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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도의 '논어와 음악'-세상을 밝히는 따뜻한 울림 <18> 제17곡 - 술과 시

정조 ‘술상 정치’로 화합 도모… 음주 절제하면 약이오, 과하면 악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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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선물이자 악마의 유혹 ‘술’
- 공자, 선 넘지 않으며 모범 보여
- 정조, 개혁과 통합위해 술 활용
- 유생에 연회 베풀며 당쟁 수습
- 예의 갖추고 흥취살려 시로 승화

호학(好學) 군주 정조(조선 22대 왕·재위 1776~1800)는 지극정성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는 공자를 배우고 싶다는 것’이라는 ‘정조 묘지문’ 내용이 절절합니다.
   
조선 정조가 술상을 앞에 두고 술잔을 권하는 모습을 한 ‘불취무귀’(不醉無歸) 조형물.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시경’의 시구다. 수원시청 제공(왼쪽), 조선 인조 때 숭례문 앞 남지에서 연꽃을 감상하고자 나이 많은 전·현직 관료들이 모임하는 장면을 그린 ‘남지기로회도’. 12명이 조촐한 술자리를 즐기고 있다. 동아대박물관 제공
두 가지 예를 살펴보죠. 달이 천하의 냇물을 비추듯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베풀겠다는 마음을 담은 호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만큼이나 ‘홍재’(弘齋)라는 호도 유명하지요. 그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로 오늘에 전합니다. 조선 왕 27명 가운데 유일하게 문집을 남긴 정조입니다. 세손 시절부터 사용하던 호 홍재는 ‘논어’(論語) 8편(태백)에서 따왔습니다. “선비는 뜻이 크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공자 제자인 증자의 말입니다. 대학교수들이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임중도원’(任重道遠)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또 하나는 ‘일성록’(日省錄·국보 153호·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760년(영조 36) 1월 세손이던 정조가 처음 시작하여 1910년(융희 4) 8월까지 151년 동안 이어진 왕의 일기입니다. ‘논어’ 1편(학이)의 “나는 매일 내 몸을 세 번 살핀다”(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는 증자의 다짐처럼 스스로 반성하는 자료로 삼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정조는 백성을 고루 잘 살게 하고 문화를 꽃 피우고자 했으나 세상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술을 정치에 활용했겠습니까. ‘개혁과 통합’이라는 정조의 꿈이 담긴 수원 화성에 그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팔달문시장의 ‘불취무귀’(不醉無歸) 조형물이 그것입니다. 정조가 소박한 술상을 앞에 두고 술잔을 권하는 모습입니다.

이를 두고 화성을 만들 때 애쓰는 사람들을 위해 건넨 덕담, 성균관 유생들에게 연회를 베풀며 당쟁을 수습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제안이라는 해석이 공존합니다. 어느 쪽이든 소통과 화합이 핵심입니다. 이 정도면 술의 순기능이겠죠.

정조가 마련한 술자리를 빗대 자식을 훈계하는 다산 정약용의 일화를 덧붙입니다. 술의 역기능도 짚어야죠. 다산은 먼저 큰 붓통 가득 따른 술을 세 차례나 연거푸 마시고도 끄떡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정조의 하사주였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곤드레만드레하는 세태에 직격탄을 날립니다. “소가 물 마시듯 마시는 저 사람들은 뭐냐?”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꼴을 빚댄 듯합니다.

술은 근심하는 마음을 쓸어 내는 빗자루, ‘소수추’(掃愁帚)라고 하나 사람이 의지대로 절제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입니다. 신의 선물인 동시에 악마의 유혹이요, 백약의 으뜸이지만 만병의 근원이라는 술을 공자께선 어떻게 다스렸을까요.



   
신세대 팝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with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SmTRaSg2fTQ)를 들으며 시작하겠습니다. 판소리 수궁가 한 대목이 흥겨운 몸짓과 잘 어우러집니다. 이날치는 조선 후기 8명창 가운데 한 명입니다. 범이 위험신호라면, 음주 경고등과 코로나19 비상등이 한꺼번에 켜진 셈일까요.



■절제와 균형으로 술을 다스린 공자

‘논어’ 10편(향당) 8장 ‘유주무량불급란’(唯酒無量不及亂)은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요. 한 번도 안 들어봤으면 모를까, 한 번만 듣고 만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나 할까요. 공자께서 술은 마시는 양을 따지진 않았으나,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절제와 균형이 돋보입니다. 이를 엉뚱하게 비틀어 해석하다가 훈장에게 혼이 난 훈도 이야기가 전설처럼 서당을 떠돕니다. ‘오직 주량은 한정이 없었으니, (술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난을 일으키셨다’니 경을 칠만 하지요.

‘유주무량불급란’이 술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를 설명한다면, 공자 말씀은 이렇습니다. “나가서는 공경(公卿)을 섬기고 들어와서는 부형(父兄)을 섬기며, 상사(喪事)를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술 때문에 곤란을 당하지 않는 것, 이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겠는가.” ‘논어’ 9편(자한) 15장인 이 구절 가운데 ‘불위주곤’(不爲酒困) 역시 주량에 관계없이 주곤의 어지러움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불교 신자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오계’(五戒)에 ‘술 마시지 말라’가 포함된 이유는 많은 사람이 탐닉하고 곤란에 이르기 쉬운 탓이겠지요. 공자께서도 술을 좋아하고 즐겨 마셨지만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예의규범을 무너뜨리고 의리를 무시하며 소동을 일으켜서 자신을 해치고(망신·亡身) 나라를 망치는(망국·亡國) 우를 범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함께 하는 즐거움… 술, 시로 승화

술을 절제와 균형으로 즐긴다면 응당 더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안주가 아닙니다. 바로 시입니다. 정조의 ‘불취무귀’는 ‘맑고 맑은 이슬이여 / 해가 나지 않으면 마르지 않는도다 / 즐거워라 밤의 술자리 /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시경’(詩經) 시구를 인용한 것입니다. 정조가 보기엔 ‘취하지 않은 사람은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에 안성맞춤이었겠지요.

   
‘시경’을 두고 공자께선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분노와 욕심, 음모와 계산으로 감아치는 술자리가 아니라 사특함이 없는 술자리라면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지요. 그래서 “시에서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예에서 서며, 악에서 인생의 완성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앞선 이가 공자를 롤모델로 살았습니다. 풍류 사상이 신라시대 때 발원했고, 고려 선비들이 ‘한림별곡’을 낳았고, 조선 선비들이 향음주례와 원로를 모시는 기로회를 통해 예의를 다하며 시로 승화했습니다. ‘시주풍류’(詩酒風流)와 맥이 닿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숨지는 참변을 겪은 정조는 통치의 수단으로 승화했습니다. 예의를 갖추고 즐거움을 함께 누리려한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제하의 ‘모란, 동백’(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t9iPR4uTGig)을 들으며 마치겠습니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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