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서울서도 몰려오던 좌천동 ‘자개골목’ 왜 쇠락했나

문화재감정위원 저서로 재조명

  •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  |   입력 : 2020-08-31 19:21:46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1970년대 나전칠기 수요 폭발
- 원자재 공급 원활했던 이점 살려
- 자개 관련 공방 150여 곳 성황
- 특소세 부과·저가품 범람 직격탄
- 현재 영업하는 곳 손 꼽을 정도

부산 동구 좌천동 가구거리를 기억하고 찾는 사람은 많지만, 이곳 뒤편 자개골목을 기억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자개골목은 나전칠기에 쓰인 자개 재료를 가공하고 판매하던 곳이 밀집된 거리다. 한때 나전칠기가 호황을 누리면서 이 골목에는 자개를 엷게 만드는 섭패공방, 자개를 실처럼 잘라 상사를 만드는 절삭 공방, 자개의 문양을 만드는 조각 공방이 5~13㎡ 규모로 밀집할 정도로 번성했다. 최전성기인 1970년 후반에는 150곳이 넘게 있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로만 남았다.
   
영진칠기 정정학 사장(왼쪽)과 끊음질을 하는 나전 장인 강정원 씨.
■부산의 전성기 때 들어선 자개골목

최근 이 자개골목을 재조명한 책 ‘좌천동 가구거리와 자개골목’(사진)이 나왔다. 문화재청 이현주 문화재감정위원이 저술했다. 부산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이 ‘2021년 부산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하나로 내는 부산의 특색있는 문화를 조명한 주제별 조사 보고서 중 1권이다. 책은 자개골목의 화려했던 과거와 지금은 장인 몇몇이 남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현재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현재 부산 동구 좌천동 자개골목 풍경.
자개골목이 부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부산항을 끼고 있어 원재료 수급이 쉬웠고, 생활 수준이 높아 수요도 많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도 분업화된 재료 세공과 공급이 필요한 가구거리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이 위원은 “부산은 원래 전국에서 생활 수준이 가장 높은 곳으로 유행이 시작된 도시였다. 6·25전쟁후 밀수의 본거지로 각종 생필품이 조달되면서 주름치마 등 유행이 시작됐다. 부산지역은 공업화도 가장 빨리 이뤄져 1970년대 전국 시도 중 가장 소득이 높은 도시로 고가품이자 사치품인 나전칠기 수요도 많았다. 이 때문에 부산에서 유행한 고급 나전칠기는 서울로 퍼져 나갔다”고 했다.

그렇지만 1976년 칠기가구가 사치품이라며 특별소비세를 매기게 되면서 성장에 발목이 잡혔다.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 당시 엄청난 수요가 있었고 고급 물품이었다는 이야기다. 세금은 구매가에 30%에 달했다.

이 위원은 “겉보기에 화려한 빛깔과 정교한 기술로 꾸며진 사치 물품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제작하는 업체나 숙련공들은 영세한 환경에서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고 작업했다. 이런 세금 때문에 더는 산업이 성장하지 못했고, 1989년 과세 대상에서 풀려났을 때는 하향 곡선에 들어섰다”고 했다.

■특소세로 성장 발목…저가품 탓에 애물단지 전락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유행이 전국에 퍼져 나가자 제대로 된 나전칠기로는 이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옻칠 대신 캐슈나 속칭 니스라고 불리는 바니시나 폴리에스테르 수지 칠을 한 저가품이 범람했다. ‘나전칠기는 고가품’이라는 인식이 옅어지고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또 아파트로 주거 공간이 바뀌면서 붙박이장이나 원목을 선호하는 등 미적 감각이 바뀐 것도 한 원인이다. 수공으로 제작하다 보니 치수도 제각각이었다. 이 위원은 “아홉자 장롱을 샀는데 실제 방에 들여놓고 보니 여덟자 반밖에 안 되는가 하면, 치수가 너무 커서 장롱이 들어가지 못해 창문이나 천장을 뜯어서 넣는 황당한 경우도 생겼다. 심지어 어느 가정에서는 장롱을 세워놓지 못하고 눕혀서 사용하는 경우까지 생겼다”고 설명했다.

IMF 이후 숙련공들이 떠나면서 1990년대 후반 좌천동 내 칠기가구점은 26개로 줄었다. 가끔 들어오는 주문도 품질과 단가는 물론 납기 기한을 못 맞추게 됐다. 이 때문에 나전칠기를 원하는 이들은 타지역 명인들이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을 사거나 이들에게 주문 제작했다. 그는 “이곳은 부산 공예 산업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재조명 작업이 필요하다. 장인인 절삭공 이일환 선생, 섭패공 이덕수 선생, 나전장 강정원 선생 등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이분들 덕에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2. 2“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3. 3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4. 4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5. 5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6. 6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7. 7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8. 8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9. 9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10. 10“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4. 4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5. 5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6. 6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7. 7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8. 8[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9. 9[속보] ‘실탄 없이 경계 근무’ 사례 추가 확인, 국방부 기관 경고 방침
  10. 10‘盧 수사’ 與-한동훈 논쟁 확전…“석고대죄하라”-“성역화 말라”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3. 3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4. 4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5. 5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6. 6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7. 7“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8. 8[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9. 9주민번호 대량 유출 빈번, 최근 6년 505만 건 털려…‘온라인 번호’는 278만 건
  10. 10어선원 직불금, 60일 승선하면 받는다
  1. 1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2. 2“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3. 3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4. 4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7. 7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8. 8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9. 9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0. 10“디지털농업·특화브랜드로 청년농부 유입 이끌 것”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세연-Find Your Brave
박자현-꾸지 않는 꿈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6일 (음 8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5일 (음 8월 25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택당 이식이 가을의 찬 기운을 읊은 시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