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1> 삼국유사는 앞선 한국학이다

기록 모은 자료집일 뿐이라고? 수천년 역사·문화 다룬 ‘국학’이다!

  • 정천구·고전학자
  •  |   입력 : 2020-08-31 20:05:04
  •  |   본지 2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지난 100년간 역사학계는
- 귀한 역사기록의 모음집 정도로
- 삼국유사의 가치를 평가해 왔다

- 그러나 사료를 해석하고 논하는
- 일연의 기술방식을 들여다보면
- 엄연한 학문서임을 알 수 있다

- 우리 민족의 특수성과 강인함
- 그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다면
- 이 책이 그 답을 줄 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의 고전인 ‘삼국유사(三國遺事)’(1289년)는 20세기 초 일제 강점 아래서 민족의 정기가 말살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비로소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때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조선사(朝鮮史) 정리(整理)에 대한 사의(私議)’(1920년대)라는 글에서 “삼국유사는 그 저자 일연(一然)이 조선의 불교원류(佛敎原流)를 기술한 자이니, 이는 조선종교사(朝鮮宗敎史)의 일부분이 될 뿐이다. 참 조선을 알게 된 조선사가 아니다”고 썼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의 감은사지. 신라 문무왕의 사연과 함께 ‘삼국유사’에 등장한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삼국유사 해제’(1927년)에서 이렇게 썼다. “‘삼국유사’는 조선 고대사의 최고(最高) 원천이며 일대백과전림(一大百科典林)으로, 일연의 공은 서방의 헤로도토스에도 비할 것이니라. 누가 ‘삼국유사’를 출발점으로 하지 않고서 조선의 신학(神學)을 말하며, 조선의 신화학(神話學)을 말하며, 조선의 사회력(社會力)과 그 발달사를 말하며, 고어학(古語學)·지명학(地名學)·씨족학(氏族學)·문학사·사상사·종교사를 말할 수 있으랴.”

신채호가 ‘삼국유사’를 불교사를 기술한 것으로 조선종교사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한 것과 달리 최남선은 조선의 모든 것을 아우른 일종의 백과전서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토록 상이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과연 누구 평가가 타당할까?

■자료집인가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후기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를 서술한 역사서. 사진은 국보 제306-2호 ‘삼국유사’ 정역본(서울대 규장각 소장).
앞서 최남선은 조선의 신학과 신화학, 언어학, 지리학, 문학사와 사상사, 종교사 따위를 두루 연구하기에 ‘삼국유사’만 한 고전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는 ‘삼국유사’가 ‘한국학(韓國學)’을 하기에 더없이 긴요하고 소중한 ‘자료집’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늘 함께 거론되는 ‘삼국사기(三國史記)’(1145년)에서는 빠져 있는 삼국 이전 고대사에 관한 기록, 고조선 건국 신화를 비롯한 갖가지 신화, 특히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많은 자료 등이 대거 실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 연구자도 자료집으로 본다. 1959년 북한에서 번역되어 나온 ‘삼국유사’를 보면, 번역자인 리상호는 해제에서 ‘삼국유사’를 역사 서적이라고 하면서 “어디까지라도 그것은 사료적 가치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한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19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의 간행사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삼국유사는 사찬(私撰)으로 문헌자료를 비롯하여 금석문, 고문서, 민간설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수록했다는 점에서 한국 고대의 문화 전반을 폭넓게 담고 있는 민족지(民族誌)라 할 수 있으며, 역사서이며 문학서이고, 종교사이며 문화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보다 60여 년 전 최남선이 말한 바와 거의 같다. 이는 그사이에 ‘삼국유사’를 중시하며 꾸준히 연구해왔음에도 진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실제로 위의 책에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쓴 논문들이 실려 있으나, 모두 ‘삼국유사’를 자료집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33년이 지난 2020년. ‘삼국유사’를 자료집으로 보는 관점은 여전하다. 그러니 “‘삼국유사’는 역사·문학·철학·종교·민속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취급할 수 있는 광범위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힘으로 전모를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민족문화연구소 편, ‘삼국유사연구 상’, 영남대출판부, 1983)는 볼멘소리 또한 여전하다. ‘삼국유사’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취급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품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삼국유사’를 자료집으로 보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국학이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 전북 익산에 있다.
그렇다면, ‘삼국유사’는 자료집이 아닌가? 분명히 자료집으로 볼 여지도 많다. 다양한 문헌에서 원전(原典) 그대로 인용한 글이 매우 많은 점, 민간에서 구비 전승되는 이야기를 대거 수록한 점, ‘삼국사기’에서 빠뜨렸거나 제쳐 둔 사실을 풍부하게 실은 점 등은 자료집으로 보게 한다. 그러나 이는 ‘삼국유사’의 일면을 본 것일 뿐, 진면목(眞面目)을 본 것이 아니다.

몇 가지 두드러진 점만으로도 ‘삼국유사’는 자료집으로 보기 어렵다. 먼저 그 전체 틀 즉 체재(體裁)의 복잡성과 특이함이다. ‘왕력(王曆)’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등 아홉 편으로 이뤄져 있는데, 기존 어떠한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체재다. ‘왕력’과 ‘기이’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시작된 기전체(紀傳體) 역사서를, ‘흥법’ 이하는 고승들의 전기집인 고승전(高僧傳)을 따른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만, 첫인상에 불과하다. 자료집을 마련하려 했다면, 저자 일연이 이렇게 복합적이고 독특한 체재를 취했을 리 없다.

또 일연은 갖가지 문헌에서 인용하면서 그 출처를 밝혔다. 그런데 인용하면서 주요한 대목마다 주석(註釋)을 달아 내용을 보완하거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시비를 가리기도 하는데, 이 또한 자료집으로 볼 수 없게 하는 점이다. 더구나 특정한 대상에 대해 차이가 나는 기록이나 이야기를 나란히 제시하고는 길게 논의를 펼치기도 한다. 마치 오늘날 논문에서 인용문에 대해 분석하고 해석하며 주장을 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인용한 글에 주석을 더하고 논의를 펼치는 글쓰기는 결코 자료집이 아님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삼국유사’가 학문적인 저술임을 의미한다. 차츰 밝혀지겠지만, 일연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을 일구고 전하고 남겼는지, 오랜 역사와 문화의 속살을 보여주려는 작업을 했다. 이는 시쳇말로 국학(國學)이다. 한국학(韓國學)이다!

■잊어버린 ‘우리’를 찾아서

지난 100여 년 한국인은 나라를 잃었다가 되찾고 전쟁도 겪었으며 오랜 독재까지 경험했다. 지금도 주변에는 열강들이 득시글대며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 부국이 됐으며 전 세계에 한류(韓流)가 넘실거리게 하고 있다. 감염병 대유행의 혼돈 속에서 오히려 선진국임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경이로운 일을 어떻게 해내는 것일까? 그 해답 이야기를 ‘삼국유사’만큼 잘해줄 고전은 없다.

   
‘삼국유사’는 21세기의 ‘우리’ ‘한국인들’이 보여주는 기질과 정서, 사유 세계 그리고 전 세계인이 공유하고 즐길 한국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미 700년 전에 통찰한, 시간적으로 앞선 최고(最古)의 한국학이며 수준에서 앞선 최고(最高)의 한국학이다. 잊어버린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아서 ‘삼국유사’와 한판 걸게 놀아보자!

정천구·고전학자

※이 시리즈는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공동기획

·㈜상지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국제신문 인문연구소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경남 9곳, 1인당 월 15만 원 농어촌 기본소득 쟁탈전
  2. 2창원문화복합타운 매각 불발
  3. 3[사설] 가덕도신공항 착공 늦춘 정부, 공사비 증액 확약하라
  4. 4‘김해공항 최장노선’ 두바이 직항 내년 열린다
  5. 5‘국민아버지’ 배우 최불암 떠나보내며
  6. 6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 뒷북 안전조치
  7. 7“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8. 8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9. 9[시민기자] 랜드마크 ‘범선형 관광시설’ 북항에 만들자
  10. 10‘창업도시 600억’ 품어라…부산, 해양·금융 앞세워 총력
  1. 1“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2. 2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3. 3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4. 4정치권 “능인선원 경영능력 불합격…국제신문 회생 동의를”
  5. 5이해충돌 빗장 풀려는 시의회…“사익추구” vs “전문성 강화”
  6. 6민주, 5일 조희대 국조요구서 보고…국힘 “탄핵 역풍 맞을까 질질 끌어”
  7. 7국힘 새 당무감사위원장 양준모 교수
  8. 8[속보] 北김여정, 바이낸스 사태에 "美 정치적 도발…예의주시"
  9. 9북한 해커들, 바이낸스서 탈취한 자금 '2차 세탁' 중
  10. 10[와이라노] “한국은 단검” 美 안보청구서 점점 커진다
  1. 1‘창업도시 600억’ 품어라…부산, 해양·금융 앞세워 총력
  2. 2주식 팔면 다음날 돈 받는다…증권시장 결제주기 하루 단축
  3. 3호반, 한진칼 최대주주 기업결합 신고
  4. 4K-팝 열풍 타고 부산관광 키운다…한류산업 진흥 조례 추진
  5. 5“9증9포 독보적 특허 ‘명품 홍삼’…글로벌 1위 도전”
  6. 6“올해 북극항로 이용 150척…역대 최다 전망”
  7. 7[한 손 뉴스] 부산·통영 ‘환경교육도시’로…특화 환경교육 행·재정 지원(종합)
  8. 811월 제철 삼치·가리비 맛보세요
  9. 9올 ‘산소부족 물덩어리’ 완전히 사라졌다
  10. 10팬스타엔터프라이즈, 해운·조선해양 중심 사업구조 재편
  1. 1경남 9곳, 1인당 월 15만 원 농어촌 기본소득 쟁탈전
  2. 2창원문화복합타운 매각 불발
  3. 3‘김해공항 최장노선’ 두바이 직항 내년 열린다
  4. 4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 뒷북 안전조치
  5. 5모집 공고만 15차례…부산 보건소도 ‘의느님’ 모시기 진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3일
  7. 7국제사우회 “지광 손 뗄 때까지 함께 싸울 것”
  8. 8김해, 동아시아 람사르지역센터 유치
  9. 9인니 선원 모텔 감금 혐의 경호원들 송치(종합)
  10. 10봉사·일·문화 등 다양한 분야 경험·재능 나눠
  1. 1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2. 2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3. 3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4. 4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5. 5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6. 6“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7. 7“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8. 8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9. 9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10. 10‘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송현화-Magic Air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곰 두 마리 /황인숙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3일 (음 9월 24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2일 (음 9월 23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