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0년간 역사학계는
- 귀한 역사기록의 모음집 정도로
- 삼국유사의 가치를 평가해 왔다
- 그러나 사료를 해석하고 논하는
- 일연의 기술방식을 들여다보면
- 엄연한 학문서임을 알 수 있다
- 우리 민족의 특수성과 강인함
- 그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다면
- 이 책이 그 답을 줄 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의 고전인 ‘삼국유사(三國遺事)’(1289년)는 20세기 초 일제 강점 아래서 민족의 정기가 말살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비로소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때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조선사(朝鮮史) 정리(整理)에 대한 사의(私議)’(1920년대)라는 글에서 “삼국유사는 그 저자 일연(一然)이 조선의 불교원류(佛敎原流)를 기술한 자이니, 이는 조선종교사(朝鮮宗敎史)의 일부분이 될 뿐이다. 참 조선을 알게 된 조선사가 아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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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주시 양북면의 감은사지. 신라 문무왕의 사연과 함께 ‘삼국유사’에 등장한다. |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삼국유사 해제’(1927년)에서 이렇게 썼다. “‘삼국유사’는 조선 고대사의 최고(最高) 원천이며 일대백과전림(一大百科典林)으로, 일연의 공은 서방의 헤로도토스에도 비할 것이니라. 누가 ‘삼국유사’를 출발점으로 하지 않고서 조선의 신학(神學)을 말하며, 조선의 신화학(神話學)을 말하며, 조선의 사회력(社會力)과 그 발달사를 말하며, 고어학(古語學)·지명학(地名學)·씨족학(氏族學)·문학사·사상사·종교사를 말할 수 있으랴.”
신채호가 ‘삼국유사’를 불교사를 기술한 것으로 조선종교사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한 것과 달리 최남선은 조선의 모든 것을 아우른 일종의 백과전서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토록 상이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과연 누구 평가가 타당할까?
■자료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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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후기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를 서술한 역사서. 사진은 국보 제306-2호 ‘삼국유사’ 정역본(서울대 규장각 소장). |
앞서 최남선은 조선의 신학과 신화학, 언어학, 지리학, 문학사와 사상사, 종교사 따위를 두루 연구하기에 ‘삼국유사’만 한 고전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는 ‘삼국유사’가 ‘한국학(韓國學)’을 하기에 더없이 긴요하고 소중한 ‘자료집’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늘 함께 거론되는 ‘삼국사기(三國史記)’(1145년)에서는 빠져 있는 삼국 이전 고대사에 관한 기록, 고조선 건국 신화를 비롯한 갖가지 신화, 특히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많은 자료 등이 대거 실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 연구자도 자료집으로 본다. 1959년 북한에서 번역되어 나온 ‘삼국유사’를 보면, 번역자인 리상호는 해제에서 ‘삼국유사’를 역사 서적이라고 하면서 “어디까지라도 그것은 사료적 가치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한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19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의 간행사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삼국유사는 사찬(私撰)으로 문헌자료를 비롯하여 금석문, 고문서, 민간설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수록했다는 점에서 한국 고대의 문화 전반을 폭넓게 담고 있는 민족지(民族誌)라 할 수 있으며, 역사서이며 문학서이고, 종교사이며 문화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보다 60여 년 전 최남선이 말한 바와 거의 같다. 이는 그사이에 ‘삼국유사’를 중시하며 꾸준히 연구해왔음에도 진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실제로 위의 책에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쓴 논문들이 실려 있으나, 모두 ‘삼국유사’를 자료집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33년이 지난 2020년. ‘삼국유사’를 자료집으로 보는 관점은 여전하다. 그러니 “‘삼국유사’는 역사·문학·철학·종교·민속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취급할 수 있는 광범위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힘으로 전모를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민족문화연구소 편, ‘삼국유사연구 상’, 영남대출판부, 1983)는 볼멘소리 또한 여전하다. ‘삼국유사’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취급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품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삼국유사’를 자료집으로 보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국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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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
전북 익산에 있다. |
그렇다면, ‘삼국유사’는 자료집이 아닌가? 분명히 자료집으로 볼 여지도 많다. 다양한 문헌에서 원전(原典) 그대로 인용한 글이 매우 많은 점, 민간에서 구비 전승되는 이야기를 대거 수록한 점, ‘삼국사기’에서 빠뜨렸거나 제쳐 둔 사실을 풍부하게 실은 점 등은 자료집으로 보게 한다. 그러나 이는 ‘삼국유사’의 일면을 본 것일 뿐, 진면목(眞面目)을 본 것이 아니다.
몇 가지 두드러진 점만으로도 ‘삼국유사’는 자료집으로 보기 어렵다. 먼저 그 전체 틀 즉 체재(體裁)의 복잡성과 특이함이다. ‘왕력(王曆)’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등 아홉 편으로 이뤄져 있는데, 기존 어떠한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체재다. ‘왕력’과 ‘기이’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시작된 기전체(紀傳體) 역사서를, ‘흥법’ 이하는 고승들의 전기집인 고승전(高僧傳)을 따른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만, 첫인상에 불과하다. 자료집을 마련하려 했다면, 저자 일연이 이렇게 복합적이고 독특한 체재를 취했을 리 없다.
또 일연은 갖가지 문헌에서 인용하면서 그 출처를 밝혔다. 그런데 인용하면서 주요한 대목마다 주석(註釋)을 달아 내용을 보완하거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시비를 가리기도 하는데, 이 또한 자료집으로 볼 수 없게 하는 점이다. 더구나 특정한 대상에 대해 차이가 나는 기록이나 이야기를 나란히 제시하고는 길게 논의를 펼치기도 한다. 마치 오늘날 논문에서 인용문에 대해 분석하고 해석하며 주장을 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인용한 글에 주석을 더하고 논의를 펼치는 글쓰기는 결코 자료집이 아님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삼국유사’가 학문적인 저술임을 의미한다. 차츰 밝혀지겠지만, 일연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을 일구고 전하고 남겼는지, 오랜 역사와 문화의 속살을 보여주려는 작업을 했다. 이는 시쳇말로 국학(國學)이다. 한국학(韓國學)이다!
■잊어버린 ‘우리’를 찾아서
지난 100여 년 한국인은 나라를 잃었다가 되찾고 전쟁도 겪었으며 오랜 독재까지 경험했다. 지금도 주변에는 열강들이 득시글대며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 부국이 됐으며 전 세계에 한류(韓流)가 넘실거리게 하고 있다. 감염병 대유행의 혼돈 속에서 오히려 선진국임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경이로운 일을 어떻게 해내는 것일까? 그 해답 이야기를 ‘삼국유사’만큼 잘해줄 고전은 없다.
‘삼국유사’는 21세기의 ‘우리’ ‘한국인들’이 보여주는 기질과 정서, 사유 세계 그리고 전 세계인이 공유하고 즐길 한국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미 700년 전에 통찰한, 시간적으로 앞선 최고(最古)의 한국학이며 수준에서 앞선 최고(最高)의 한국학이다. 잊어버린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아서 ‘삼국유사’와 한판 걸게 놀아보자!
정천구·고전학자
※이 시리즈는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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