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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18> 서남해안 쪽고둥

속살은 탄탄, 내장은 고소 … 쪽 빨아먹으면 갯내 한가득

  • 최원준 시인
  •  |   입력 : 2020-09-15 19:14:48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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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벌 주위 돌 틈 옹기종기 군락
- 전체 모양 둥글고 크면 ‘갯고둥’
- 껍데기 작고 가늘다면 ‘댕가리’
- 입구 비틀어지면 ‘비틀이 고둥’

- 바락바락 씻어 반나절 해감 뒤
- 된장국에 넣거나 삶아서 먹어
- 중독되듯 먹었던 추억의 음식
- 실비술집선 아직도 단골 안주

40대 이상 중년에게는 어린 시절 진하게 추억으로 남아있는 군것질거리들이 많겠다. 특히 초등학교 앞 불량식품 노점에는 늘 어린이들의 입맛을 유혹하는 것이 많았다. 쪽자라고 불렀던 달고나와 뻔데기(번데기), 쫀드기, 삘기, 깜부기, 오뎅, 꼼장어묵 그리고 쪽고둥 등. 특히 번데기와 쪽고둥은 두 가지 중 무엇을 먹을 것인가 고심했을 정도로, 어린 마음에 강력한 군것질거리의 최강자들이었다. 요즘 들어 젊은 청춘들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로 심각하게 고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입으로 쪽쪽 빨아먹던 추억의 군것질거리인 쪽고둥.
요즘은 이들을 종이컵에 담아 팔지만, 한때 번데기와 쪽고둥은 신문지나 돌가루 종이(시멘트 포장지)를 돌돌 말아 얄팍하게 만든 봉지에 넣어 팔았다. 길이만 길쭉할 뿐 들어가는 양이 적은 ‘야바위 같은’ 봉지였다. 때문에 아이들은 내용물이 적어 늘 아쉽고 허기가 졌다. 결국 적은 내용물 대신 국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아저씨 국물 좀 더 주이소.” 그러면 쪽고둥 장수는 큰 선심 쓰듯 국자에 쪽고둥·뻔데기 국물을 조금씩 담아 주던 기억이 난다.

쪽고둥을 아주 좋아하는 집에서는 시장에서 사와 직접 삶아먹기도 했는데, 먹기까지 지난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쪽고둥을 삶고 난 뒤에 펜치나 니퍼 등으로 일일이 꽁무니를 잘라야 했던 것. 꽁무니를 잘라서 쪽 빨아야 속살이 입으로 쏙 빨려 들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때는 식구가 둘러앉아 입이 부르틀 정도로 쪽고둥을 쪽쪽 빨아 먹었다.

한때 쪽고둥은 해수욕장, 유원지, 축제장 등에 단골로 파는 군것질거리였다. 지역에 따라 쪽쪽이, 삐리고둥, 빠래고둥, 삐들이, 갯다슬기, 갯올갱이, 꼬디고둥 등으로 불릴 정도로 국민 군것질거리로 사랑을 받던 것이 바로 이 쪽고둥이었다.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아직도 실비술집 등에서는 단골안주로 이 쪽고둥이 나오기도 한다.

경남 사천만 갯벌의 댕가리와 비틀이고둥.
얼마 전 경남 사천 비토섬과 진해만 등지를 다녀왔는데, 마침 드넓은 갯벌을 잠깐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갯벌 위로 바글바글 돌아다니는 칠게와 가슴지느러미를 발처럼 펼치고 기어 다니는 짱뚱어, 군데군데 숨구멍을 내고 숨어있는 맛조개 등을 관찰할 수가 있었다. 특히 갯벌 주위 돌 틈에는 어김없이 다슬기같이 생긴 쪽고둥이 군락을 이루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놈들이라 새삼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속칭 쪽고둥에도 지역마다 여러 종이 분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얼핏 보기에는 모두 평범한 쪽고둥이지만 그 종류는 다종다양했다. 쪽고둥으로 불리는 고둥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갯고둥’과 ‘댕가리’ ‘비틀이고둥’ 등이다. 비틀이고둥에는 갯비틀이, 검정비틀이, 얼룩비틀이 등 여러 종이 분화해 서식하고 있다.

이 모두가 복족류에 속하는 연체동물로 우리나라 연안의 조간대, 모래와 개흙으로 조성된 개펄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라도 쉬 볼 수가 있다. 껍데기가 3㎝까지 자라며 원뿔모양으로 껍질이 두껍고 단단하다.

쪽고둥을 먹고 있는 아이들.
특히 남서해안 갯벌에서는 어딜 가도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종이다. 서해안 영종도, 안면도부터 부안, 목포, 보성, 사천, 부산 낙동강권까지 널리 분포해 있다. 댕가리 종류는 신석기 시대 때부터 우리 연안에 서식하며 식재료로 활용이 되었다는 문헌 또한 있다.

‘갯고둥’은 전체 모양이 둥글고 크다. 주둥이 부분 사이즈가 크고 반원형이다. 주둥이 아래 안쪽으로 흰색의 매끈한 줄무늬 층이 발달됐고 주둥이 아래쪽에 흰 혹이 있다. ‘댕가리’는 갯고둥과 비슷하지만 그 크기와 주둥이가 작고 껍데기 형태도 가늘고 길다. 그리고 주둥이가 아래쪽으로 쏠려있고 주둥이 밑에 흰 혹도 없다. ‘비틀이고둥’은 민물기가 있는 갯벌에서 댕가리 등과 섞여 무리 지어 산다. 원뿔 모양의 딱딱한 껍데기에 작은 돌기가 많으며 입구가 조금 튀어나와 비틀어져 있다. 크기나 생김새가 댕가리와 비슷하다.

사천만 갯벌에서 용현면의 이숙이 할머니를 만났다. 갯벌에 물이 빠지자 돌 틈을 뒤진다. ‘쫄장게’를 잡는단다. ‘빤디기’라고도 한다는데, 칠게 새끼처럼 보인다. 이놈을 간장에 조려먹는데, 작은 놈일수록 아작아작 맛있다. 이 갯벌에는 댕가리, 비틀이고둥이 많단다. 예전에는 이놈들 한 움큼씩 주워서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고, 자식들 심심풀이로 삶아주곤 했단다. 돌 틈을 뒤져보니 댕가리와 비틀이고둥이 함께 오밀조밀하다.

경남 사천만 갯벌에서 고둥을 잡고 있는 사람들.
며칠 후 진해해군사령부 앞 갯벌. 썰물에 갯벌이 열리면서 많은 주민들이 갯벌을 뒤진다. 바지락을 캐고 고둥을 잡는다. 신이천이 합류하는 지역에는 가족끼리 낚시를 하는데 한 망태기 가득 망둥어를 잡아놓고 있다. 돌 틈을 뒤지니 갯고둥이 바글바글하다. 고둥을 잡는 게 아니고 숫제 주워 담는다. 두 손으로 긁듯이 잡는데, 소복소복할 정도로 많다. 10~20분 만에 비닐봉지 한가득 갯고둥을 채운다.

집에 와서 갯고둥을 장만한다. 먼저 대야에 갯고둥을 쏟아붓고 바락바락 씻어내기를 너댓 번. 천일염을 적당량 넣고 반나절 동안 해감을 한다. 펄이나 모래 등지에 서식하기에 해감을 제대로 안하면 먹을 때 이물질이 버석거린다. 소금이나 된장을 조금 푼 물을 솥에다 팔팔 끓이다가 갯고둥을 넣고 삶는다. 잘 익은 갯고둥을 식힌 뒤 펜치로 꽁지를 일일이 잘라낸다.

이렇게 지난한 노동의 시간을 뒤로 하고 가족들이 한데 모여 쪽고둥을 빨아먹는다. 온 식탁에 쪽쪽쪽, 쪽고둥 빠는 소리로 요란하다. 짭조름한 바다 짠내가 진하게 번져난다. 알이 작기는 하지만 탄탄한 속살과 고소한 내장이 제대로 갯냄새를 내며 입안에서 쫄깃하다. 쪽고둥 살을 여러 개 입안에 머금었다가 한꺼번에 씹으니 바다가 한가득 풍요롭다. 쪽고둥 삶은 물을 걷어 된장국도 끓여 먹는다. 해감내 나는 싱그러운 국물이 참으로 흔쾌하다.

어린 시절 추억의 군것질이었던 쪽고둥. 먹을 것 별로 없었을 때 쪽쪽 빨면 짭조름한 갯내에 계속 손이 가던 음식. 그리하여 중독되듯 계속 빨아대던, 이제는 푸근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쪽고둥. 갯벌이 사라지면서 이 추억마저도 사라질까봐 아쉬운 요즘이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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