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호세 아르까디오가 침실로 들어서자 한 발 총성이 울린다. 아들 몸에서 흘러나온 새빨간 선혈이 방바닥을 타고 나와 복잡한 거리 도로 위를 내달려 어머니 우르술라가 사는 집에 도착한다. 핏줄기를 본 어머니가 아들 죽음을 직감하고 내지르는 절규가 책장을 뚫고 올라온다.
‘백년의 고독’ 속 이 대목을 접한 영화제작자라면 마르케스를 만나야 한다고 결심할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그랬다. 그는 마르케스에게 ‘백년의 고독’을 영화로 제작하자고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마르케스가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붙였기 때문. “내 작품을 영화로 만들되 2분 분량으로 한 달에 한 번, 100년 동안 개봉하시오.”
마르케스는 생전에 이 작품만큼은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가족 증언을 종합해보면 그는 이런 생각을 가졌을 듯하다. ‘상영시간이 길어봤자 서너 시간인 영화가 6세대 가문 얘기를 소화할 수 있을까. 스페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영화를 만들어봤자 제대로 전달되겠어?’ 자신보다 독자가 더 사랑해주고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라 생각이 많았으리라. 그는 스페인어를 아낀 작가였다. 어쩌면 이 소설만큼은 오롯하게 언어 영역에 남겨 순혈성을 영원히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백년의 고독’을 읽어보면 ‘영화로 만들기에 딱 좋다’란 생각이 든다.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기괴한 사건과 풍경, 무엇보다 화려한 색감과 영상미 넘치는 장면이 풍성하다.
마르케스가 걸었던 ‘영상물 제작 봉쇄 주문’은 결국 풀렸다. 그가 타계한 지 5년 후인 2019년 3월 넷플릭스가 ‘백년의 고독’을 영상물(TV시리즈)로 만드는 판권을 유족에게서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예고된 사랑의 연대기’ 같은 작품은 일찍이 영화로 소개됐다. 국내에서는 소리꾼 이자람이 최근 마르케스 단편소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을 판소리로 재창조(‘이방인의 노래’)했다. 이제 활자에서 영상으로 옮겨질 ‘백년의 고독’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