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안동 용계리 댐 건설로
- 수몰 위기 처한 ‘할배 은행나무’
- 지역민 간곡한 청원으로 보존
- 나무 이식 모범 사례로 회자돼
- “단 한그루의 나무 살리기 위해
- 뜻 모았던 사람들 진짜 이야기
-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
“나는 한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태어날 때 내 자리를 받아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자라는 일을 명 받았다.” 이렇게 말하는 생명체가 있다면 무엇일까. 나무이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는 큰 운동장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메타세쿼이아 나무 산책로가 있었다. 도심의 한가운데 사는 시민으로서 그곳은 고맙고 소중한 운동장이며 공원이었다. 그런데 사라졌다. 아파트가 들어선다. 대형 가림막이 쳐진 그곳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나무들은 베어졌을까, 뽑혀서 어디론가 갔을까.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쓰리고 아프다. 보물인 줄 몰랐는데, 보물을 뺏겨버렸다. 사라진 나무들의 안부가 궁금했을 때 ‘은행나무의 이사’라는 그림동화를 만났다. 저자도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만나고 싶었다. 정연숙 작가를 서울 덕수궁 옆 정동길에서 만났다.
■수몰 위기 처한 나무 살려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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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은행나무의 이사’의 정연숙 작가가 서울 덕수궁 옆 정동길에서 동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은행나무의 이사’는 경북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그림동화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수령은 7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37m, 가슴높이둘레 14.5m이다. 가슴높이둘레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로 기록돼있다. 1980년대 후반, 이 지역에서 임하댐을 짓는 대규모 공사가 진행됐다. 은행나무는 마을과 함께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나서면서, 은행나무는 이사를 했고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 책은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해서 용계리는 가지 못하고. 정동길을 약속장소로 정했다. “가을이 되면 이곳 은행나무들이 멋진 자태를 드러내죠. 나무가 많은 이 길을 좋아해서 지인들과 만날 때는 늘 여기서 만납니다.” 정 작가의 안내로 정동길을 걸었다. 노란 은행잎은 아니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은행나무들이 일제히 노랗게 물들면 이 길에는 황금 물결이 넘칠 것이다.
정연숙은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EBS ‘지식채널E’의 작가로 일했다. 2008년에 샘터상(동화 부문)을 수상했다. 어린이가 알아야 할 지식과 정보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달하고 싶어 창작동화를 쓰는 중이다. ‘세상을 바꾼 상상력 사과 한 알’ ‘우리를 잊지 마세요’ ‘지식E’ ‘꽃밥’ ‘은행나무의 이사’ 등을 냈다.
나무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는지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줄곧 도시인으로 살았죠. 큰 나무가 있는 동네에서 산 적이 없어요.” 나무가 있는 장소에 대한 정서가 없는 그는 어떻게 용계리 은행나무에 마음이 이끌린 걸까. “2015년 가을이었어요. 인천의 한 작은도서관에서 문화재를 살려낸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한 책을 봤어요. 그 책에서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 온 마을사람들이 나섰다는 사연을 알았습니다. ‘700년 된 나무가 이사를 하다니! 난 이 이야기를 왜 이제 알았지?’ 가슴이 두근거렸죠.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걸까, 더 많이 알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마자 나무를 꼭 보고 싶었어요.”
나무를 보러 가야겠다는 작가 아내를 위해 남편이 나서주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도 남편은 경북 안동까지 4시간 30분간 운전을 했다. “비 오는 가을 오후, 이미 잎은 떨어지고 없었지만, ‘아, 이 나무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어요. 기념관에서 사람들이 은행나무에 전하는 수많은 메모도 보고, 나무를 한참 바라보다가 근처에서 하루를 잤어요, 나무를 살려내려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날 밤에 일곱 살 아들에게 이야기를 꾸며 들려줬는데, 재미있어 하는 거에요. 그래서 용기를 내 책을 쓰기로 했지요. 2018년 11월에 이 책이 나왔는데, 책이 나온 뒤 열 살이 된 아들이 ‘엄마, 이 책이 그때 나한테 해준 이야기 맞죠?’ 하더군요.” 용계리 은행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살려냈고 ‘은행나무의 이사’는 작가 아내와 남편, 아들이 함께 만든 셈이다.
■소중한 것 지켜내는 마음 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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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의 이사- 정연숙 지음/윤봉선 그림/논장/2018 |
용계리의 터줏대감 700살 은행나무는 마을사람들에게 ‘할배’라고 불린다. 수백 년간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나무와 함께 살았다. 댐공사로 살아오던 터전을 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야 하는 처지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가 더 걱정이었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었고, 어른들은 주위에 둘러앉아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할배나무가 물속에 잠기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집과 학교와 땅은 지키지 못해도 할배나무만은 살리자고 결심한 마을 사람들은 간곡한 청원을 끈질기게 이어갔다.
마침내 공사를 맡은 한국수자원공사는 정부의 지원을 얻어냈고 나무 이식 공사를 결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이식(利殖)이 아니라 높이를 들어 올리는 상식(上植) 공사였다. 원래 위치에서 흙을 높게 돋우어 올려 심으며 물길로부터 보호받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1990년부터 약 3년5개월에 걸쳐 거대한 크레인으로 조금씩 나무를 들어 올렸다. 하루에 겨우 10㎝만 움직이기도 했다. 나무를 들어 올리면서 15m에 이르는 가산을 조성했고, 나무는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은행나무의 이사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단 한 그루의 나무를 살리기 위해 그런 노력을 한 예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용계리 은행나무 상식 공사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이 일을 도시 개발 과정에서 나무 이식의 표본으로 삼았다. 그 이야기를 동화로 들려주며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마음을 전해주는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은행나무는 이사 후에 다시 건강한 잎을 틔웠다. 안동시는 이 나무에서 종자를 받아 시민에게 2세 나무를 분양하기도 했다. 할배나무의 자손들은 또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천천히 자라고, 오래 살고, 죽어서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고작 100년을 사는 인간이 나무의 웅숭깊은 삶을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