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 7편 중 6편 노년층 조명
부산 출신의 고금란(72·사진) 작가가 6년 만에 네 번째 소설집 ‘오래된 불꽃’(도서출판 호밀밭)을 펴냈다. 총 7편의 단편 소설로 엮었으며 ‘안개 잦은 지역’의 소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이 든 세대를 조명한다. 고 작가는 “나도 노년층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더 눈길이 가는 것 같다”며 “우리 주변의 이야기고, 내 경험담도 일부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소설집은 낡고 허름한 삶 속에서 반짝이는 생의 한 조각을 발견해내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표제작 ‘오래된 불꽃’의 너실 댁은 물색없이 돈을 쓰며 약장수 공연이나 즐기는 듯 보이지만 어린 시절 펴지 못한 가수의 꿈이 가슴 한구석에 사무치는 인물이다. 부모가 짝지어준 남자와 결혼해 한평생을 아내이자 엄마로 살던 너실 댁은 우연한 기회에 오른 가설극장 무대에서 비로소 자신을 찾는다. “몸을 살살 흔들며 열아홉 순정을 노래하는 너실 댁은 영락없는 열아홉 살 쳐녀 복자다. 객석에서 복자를 바라보는 사람들 또한 자기의 열아홉 살을 떠올리며 입을 모은다. 너실 댁의 변신은 사그라져 가는 그들의 열정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핀다.”(37쪽)
평범한 농부처럼 보이지만 베트남전쟁 파병의 트라우마를 가진 ‘배꽃’의 상만, 개발 이익에 목숨처럼 여기는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두껍아 두껍아’의 도 여사도 녹록지 않은 생을 살아내고 있다.
이처럼 거친 세월의 파고를 견디게 하는 건 위로와 이해다. ‘꽃병을 든 남자’에서 나와 ‘황토아빠’가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영도다리 난간 옆에’의 아들은 아버지 나이의 갑절 이상을 살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순간을 맞는다. “늙은 내가 새파랗게 젊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가끔 바다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싫었으면 그렇게 목숨을 끊었을까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났다. (…) 나는 아버지를 위로하고 싶었고 아버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155쪽)
황국명 문학평론가는 “작중 인물들은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고 슬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마음을 공유함으로써 개개인의 내면뿐 아니라 사회적 삶도 변화될 수 있다는 암시, 이를 고금란 소설 특유의 성찰의 윤리라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부산 영도가 고향인 고 작가는 1994년 계간 <문단> 겨울호 단편소설 ‘포구사람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와 산문집 ‘맨땅에 헤딩하기‘ 등을 출간했고, 2011년 ‘소 키우는 여자’로 제16회 부산소설문학상을 받았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