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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3>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1862)

하버드생이 설파한 ‘나는 자연인이다’… 물질 만능주의 세상 꼬집어

  • 서부국 국장 겸 교열부장
  •  |   입력 : 2020-09-24 19:02:06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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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후 좋은 취직자리 마다하고
- 숲속 호숫가 찾아간 청년 소로
- 직접 오두막 짓고 자연주의 생활

- 낮에는 밭 매고 밤에는 사색
-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영위
- 소박한 2년 경험 책으로 엮어
- 기계·결정론 팽배한 사회 비판

- 지친 현대인에게 길잡이 역할
- 美 대표하는 고전으로 자리매김

지금까지 태어난 인류 중 하버드대 졸업생이자 하루 감옥살이를 한 남성, 호수를 ‘신(神)이 흘린 눈물방울’이라고 표현한 이는 단 한 명. 헨리 데이비드 소로다. 그는 175년 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월든 호숫가에서 2년 2개월 2일간 산 경험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인 ‘월든(Walden)’을 써냈다. 마크 트웨인(1835~1910) ‘허클베리 핀’과 함께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2대 고전. 살아내는 데 지치고, 갈 방향을 잃었던 이들이 집어 들었던 책이기도 하다. 그들은 발길을 돌려 월든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소로가 직접 지은 호숫가 오두막에서 기다린다. 이제 그를 만날 시간. 눈을 감으세요. 슬립!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월든 숲 입구 공터에 원형 복원된 소로 오두막과 그 부근에 세워진 ‘산책하는 소로’ 동상. 오두막 내엔 집기 등도 부활시켜 배치했다.
1845년 3월 말 28세 소로. 월든 호숫가 서북쪽 기슭에 오두막을 짓기 시작하며 중얼거렸다. ‘지나친 욕심과 노동은 인생을 갉아먹을 뿐이야. 집이란 체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넓이만 가지면 돼.’

미국 독립기념일인 그해 7월 4일 거의 완성된 오두막에서 그는 숲속 첫날밤을 만족스럽게 보냈다. 일기를 매일 쓰는 소로는 그날 잠들기 전 이렇게 적지 않았을까. ‘하버드대를 졸업해 취직할 곳이 많은 내가 숲속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독립하기 위해서다. 마침 오늘이 독립기념일. 난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모든 속박과 구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보겠다고 꿈꿔왔다. 이제 난 숲속 은자(隱者)가 되련다. 지금껏 누려 보지 못한 삶을 펼치는 인생 실험이 시작됐다!’ 낮에는 밭에서 김매고, 어둠이 깃들면 사색하면서 글을 썼다. 과격할 정도로 급진 성향을 지닌 이 남자는 또 다른 삶을 찾아 1847년 9월 6일 숲을 떠났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동안 월든 숲(자연)과 콩코드(문명) 경계에 선 소로는 생각을 모았다. 오두막을 지었을 뿐 소유하지는 않았다. 늘 열어 놓았다. 개똥지빠귀가 오두막 내로 포르르 날아와 지저귀면 귀를 기울였다. 길손이 주인장 없는 집에 들러 쉬다가 떠나도록 배려했다. 간혹 찾아오는 손님은 깍듯이 맞았다. 소로는 2년여 월든 숲에서 머물며 수십 달러 적자를 본 대신 여가·자립·건강을 얻었다.

월든 호수는 콩코드 마을에서 남쪽으로 2.4㎞ 떨어진 숲 가운데 자리 잡았다. 소로 표현을 빌리자. 맑고 깊은 초록빛 우물, 콩코드 마을이 자기 머리에 쓴 작은 왕관에 박힌 최고급 보석, 이슬을 증류할 면허증을 하늘에서 받아낸 곳이다. 이런 숲에서 사는데 늦잠을 자랴. 소로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새벽에 새보다 먼저 일어나 호숫물로 몸을 씻고 상쾌한 하루를 열었다. 채식 아침을 먹고 오두막을 나섰다.

소로는 자연은 그대로가 가장 좋다는 초절주의자(超絶主義자)였다. 숲속 친구가 생겼다. 밭에서 일할 때 새가 어깨에 내려앉았다. 다람쥐는 구두 위를 타고 넘어갔다. 옥수수를 수확해 짐승들과 나눠 먹었다.

새가 많았다. 박새 어치 딱새 들꿩 노래참새(올릿올릿올릿 칩칩칩 윗윗윗!) 바위종다리 쏙독새 도요새 멧비둘기 티티새 붉은풍금조 개똥지빠귀 물오리 기러기 흰가슴제비 도요새 되강오리(미친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소로와 호수에서 숨바꼭질했다) 줄무늬올빼미 유리울새 개구리매 되새 피비새. 호수엔 강꼬치고기 퍼치 메기 피라미 황어 기름종개 송어 장어 황소개구리 거북 자라가 살았다.

월든 숲을 지키는 나무는? 폰데로사소나무 솔소나무 리기다소나무 노간주나무 백송나무 가문비나무 감탕나무 산딸나무 검정(노랑)자작나무 너도밤나무 참피나무 서어나무 개느릅나무 소귀나무 사시나무 단풍나무 개암나무 버드나무 떡갈나무 호두나무. 가을이면 가지가 늘어지도록 열매(맛은 신통치 않으나)를 다는 모래벚나무, 가지가 너무 빨리 자라 저절로 부러지곤 하는 옻나무 역시 소로가 찾아낸 숲속 생명체였다.

숲에 맹수는 없었다. 발 달린 동물이 제법 눈에 띄었다. 수달 너구리 붉은다람쥐 산토끼 들쥐 우드척 두더지 여우 사향쥐. 이들은 우아한 야생풀인 보릿대국화 미역취 쥐손이풀 은방울꽃 사이를 누볐다. 황새풀 부들 우단현삼 물레나물 조팝나무 터리풀 등심초는 강인한 풀이라 소로가 좋아했다.

호기심 가득한 관찰자인 소로. 야생에서 먹을거리를 구했다. 밤 포도 넌출월귤 매발톱나무열매 야생사과 감자콩.

소로는 월든 숲을 들여다보면서 기록했다. 그 묘사가 참 자세해 영상을 보는 듯하다. 봄을 묘사한 대목에선 흥겨운 교향악 선율이 솟는다. 봄기운이 겨우내 꽁꽁 언 호수 얼음판을 걷어냈다. 호수 수면은 태양이 보내온 환한 빛을 반사해 소로 오두막으로 보냈다. 웅크린 채 글 쓰던 소로는 깜짝 빛 세례에 환호성을 올렸다. 한겨울 월든 호수를 탐사해 지도를 만들 때 떠오른 생각. ‘겉보기엔 모순돼 보이지만 실제론 합치되는 숱한 법칙이 빚는 조화가 참 멋지다.’ 현대 ‘카오스 이론’과 비슷하다. 과학과 인문을 아울렀던 소로다.

그는 겉치레를 싫어했다. 집은 옷처럼 체온을 보호해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여겼다. 옷은? 알몸만 가려! 타인 시선을 의식하고 유행 좇아 옷을 입는 이는 옷걸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내 집 마련한답시고 평생 일하지만 가난한-지금도 그렇지만-당대 도시민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그로선 왜 그렇게 집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탐욕과 마찬가지로 게으름과 안일도 문제라고 비난했다. 팽창하는 산업자본주의와 물질만능문명도 마찬가지. 당대를 강하게 까발렸다. 개인을 부당하게 대하는 국가와 사회에 항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또 다른 명저, ‘시민의 불복종’(1849년)이다.

실천주의자인 그는 청년(학생)에게 충고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럭저럭 살지 말고 인생 실험실을 차려 보세요.” 책상물림과 먹물에게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산지식을 체험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동서양 고전을 섭렵한 박식한 젊은이였다. 공맹 사상서, 기원전 5세기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 인도 철학서를 읽어 자주 인용했다. 1854년 월든 초판본은 대중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명저는 결국 제값을 한다. 세세한 자연 기록이며 ▷소박한 삶을 권면 ▷물질만능주의를 비판 ▷탁월한 언어 예술 구사 ▷정신세계로 안내하는 시각을 제공한 이 책은 영원한 고전이 됐다.

소로는 탁월한 통찰 예지 능력을 갖춘 사상가였다. 그는 19세기 도시에서 하늘로 치솟은 건물을 보면서 “건물이 인간을 내려다보고, 인간은 건물을 우러러보는 시대가 온다”고 예언했다. 우리는 지금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그 실상을 본다. 그가 지적했던 빈부 격차 문제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급식 카드로 연명하는 아동이 겪는 엄혹한 현실이 여전하다.

대지와 호수는 거대하고 강인한 자연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섬세한 생명체라고 역설했던 소로. 자연은 호흡하며 아파하는 존재지만, 인간은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모르는 채 파괴한다는 외침에 시큰둥했던 인류는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뼈아픈 대가를 치른다.

   
기계·결정론이 만든 우주관이 우세했던 19세기에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소로 혜안은 증명됐다. 그가 남긴 ‘월든’은 피톤치드를 내뿜어 삶에 지친 독자를 치유한다. 소박한 삶은 빛난다.

서부국 국장 겸 교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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