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가 꿈꿨던 ‘조화로운 세상’
- 원동력은 예악에 있다고 믿어
- 음악에 대한 배움·열정 남달라
- 그 속에서도 중용의 덕 강조해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는 탄생부터 사후까지 그림과 함께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 공자의 발자취입니다. 그 가운데 ‘방악장홍’(訪樂萇弘)은 공자께서 주나라 대부인 장홍을 찾아가 음악을 배웠다는 내용입니다.
| |  |
| ‘공자성적도’ 가운데 공자가 주나라 대부인 장홍을 찾아가 음악을 배웠다는 내용을 담은 ‘방악장홍’. 예와 악을 중요하게 여긴 공자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예악은 정치적인 함의와 함께 수신과 공동체 생활의 매개라는 다중적 의미를 가진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제공 |
그 전후 맥락이 의미심장합니다. 공자께서 앞서 노자를 만나 예(禮)를 물었다는 대목이 하나요, 장홍이 벼슬아치인 유문공(劉文公)과 나눈 공자 인물평이 다른 하나입니다. 예와 악은 공자를 이해하는 키워드.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않으면 예를 어떻게 행할 수 있겠으며, 사람으로서 인하지 않으면 악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는 ‘논어’(論語) 3편(이인) 3장의 공자 말씀을 떠올립니다. 예의 본질, 악의 본질이 사람의 선함에서 나오는 인임을 강조하지요.
우선 ‘방악장홍’ 속 장홍과 유문공의 대화. “겸허하게 예를 몸소 행하고, 성인의 도를 전하며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장홍이 공자를 극찬합니다. 유문공이 되묻습니다. “어떻게 그가.(당시 공자는 30대였고 관직도 변변치 않았음)” 장홍이 설명합니다. “요·순임금과 주나라 문왕 및 무왕의 도가 사라지고 예악은 무너진 지금, 그 기강을 다시 세울 사람이 공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전해 들은 공자의 자평이 걸작입니다. “내가 어찌 감히…. 다만 예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
공자성적도는 사마천의 ‘사기’ 중 ‘공자세가’에 뿌리를 두고 있지요. 방악장홍은 공자께서 장홍을 만났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하지만 장홍과 유문공의 대화 및 공자의 말씀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양념’을 더한 셈인데, 오히려 공자와 음악을 풀어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에피소드이지요. 공자의 롤모델인 주공(周公)까지 합쳐 ‘요·순·우·탕·문·무·주공’은 중국 성왕의 계보입니다. 성왕들이 꽃피운 ‘살 만한 세상’, 질서 있고 조화로운 세상을 되살리는 것이 공자의 정치적 이상이라면, 그 조화와 질서가 바로 예악으로 이뤄진다고 믿었던 사람이 공자입니다. 약육강식의 정치 현실 탓에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평생 예악에 충실했던 사람, 공자.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논어’를 인생 최고의 책으로 삼았던 현대 국악 개척자 황병기(1936~2018) 선생이 만든 가야금 창작곡 ‘비단길’(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niLSj65tpJI)을 들으며 시작하겠습니다.
■중용미덕 지킨 생활 음악인 공자
| |  |
| 공자는 순임금의 음악인 소악(韶樂)을 두고 ‘극진히 아름답고 극진히 좋다’며 극찬했다. 특히 악은 시와 무용을 더하며 조화를 이룬다. 중국 곡부의 소악 공연 모습. 국제신문DB |
‘논어’ 8편(태백) 8장. “시(詩)에서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예에서 서며, 악에서 (인생의 완성을) 이룬다.” 흥어시(興於詩) 입어례(立於禮) 성어악(成於樂)이란 이 공자 말씀은 인간 성품의 근본적 어짊을 표현합니다. 그 내용은 시와 예로, 과정과 완성은 음악으로. 황병기 선생이 감명 받아 ‘논어 백가락’이란 책을 쓴 바로 그 구절입니다.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 순임금의 음악인 소악(韶樂)을 들으시고, 이를 배우는 3개월 동안 고기맛을 모를 정도로 심취하셨다는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지요. 온전히 음악에 심취한 생활 음악인 그 자체입니다. 소악에 대한 공자의 평가는 ‘극진히 아름답고 극진히 좋다’고 할 만큼 대단합니다. 고국인 노나라에서 음악을 관장하는 책임자인 태사에게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알 수 있으니, 처음 시작할 때는 오음(五音)을 합하며 풀어놓을 때는 조화를 이루고 분명하고 연속되어서 한 악장을 끝마치느니라.” 음악의 시작과 끝처럼 인생의 출발과 마무리도 이처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너무 감상에 젖어서는 곤란합니다. 낙이불음(樂而不淫)하고 애이불상(哀而不傷)하라는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시경’(詩經)의 관저(關雎) 구절을 인용하며 즐겁되 넘치지 않고, 슬프되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는 음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자는 이를 두고 ‘음란하다는 것은 즐거움이 지나쳐 정도를 잃음이다. 마음을 상했다는 것은 슬픔이 지나쳐 조화를 해침이다’고 풀었습니다. 공자께서 강조하신 중용(中庸)과도 맥이 닿는 이치이지요.
■인생이 예술이 되게 하려면…
‘논어’ 7편(술이) 6장을 빼놓을 수 없지요. “도에 뜻을 두며, 덕을 굳게 지키며, 인을 떠나지 않으며, 예에서 노닐어야 한다.” 지어도(志於道) 거어덕(據於德) 의어인(依於仁) 유어예(游於藝)라는 공자의 말씀입니다. 지는 마음이 가는 바이며, 거는 붙들어 지킴이요, 의는 떠나지 않음이요, 유는 사물을 즐김이라고 합니다. 예는 예(예법)·악(음악)·사(활쏘기)·어(마차몰기)·서(글쓰기)·수(수학)의 육예, 오늘의 교양이나 예술에 해당합니다. 사람의 배움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 도와 덕과 인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예술을 통해 일상의 수행에 힘쓰는 일이겠지요.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의 말씀인 ‘인생이 예술이 되게 하라’(사인생위예·使人生爲藝)와 같지 싶습니다. 공자 시대 예악이 통치 수단이었다면 지금 예와 악은 공동체의 질서와 화합을 유지하는 중요한 매개이겠지요. 인생이 예술이 된다면 세상이 더 조화롭고 질서 있지 않겠습니까.
공자께서 사양자로부터 거문고를 배울 때 보였던 자세를 되새기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처음에 10일이 넘도록 한 곡에 몰두하다, 운율을 익힐 때까지 연습했으며, 이어서 음악에 담긴 의미를 알 때까지 익히며, 결국 음악을 만든 사람을 알 때 마쳤다고 합니다. 음악이 삶이 되는 아름다운 과정입니다.
마치는 곡은 부산 출신인 남성 3인조 아이씨밴드의 ‘바람’입니다.(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cX6MB5iQzmY)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