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북출신 실향민 가수 손인호
- 절절한 창법으로 심금 울리고
- '봄날은 간다' 작사자 손로원
- 가사에 '하꼬방'살이 경험 녹여
- 동아극장 영화 간판·영도다리
- 부두노동자·40계단·판잣집까지
- 피란민 바글댄 1950년대 부산
- 경제난·생활고 노랫말에 오롯이
고향의 뜻이 점점 엷어지고 사라져간다. 고향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에서 다정함, 그리움, 안타까움이 서려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의 9월,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면서 국제연합군은 북으로 진격을 거듭해 공산군을 완전히 물리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의 기습으로 다시 철수해 내려왔으니 이것이 1·4후퇴다.
■‘함경도 사나이’ 속 피란민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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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부산 국제시장. 국제신문DB |
이때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떠나온 북한 동포들이 많았고 그 숫자도 엄청났다. 대표적 사례들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미군의 배를 타고 떠나온 흥남철수, 평양시민의 대동강 탈출, 황해도 피란민의 구출작전 등이다. 황해도가 가장 많고, 함경도와 평안도가 그 뒤를 잇는다. 전쟁 시기 갈 곳이라곤 오로지 부산과 대구뿐이었다. 부산은 1950년대 초반 40만 규모이던 곳이 피란민의 대거유입으로 무려 100만 명 가까운 인구가 바글거렸으니 경제난, 주택난, 생활난 등 온갖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특히 국제시장 부근은 온종일 생존의 악다구니로 소란하였다.
당장 살 곳조차 막막했던 피란민은 가파른 산 중턱에 판잣집을 엮어서 비바람을 피했다. 움막, 혹은 판잣집은 미군 전투식량인 시레이션을 담았던 두꺼운 종이상자, 능금이나 생선을 담는 판자, 비닐조각 등 잡동사니를 구해 와 얼기설기 얽은 것이라 집이랄 것도 없었다. 당시 용어로는 ‘하꼬방’이라 했다. 하꼬는 상자(箱)의 일본말이다. 월남 실향민의 처량한 신세를 빗대어 세상에선 그들을 ‘삼팔따라지’라고 불렀다. 원래 뜻은 화투노름판에서 끗수를 셈할 때 별 볼일 없는 패를 가리키는 뜻이었다. 삼팔선을 넘어온 신세가 노름판에서의 삼팔따라지와 다를 바 없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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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손인호와 LP음반. |
당시 피란민의 심정을 다룬 노래는 적지 않다. 가수 손인호(1927~2016)가 불렀던 ‘함경도 사나이’(손로원 작사, 나화랑 작곡)는 가사도 곡조도 처연하고 애잔하다. 부산에서 물풀처럼 살아가던 실향민의 현실을 어찌 이리도 절절하게 그려냈는가? ‘봄날은 간다’의 작사자 손로원(1911~1973)의 솜씨였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그 자신도 용두산 비탈 하꼬방에 살았으나 화재로 홀랑 타버렸다. 어머니 사진도 불에 타 재가 되고 말았다.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에 ‘봄날은 간다’ 노랫말이 만들어졌다. ‘함경도 사나이’ 노랫말에는 부산항구, 영도다리, 동아극장 영화간판, 남포동, 부두노동, 사십계단 판잣집 따위가 스크린처럼 지나간다.
흥남부두 울며 찾던 눈보라치던 그날 밤/ 내 자식 내 아내 잃고 나만 외로이/ 한이 맺혀 설움에 맺혀 남한 땅에 왔건만/ 부산항구 갈매기의 노래조차 슬프고나/ 영도다리 난간에서 누구를 찾아보나
동아극장 그림 같은 피눈물 젖은 고향 꿈/ 내 동리 물방아 도는 마을 언덕에/ 양떼 몰며 송아지 몰며 버들피리 불었소/ 농토까지 빼앗기고 이천 리길 배를 곯고/ 남포동을 헤매 도는 이 밤도 비가 온다
여수통영 님을 싣고 떠나만 가는 똑딱선/ 내 가족 내 자식 싣고 내 아내 싣고/ 내 품에다 내 가슴에다 반겨주게 하련만/ 하루 종일 부두노동 땀방울을 흘리면서/ 사십계단 판잣집에 오늘도 우는 구려
노래 속 주인공은 1·4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미군 상륙함 LST를 타고 홀로 부산에 왔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부산에서 적막한 삶을 살아간다. 남포동 동아극장 앞을 오가며 보는 영화간판에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린다. 양떼, 송아지 몰며 살았으니 관북 지역 어디쯤이었을까? 개마고원이 있는 삼수, 갑산, 풍산, 장진 부근으로 짐작된다. 공산정권에 가진 땅 모두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쫓기듯 내려와 부산항 부두에서 하역노동자로 겨우 생계를 이어간다. 사는 것은 중앙동 일대 판잣집이다.
■월남한 실향민 가수 심금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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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타레코드에서 SP음반으로발매된 '함경도사나이'. |
작고 제한된 노래공간에 어찌 이리도 현실의 구체성을 낱낱이 깨알처럼 담아낼 수가 있었을까? 1950년대에 발표된 어떤 시작품보다도 감동과 생기를 느끼게 하는 가요시이다. 가수 손인호도 평북 출신 실향민이다. 그는 전쟁 전에 월남해서 살았다. 영화녹음기사로 일하다가 1953년 이 노래로 인기가수가 되었다. 가만히 음미해 보면 손인호가 부르는 창법은 첫 대목부터 절규의 방식이다. 그 자신이 월남한 실향민이라 더욱 절절한 가창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손인호가 발표한 실향 테마 노래들은 ‘간 곳마다 괄세더라’ ‘경원선 기적소리’ ‘고향열차’ ‘국경선’ ‘귀향 제1일’ ‘대동강아 잘 있느냐’ ‘번지 없는 내 고향’ ‘북방 하늘’ ‘추억의 두만강’ ‘한 많은 대동강’ ‘한 많은 휴전선’ ‘함경도 사나이’ ‘향수의 부르스’ ‘흙냄새 고향’ 등 20편이 넘는다. 물론 손인호의 최대 히트곡은 ‘비 내리는 호남선’ ‘나는 몰랐네’ ‘해운대 엘레지’ 등일 것이다. 그는 가요황제 남인수와 곧잘 비교가 된다. 남인수가 카랑카랑한 금속성이 바탕이라면 손인호는 고음역까지 단숨에 올라가면서도 부드러움과 안정감을 잃지 않는 가창력을 갖추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쉽게 느껴지지만 막상 불러보면 따라 부르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중평이 있다. 예전 마을마다 흔했던 노래자랑, 혹은 가요콩쿠르대회에서 가장 인기 높았던 곡목들은 대개 손인호의 노래였다. 하지만 중간에 ‘땡~’ 하는 낙방의 소리가 가장 많이 들리던 노래이기도 했다.
자나 깨나 북녘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하던 늙은 가수의 영혼은 한 많은 휴전선을 훌쩍 넘어 지금쯤 고향마을 어딘가를 홀로 뜬구름처럼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인·가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