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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공 |
자공은 노나라를 중심으로 무역업을 했다. 때에 맞춰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게 비결이었다. 사마천이 ‘사기’(史記) ‘화식열전’에 적었다. “자공은 사두마차를 줄줄이 거느리고 비단 예물을 갖춰 제후들을 만나니 이르는 곳마다 제후들이 예를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공자의 이름을 천하에 두루 떨치게 한 것은 자공이 전후에서 주선한 덕분이다. 세력을 얻으면 더욱 빛난다.” 그래서 중국 상인들이 요즘도 ‘단목생애’(端木生涯)라는 현판을 내걸고 사업을 하는 것이리라. 자공의 성은 단목이고 이름은 사(賜)다.
사마천은 자공처럼 부를 일군 사람을 두고 “일반 백성은 상대방 재산이 자기보다 10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100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1000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하고, 1만 배 많으면 그의 하인이 된다”고 평했다. 이렇게 젊을 때 가난을 이겨내고 부와 명성을 쌓은 뒤 자공은 인과 의를 바탕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했다. 바로 ‘빈이무첨’이고 ‘부이무교’다.
반면 안연은 스승의 가르침 그대로 인을 실천하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가난을 피하지 않았다. 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끼니 삼으며 누추한 곳에 사는 생활을 안연은 즐겁게 받아들였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전형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학문을 좋아하며(好學·호학), 분노를 옮긴 적이 없고(不遷怒·불천노),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았던(不貳過·불이과) 그다. 물질적 궁핍을 극복한 행복한 학인이다.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 말처럼 쉽지 않다. 고민하고 또 실천하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