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여 년 향토극단 ‘전위’ 지켜온
- 고 전승환 대표의 유작 막 내려
- ‘연극계 버팀목’ 그의 작품답게
- 인생의 깊은 통찰 느껴진 무대
경남 마산 그 어딘가에 자리한 선술집 ‘고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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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별세한 공연예술 전위 대표 고 전승환 선생의 마지막 연출작 ‘고모령에 달 지고’가 지난 19~23일 부산 남구 대연동 나다소극장에서 공연됐다. 전위 제공 |
가게 문을 닫게 된 주인 ‘문 여사’는 고모령에서의 마지막 날을 말벗 ‘땡초’와 함께 마무리한다. 여장부 소리를 듣는 문 여사와 불같은 성격에 어울리는 별명을 가진 땡초는 옥신각신하다가도 이내 죽이 맞아 술잔을 기울일 정도로 막역하다.술병이 늘어날수록 두 사람의 입에서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사연이 하나둘씩 흘러나온다. 문 여사는 손님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었지만 정작 장애가 있는 딸 희야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땡초는 사람들을 속이며 가짜 악사 노릇을 해온 것이 부끄럽다. 깊은 밤 걸려온 의사의 전화에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한 문 여사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하지만 평생 말 한마디 하지 못하던 희야가 “엄마!”라고 부르자 문 여사는 감사와 슬픔에 휩싸여 흐느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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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전승환 선생. |
부산 남구 대연동 나다소극장에서 5일간 이어진 연극 ‘고모령에 달 지고’가 지난 23일 막을 내렸다. 원로 연극인이자, 부산 연극의 최전선을 57년간 지켜온 ‘공연예술 전위’ 대표 고 전승환(1943~2020) 선생의 마지막 연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전승환 선생은 이번 공연을 2주가량 앞둔 지난 6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황망한 상황이었지만, 배우와 제작진은 전승환 선생의 유작을 완성하기 위해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이상용 작가의 단편 희곡을 바탕으로 한 극은 짧고 간단했지만, 깊은 맛이 배어 있었다. 배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술집인 데다 권철·허종오·임선미 단 세 명의 배우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네 자화상 같은 인물들의 인생사를 펼쳐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탄탄했고, 서로 의지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메시지는 관객에게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1970, 80년대 사실주의 연극으로 전성기를 보낸 전위는 1990년대부터 삶을 관조하는 노년 연극을 다수 선보였다. 전위를 이끈 전성환(80)·전승환 형제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생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번 작품 역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겼다. 특히 문 여사가 그토록 기다렸던 희야의 한마디를 듣고 참회하는 모습은 마치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고도’를 마주한 것과 같았다. 전승환 선생 역시 생전 이 작품에 대해 ‘병들어 죽어가는 나약한 인간,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는 이 사죄에 하나님의 권능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 뿐일까?’라는 물음을 남겼다.
긴 인생을 뒤돌아보는 작품이 전승환 선생의 유작이라는 사실에 인생의 드라마틱함을 느낄 무렵 선생의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부산 연극계를 살찌운 선생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어서일까. 극 중 등장하는 찬송가를 부르는 그의 육성이 오래도록 귓가에 머물렀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