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8> 실향민의 노래 ‘함경도 사나이’

피란지 부산의 모습 깨알처럼 담고, 실향민의 애환 절규하듯 불러

  • 이동순 시인
  •  |   입력 : 2020-09-13 19:19:24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평북출신 실향민 가수 손인호
- 절절한 창법으로 심금 울리고
- '봄날은 간다' 작사자 손로원
- 가사에 '하꼬방'살이 경험 녹여

- 동아극장 영화 간판·영도다리
- 부두노동자·40계단·판잣집까지
- 피란민 바글댄 1950년대 부산
- 경제난·생활고 노랫말에 오롯이

고향의 뜻이 점점 엷어지고 사라져간다. 고향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에서 다정함, 그리움, 안타까움이 서려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의 9월,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면서 국제연합군은 북으로 진격을 거듭해 공산군을 완전히 물리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의 기습으로 다시 철수해 내려왔으니 이것이 1·4후퇴다.

■‘함경도 사나이’ 속 피란민 애환

   
6·25전쟁 당시 부산 국제시장. 국제신문DB
이때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떠나온 북한 동포들이 많았고 그 숫자도 엄청났다. 대표적 사례들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미군의 배를 타고 떠나온 흥남철수, 평양시민의 대동강 탈출, 황해도 피란민의 구출작전 등이다. 황해도가 가장 많고, 함경도와 평안도가 그 뒤를 잇는다. 전쟁 시기 갈 곳이라곤 오로지 부산과 대구뿐이었다. 부산은 1950년대 초반 40만 규모이던 곳이 피란민의 대거유입으로 무려 100만 명 가까운 인구가 바글거렸으니 경제난, 주택난, 생활난 등 온갖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특히 국제시장 부근은 온종일 생존의 악다구니로 소란하였다.

당장 살 곳조차 막막했던 피란민은 가파른 산 중턱에 판잣집을 엮어서 비바람을 피했다. 움막, 혹은 판잣집은 미군 전투식량인 시레이션을 담았던 두꺼운 종이상자, 능금이나 생선을 담는 판자, 비닐조각 등 잡동사니를 구해 와 얼기설기 얽은 것이라 집이랄 것도 없었다. 당시 용어로는 ‘하꼬방’이라 했다. 하꼬는 상자(箱)의 일본말이다. 월남 실향민의 처량한 신세를 빗대어 세상에선 그들을 ‘삼팔따라지’라고 불렀다. 원래 뜻은 화투노름판에서 끗수를 셈할 때 별 볼일 없는 패를 가리키는 뜻이었다. 삼팔선을 넘어온 신세가 노름판에서의 삼팔따라지와 다를 바 없어 붙여졌다.

   
가수 손인호와 LP음반.
당시 피란민의 심정을 다룬 노래는 적지 않다. 가수 손인호(1927~2016)가 불렀던 ‘함경도 사나이’(손로원 작사, 나화랑 작곡)는 가사도 곡조도 처연하고 애잔하다. 부산에서 물풀처럼 살아가던 실향민의 현실을 어찌 이리도 절절하게 그려냈는가? ‘봄날은 간다’의 작사자 손로원(1911~1973)의 솜씨였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그 자신도 용두산 비탈 하꼬방에 살았으나 화재로 홀랑 타버렸다. 어머니 사진도 불에 타 재가 되고 말았다.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에 ‘봄날은 간다’ 노랫말이 만들어졌다. ‘함경도 사나이’ 노랫말에는 부산항구, 영도다리, 동아극장 영화간판, 남포동, 부두노동, 사십계단 판잣집 따위가 스크린처럼 지나간다.



흥남부두 울며 찾던 눈보라치던 그날 밤/ 내 자식 내 아내 잃고 나만 외로이/ 한이 맺혀 설움에 맺혀 남한 땅에 왔건만/ 부산항구 갈매기의 노래조차 슬프고나/ 영도다리 난간에서 누구를 찾아보나

동아극장 그림 같은 피눈물 젖은 고향 꿈/ 내 동리 물방아 도는 마을 언덕에/ 양떼 몰며 송아지 몰며 버들피리 불었소/ 농토까지 빼앗기고 이천 리길 배를 곯고/ 남포동을 헤매 도는 이 밤도 비가 온다

여수통영 님을 싣고 떠나만 가는 똑딱선/ 내 가족 내 자식 싣고 내 아내 싣고/ 내 품에다 내 가슴에다 반겨주게 하련만/ 하루 종일 부두노동 땀방울을 흘리면서/ 사십계단 판잣집에 오늘도 우는 구려



노래 속 주인공은 1·4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미군 상륙함 LST를 타고 홀로 부산에 왔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부산에서 적막한 삶을 살아간다. 남포동 동아극장 앞을 오가며 보는 영화간판에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린다. 양떼, 송아지 몰며 살았으니 관북 지역 어디쯤이었을까? 개마고원이 있는 삼수, 갑산, 풍산, 장진 부근으로 짐작된다. 공산정권에 가진 땅 모두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쫓기듯 내려와 부산항 부두에서 하역노동자로 겨우 생계를 이어간다. 사는 것은 중앙동 일대 판잣집이다.

■월남한 실향민 가수 심금 울려

   
킹스타레코드에서 SP음반으로발매된 '함경도사나이'.
작고 제한된 노래공간에 어찌 이리도 현실의 구체성을 낱낱이 깨알처럼 담아낼 수가 있었을까? 1950년대에 발표된 어떤 시작품보다도 감동과 생기를 느끼게 하는 가요시이다. 가수 손인호도 평북 출신 실향민이다. 그는 전쟁 전에 월남해서 살았다. 영화녹음기사로 일하다가 1953년 이 노래로 인기가수가 되었다. 가만히 음미해 보면 손인호가 부르는 창법은 첫 대목부터 절규의 방식이다. 그 자신이 월남한 실향민이라 더욱 절절한 가창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손인호가 발표한 실향 테마 노래들은 ‘간 곳마다 괄세더라’ ‘경원선 기적소리’ ‘고향열차’ ‘국경선’ ‘귀향 제1일’ ‘대동강아 잘 있느냐’ ‘번지 없는 내 고향’ ‘북방 하늘’ ‘추억의 두만강’ ‘한 많은 대동강’ ‘한 많은 휴전선’ ‘함경도 사나이’ ‘향수의 부르스’ ‘흙냄새 고향’ 등 20편이 넘는다. 물론 손인호의 최대 히트곡은 ‘비 내리는 호남선’ ‘나는 몰랐네’ ‘해운대 엘레지’ 등일 것이다. 그는 가요황제 남인수와 곧잘 비교가 된다. 남인수가 카랑카랑한 금속성이 바탕이라면 손인호는 고음역까지 단숨에 올라가면서도 부드러움과 안정감을 잃지 않는 가창력을 갖추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쉽게 느껴지지만 막상 불러보면 따라 부르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중평이 있다. 예전 마을마다 흔했던 노래자랑, 혹은 가요콩쿠르대회에서 가장 인기 높았던 곡목들은 대개 손인호의 노래였다. 하지만 중간에 ‘땡~’ 하는 낙방의 소리가 가장 많이 들리던 노래이기도 했다.

   
자나 깨나 북녘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하던 늙은 가수의 영혼은 한 많은 휴전선을 훌쩍 넘어 지금쯤 고향마을 어딘가를 홀로 뜬구름처럼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인·가요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2. 2“한국 핵 잠수함·전작권 전환, 美 민주 승리로 제약 커질 듯”
  3. 3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4. 4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5. 5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6. 6‘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7. 7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8. 8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9. 9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10. 10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3. 3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4. 4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5. 5곽규택 “산은, 대한항공이 통합 LCC 부산 설립 거부시 호반지원해야”
  6. 6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7. 7전재수 시정 첫 행감…국힘, 기관장 인선 등 파상공세 예고
  8. 8부울경 全 국회의원 회생촉구 서명…노동청, 지광 출석 요구
  9. 9양당 모두 400억 토해낼 위기..선거법 개정 화두로
  10. 10“왜 사회적 지탄 대상 되려하나” 김대식, 지광에 회생 동의 촉구
  1. 1‘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2. 2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3. 3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4. 4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5. 5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6. 6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7. 7한 달 새 금융사 37곳 47만 건 해킹…털린 돈도 10억
  8. 8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9. 9수능날 증시 10시 개장…애프터마켓 오후 5~8시
  10. 10부산 ‘에이지테크’ 해외 노크…日 시니어 시장 진출 길 열어
  1. 1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2. 2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3. 3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4. 4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5. 5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6일
  7. 7황령산 봉수대 영문 안내판 설치키로
  8. 8문 전 대통령 거제생가 복원, 진통 끝 시의회 통과
  9. 9김해·전주시장 “특례시 기준 낮춰달라”
  10. 10“日 15% 수익보장” 주식리딩방 사기…4억 넘게 가로채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3. 3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4. 4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5. 5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알쏭달쏭 한자어 오독 소동 外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 마리 해슬리-Gymnopedies(짐노페디)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극락암 벚나무 /홍종원
곰 두 마리 /황인숙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5일 (음 9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4일 (음 9월 25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깊어가는 가을에 밤하늘 별을 읊은 이덕무의 시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