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시라면 ‘술 한 잔에 시 한 편’이라던 이태백을 떠올리겠지만 우리나라엔 조지훈(사진) 시인이 있다. 경북 영양 출신인 조 시인은 1920년 12월 태어났으니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시 ‘승무’ ‘낙화’나 시집 ‘청록집’과 함께 술과 관련한 빼어난 산문도 많다. ‘중니(仲尼) 선생이 가꾼 쌀과 노담옹(老聃翁)이 만든 누룩과 실달다상인(悉達多上人)이 길어온 샘물로 빚은 삼도주(三道酒)를 마신다’고 했다. 공자와 노자와 석가모니를 아우르는 삼교회통의 막걸리다. 컬컬하지만 청신한 맛이 일품이라고 자찬했다. 이 정도면 문사로서의 깊은 내공과 애주가로서의 면모가 어디 내봐도 손색이 없다.
또 주력(酒歷)과 주력(酒力)을 측정할 수 있다며 그가 제시한 음주의 18등급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준은 술을 마신 연륜, 같이 마신 친구, 마신 기회, 마신 동기, 술버릇이다. 이에 따라 ‘부주’(不酒),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인 9급부터 애주’(愛酒),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인 초단을 거쳐 ‘열반주’(涅槃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인 9단까지 정연하다. ‘수주’(睡酒),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등 자잘한 재미까지 더했다.
특히 그는 자신을 ‘학주’(學酒), 술의 진경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한껏 낮췄다. 이를 보면 ‘장진주’(將進酒)에서 ‘한 번 시작하면 300잔은 마셔야 한다’며 호기를 부린 이태백보다 오히려 소졸하지만 정감이 더 간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이치 때문만은 아닐 터.
‘술에 취해 채석강에 뛰어들어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고 말았다’는 이태백이다. 조 시인은 1968년 5월 지천명의 수도 누리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태백이 달을 찾아갔다면, 조 시인은 청록파 시인 박목월이 ‘나그네’에서 노래한 술 익는 마을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