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각지대 담는 소셜다큐 사진가
- 2년간 대평동 수리조선소 찾아
- 카메라로 노동의 땀 기록해 와
- “고된 일터에 위로 건네고 싶어”
폭우 아니면 폭염이다. 게다가 코로나 19의 기세가 여전하니 여름을 지나기가 쉽지 않다. 만사가 귀찮아지지만 먹고 살아야 한다. 일해야 한다. 매일매일 엄정한 삶을 살아내며 우리는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다. “별일 없이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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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영도구 대평동을 배경으로 생생한 삶의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낸 정남준 사진작가가 다시 현장을 찾았다. |
정남준 작가의 사진집 ‘잘 지내나요’를 보았을 때, 어떻게든 시선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말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이건 좀 밋밋한 제목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책 표지의 사진을 보면서 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작업복, 안전모, 안전화, 미소를 짓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한국어 ‘잘 지내나요’와 낯선 문자. 그 문자는 스리랑카 말이다. “호단 인나마”라고 읽는데, “잘 지냅니다”라는 뜻이란다. 방금 전까지 거친 노동을 하고 잠시 숨을 돌리며 쉬고 있는 듯한데, 그들이 오히려 안부와 위로를 보낸다. 사진집을 펼쳐보았다. 영도구 대평동 수리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차례로 다가와 당신은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고, 자신은 잘 지내며 희망을 품고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소리 없는 말이 천천히 필자의 마음을 물들였다. 지인들에게 잘 지내느냐는 문자라도 보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불쑥 일어난다. 정남준 작가는 2년간 매주 대평동을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그 현장에서 정남준 작가를 만났다.
■현장에 서 있는 사람을 찍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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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지내나요- 정남준 지음 / 빨간집 / 2019 |
정남준은 1970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부산에서 살고 있다. 교지편집실에서 사진을 맡으면서 처음 카메라를 만졌다. “사진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 교내 사진관 사장님을 찾아다녔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쁘신 분을 성가시게 한 것 같습니다. 암실에서의 첫 현상 작업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인화지에 천천히 나타나는 이것이 정말 내가 찍은 것인가 가슴이 두근두근했죠. 사진과 평생 함께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지금 법무법인의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만, 사진도 같은 무게입니다. 삶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사진은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는 노동현장,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 투쟁하는 이들을 카메라에 담는 소셜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2014년에 사회다큐사진집단 ‘비주류사진관’을 만들어 현재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사회적 이슈를 사진에 담는 사진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부산 남문구마을, 만덕5지구 철거 현장, 자갈치 주낙 작업 현장, 서울 구룡마을, 대평동 수리조선소 등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교지에 실을 사진을 찍고, 자료사진을 찾으면서 사회문제와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을 찍은 사진들을 봤습니다.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지요. 사진 전시회에 가보셨어요? 전시 보러가는 사람들은 주로 사진 관계자들이 많아요. 전시 시간은 어떻구요. 일하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사진을 보러 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전시장을 벗어나 현장에서 사진을 전시하는 방식을 생각했지요.” 그는 ‘비주류사진관’ 작가들과 함께 사진을 특수 현수막에 프린트 해 현장그룹사진전을 19차례 한 바 있다.
■안부, 당부, 희망을 담은 사진집
대평동에는 10여 곳의 수리조선소와 200여 개에 달하는 선박 공업사·부품업체가 있다. 정남준은 2017년 봄부터 이곳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작가와 함께 수리조선소와 부품업체가 늘어선 길을 걸었다. 길을 걷다가 바다와 만났다. 작가는 건너편 자갈치 시장을 가리켰다. “저곳에서 주낙 작업을 하는 어르신들을 2014년부터 3년간 찍었습니다. 선주들이 담합해서 싼 임금으로 일을 시켜도 불만 한 번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비린내 때문에 버스도 못 탄다는 어르신들이었지요. 그리고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깡깡’ 소리를 들었지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부산을 상징하는 노동이 뭘까, 그중에서도 고된 노동이 뭘까 생각했지요. 대평동의 수리조선소에서 그 노동의 삶을 만났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었던 마음을 책 말미에서 이렇게 썼다. “수리조선소에서 하는 작업은 상가, 고압 왁싱, 깡깡이 작업, 부품 정비, 도색, 하가 순으로 마무리된다. 그중 아직도 육체노동의 진가가 발휘되는 과정이 바로 깡깡이 작업이다. 깡깡이 작업은 왁싱 작업에도 선박 외판에서 떨어지지 않은 갑각류나 녹슨 철판을 망치나 그라인더로 긁어내어 도장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노동이다. 대부분 여성 고령 노동자들이고, 저임금 중노동 작업이란 점과 물량 부족 등으로 자국 노동자를 찾기 힘들어 점점 이주노동자들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집에서 그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방진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잠시 벗고 있거나, 그들은 노동 현장에 있다. “여기 저기 쭈그리고 앉아/ 더러는 웃으면서/ 더러는 안부를 물으면서”, “굽은 등으로 돌아가는/ 누군가의 뒷모습과 땀 냄새를/ 조용히 바라보던/ 평등한 땅”. 신경현 시인의 시집 ‘당부’ ‘따뜻한 밥’에서 발췌한 문장들이 사진 사이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또 한 번 마음을 흔든다.
정남준은 사진을 찍는 것보다 그분들과 낯을 익히는 게 더 중요했고, 그 시간이 길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곳에서 고향 남해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 도움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작업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 수 있었죠. 말쑥한 모습이 아니라며 쑥스러워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늘 웃어주는 분들의 표정이 마치 ‘나는 잘 있다,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누추하다 여기지 말고, 위험한 현장에서도 부디 다치지 않고, 희망을 잃지 마시라고요. 안부, 당부, 희망. 그것이 이 사진집에 담은 제 마음입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님이 이 사진들을 보고 ‘이건 살아있는 목숨의 예술이다’고 평해주셨어요. 제가 카메라를 들고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무엇을 찍을 것이며, 왜 찍는지, 찍어서 뭐할 것인지 늘 생각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삶과 진실은 그렇게 사진으로 태어났다. 굵은 땀방울 흘리는 누군가가 땀 흘리며 일하는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나요.”
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