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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후쿠오카’ 장률 감독

“장률 영화는 어렵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 이야기 담을 뿐”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0-09-08 19:16:55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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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 ‘경주’ ‘군산’ 이어
- 日 후쿠오카 배경의 신작
- 낯선 도시서 만난 인물과
- 그들의 관계·사랑 쫓아가

- 콘티 없이 핸드헬드로 찍고
- 배우 실명 그대로 극에 사용
- “증오까지 사랑이라고 생각
- 그 감정에 대한 고민이 주제”

상업영화 속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이 시대의 시네아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장률 감독. 그가 ‘경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 이어 세 번째로 도시를 제목으로 한 영화 ‘후쿠오카’(지난달 27일 개봉)로 선보였다.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독보적인 시선과 모호함과 긴장감 사이를 유영하는 시적인 리듬으로 자신만의 유니버스를 구축해 온 장률 감독. 그의 열두 번째 영화 ‘후쿠오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인디스토리 제공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후쿠오카’는 28년 전 한 여자 때문에 절교한 두 남자와 묘한 구석이 있는 한 여자가 후쿠오카에서 만나면서 벌어지는 영화다. 일상성과 특별함,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특별한 영화적 경험을 하게 만든다. 핸드헬드(들고 찍기) 촬영으로 담은 영상은 독특한 리듬감을 주며 각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를 파고들고, 사실적이면서도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해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올해 감독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장 감독을 만나 자신의 열두 번째 영화 ‘후쿠오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왜 후쿠오카일까?

   
8년 전, 한 여자 때문에 절교한 두 남자와 귀신같은 한 여자의 기묘한 여행을 담은 영화 ‘후쿠오카’.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이 실명으로 출연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인디스토리 제공
‘후쿠오카’는 장 감독이 일본에서 촬영한 첫 영화이자 ‘경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 이은 도시 연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본에서 그것도 후쿠오카에서 영화를 촬영하게 됐을까? 그 시작점은 후쿠오카영화제와 관련이 있었다. “후쿠오카영화제에 초청받아 오간지 10년이 됐다. 영화제 사람들이 후쿠오카에서도 영화를 찍어달라고 하기도 했는데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다른 나라의 한 도시를 자주 다니면 친숙하게 되고, 그 도시만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장 감독에게 후쿠오카도 그런 도시였다. “후쿠오카의 정서는 도쿄와 전혀 다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따뜻함이 있다. 식당에서 술을 마시면 옆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그런다. 그런 정서가 편하게 다가왔다.”

중국 연변 출신의 재중동포 2세인 장 감독에게 후쿠오카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었다. “아름답고 따뜻한 공간인 후쿠오카에서 우리의 윤동주 시인이 돌아가셨다. ‘후쿠오카’를 한자로 쓰면 ‘행복의 언덕’을 뜻하는 ‘복강(福岡)’인데 시 같아서 그 한자를 좋아하고, 그 시 같은 공간에 우리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점이 특별했다.” 그래서 ‘후쿠오카’에는 윤 시인의 ‘자화상’과 ‘사랑의 전당’ 두 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등장한다.

■28년간의 사랑

그는 초기에는 영화를 통해 역사와 경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해왔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한국으로 거점을 옮긴 후에는 사랑을 소재로 인물들의 관계와 공간에 관심을 보이며 도시의 질감과 역사를 자신만의 시선과 리듬감으로 포착하고 있다.

영화에는 28년간 한 여자를 가슴에 품고 사는 남자의 순정이 있다. 영화 속 해효와 제문은 대학시절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 이유로 28년간 만나지 않았다. “이뤄져서 행복한 것도 좋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든지, 사랑을 넘어서 증오로 변해가면서 세월이 가기도 한다. 증오까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큰 사랑을 어떻게 삶에서 대해야 하고 소화를 하는가’가 제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에서도 20년 지기 친구들이 대학시절 좋아했던 한 여자 때문에 현재의 삶이 흔들리기는 것을 보여줬는데, 영화 속 등장인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첫사랑 때문에 아파한다. “술자리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이 지금의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말하지 말자’ ‘잊어버리자’ 하지만 마음속 깊숙이 남아있다. 그것을 아름다운 방향으로 소통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에 아파하는 두 사람을 소통하게 만드는 사람이 소담이다.

■캐릭터 실명제 영화

영화를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은 권해효 윤제문 박소담이 이국적인 공간에서 묘한 호흡을 이룬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자신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해 대중이 알고 있던 배우들의 이미지와 영화 속 캐릭터를 중첩시킨다. 어딘지 모르게 비범한 기운이 흐르는 것 같은 박소담은 일본어와 중국어를 하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말을 다 알아듣고, 그 사람의 마음이나 이력을 꿰뚫어보는 미스터리한 여자 주인공을 연기한다. 또 실제 과거 연극시절부터 친했던 권해효와 윤제문도 28년 만에 만났음에도 대학 시절로 돌아가 유치한 언쟁을 벌이는 귀여운 앙숙의 면모를 보여준다.

실명을 사용한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장 감독의 대답은 의외였다. “제목이나 사람 이름을 짓는 것이 어렵다. 이번에는 배우들이 동의해 준다면 자신의 이름을 쓰자고 했다. 그러고 나니 이름과 캐릭터가 이상하게 연계되는 느낌이 있었다. 제문이라는 이름에는 글월 문(文)이 있어서 서점에 있을 듯하고, 해효는 바다 해(海)가 있어서 바다 건너 후쿠오카에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소담(小膽)은 담백하고 소박하지만 외연이 크다는 느낌이 있었다.”

■우연이 모여 필연이 되다

장 감독은 즉흥성에 많이 의지한다. 저예산으로 촬영하니 예기치 않았던 상황에 빠르게 대처해야 하고, 촬영 직전에 새로운 장면이 추가되거나 대사가 바뀌게 경우도 잦다. 하지만 그런 즉흥성이나 우연이 모여 영화는 의미와 상징을 갖게 되고 장 감독의 시네아스트적 면모가 드러나게 된다. “촬영장에 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어떻게 찍을지 모른다. 현장에 도착해서 공간의 정서에 맞게 콘티를 짜기 때문이다. 위험한 방식인데 미리 콘티를 짜는 방식으로는 안 찍어봤다.”

이번 영화도 같은 과정을 거쳐 작업했다. 엔딩 장면은 1회차 촬영 때 자신의 분량이 없음에도 촬영장을 찾아온 권해효를 그냥 보내기 미안해 계획에 없던 장면을 만들어 찍어놓은 것이다. 물론 촬영할 때는 엔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또 공간을 유영하며 인물의 감정이나 관계를 보여주는 핸드헬드 촬영이 돋보이는데, 모든 장면을 같은 방법으로 촬영했다. “11회차로 모두 찍어야 했다. 그렇다면 핸드헬드로 찍는 것이 제일 경제적이다. 해효와 제문이 28년 만에 만나서 마음이 요동치는데, 그것도 핸드헬드 촬영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촬영뿐만 아니라 소품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소담이 우연히 만나는 중국인 관광객은 장 감독과 친분이 있는 중국 여배우가 마침 같은 시기에 일본 여행을 와서 출연하게 됐다. 그가 들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는 당시 중국에서 인기 있던 소설이고, 소담이 들고 있는 ‘금병매’는 영화 등장하는 서점에 있던 책이었다.

   
“제 영화는 일상처럼 생각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제가 말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 현실이 어떠한가를 영화로 이야기하는데, 현실에서는 영화보다 더 판타지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가.” ‘후쿠오카’에 등장하는 우연과 기시감이 각각 현실 속의 필연과 기억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앞으로 보여줄 장 감독의 영화 세계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latehop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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