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간 英 소방관 지낸 저자
- 위기 대처 때 의사결정법 연구
- 실제 사례·생생한 현장 묘사
- 훌륭한 행동심리학서에 감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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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심리학자 소방관’인 사브리나 코헨-해턴이 20년의 현장 경험과 10년의 심리학 연구 성과를 한 권에 담아 ‘소방관의 선택’을 출간했다. 사진은 저자가 강연하는 모습.
북하우스 제공 |
터널에서 폭탄이 터졌다. 순식간에 터널 안이 시뻘건 화염으로 뒤덮였다. 잠시 뒤 화재는 진압됐지만 터널 속 연기는 빠지지 않았다. 115명이 대피했지만 여전히 30명 이상의 부상자가 터널 안 어딘가에 갇혀 있다. 아뿔싸. 믿을 만한 정보에 따르면 20분 뒤 강력한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터널 안에 20명의 대원(소방관)이 구조작업 중이다. 당신은 소방구조대의 총지휘관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원들을 즉시 철수시켜 터널 밖에서 안에 갇힌 민간인들이 죽기를 기다릴 것인가? 그런데, 폭발물이 터지지 않았다면? 그 때문에 구조가 지체돼 중상자들이 죽는다면? 당신은 자신의 결정이 최선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눈앞에 펼쳐보이듯 생생한 상황 묘사와 내 판단이 누군가의 생사를 좌우한다는 압박감에 숨이 막힌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재난 현장에서 지휘관은 짧은 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최소한의 인명 피해를 염두에 둔 선택지를 골랐을지라도 그 결정의 끝에서 후회와 죄책감, 트라우마가 엄습할 것이다.
‘소방관의 선택’은 ‘심리학자 소방관’인 저자가 20년의 현장 경험과 10년의 심리학 연구 성과를 한 권에 담은 책이다. 18세에 소방구조대에 들어가 영국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여성 소방관의 자리에 오른 저자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을 최악의 운명에서 구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소방 지휘관으로서 동료들 중 누구를 타오르는 건물 안으로 들여보낼지, 어떤 방식으로 불길을 잡을지, 누구를 먼저 구할지를 결정한다. 모든 선택지가 소진되고 더는 희망이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면 비록 구조해야 할 사람이 있더라도 대원들을 철수시켜야 한다. 지휘관의 결정 하나하나는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의 차이로 나타난다. 이 책은 재난을 마주하고 선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지 등을 살펴보면서 급박하고 압박감이 큰 상황에서 최선의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긴박한 전개로 마치 소설이나 영화처럼 흡입력 있게 읽힌다는 점이다. 때때로 상황 묘사가 너무 적나라해 책을 읽으면서도 사고 현장에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책 속의 모든 현장 사례는 저자가 겪었던 실제 상황에 기반했고, 연구 사례 또한 동료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학적·신경과학적 실험을 토대로 했기에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저자의 해법에 믿음이 간다. 실제 저자는 소방 지휘관의 헬멧에 카메라를 부착해서 지휘관들이 현장에서 어떤 방법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지 연구한 결과, 분석적 접근보다 직관에 의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현장 이론가’답게 저자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의사 결정법과 훈련 시스템을 개발해 영국 전역의 소방 구조 시스템에 혁신을 가져왔다. 많은 소방관이 매년 목숨을 잃고, 그것이 순간적인 판단 착오 때문이라는 현실을 개선하고 싶어 심리학을 공부하고 위기 상황에서의 의사결정법을 연구했다는 저자의 집필 동기를 읽고 나면 훌륭한 행동심리학 책인 동시에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라는 감동이 더해진다.
임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