향원’이란 꼬리표가 붙은 전직 청와대 인사가 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