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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6> 일연의 신이사관 ① 인식의 전환

역사 속 ‘신묘한 이야기’(神異·신이)…불교의 틀 깨고 사관으로 정립 첫 발 떼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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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0-04 20:05:51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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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유교중심 정치·문화 속
- 비판적 시각 주류 이루던 ‘신이’

- 새롭게 이해하려 한 ‘동명왕편’
- 신뢰성 보이려 애쓴 ‘해동고승전’
- 인식의 전환 못 이뤄내 한계 보여
- 과업 떠맡은 일연 삼국유사 집필

‘신이사관(神異史觀)’이라고 하면, 꽤 어색하고 부적절하다고 느낄 수 있다. 당연하다. 대체로 ‘신이’는 종교적인 이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컫고, ‘사관’은 합리적인 관점에서 사실을 바라본다는 뜻을 담고 있으므로 두 용어는 이질적이며 대립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로 묶어서 역사인식의 한 태도 또는 역사서술의 한 방식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신이사관은 학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용어로서 ‘삼국유사’를 역사서로 다룰 때면 반드시 언급된다. ‘삼국유사’로 말미암아 탄생한 개념이고 용어인 셈이다.
‘고승전’의 신이(神異)편. 동국대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그렇다면 ‘신이사관’이라는 독특하고 생소한 용어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용어에서부터 드러나듯 중세 동아시아의 사상과 문화를 관통하는 두 축이었던 불교와 유교의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불교적 인식과 유교적 사유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관이기 때문이다.

■신이(神異)의 불교적 인식

절로도해도(折蘆渡海圖). 달마가 바다를 건너는 ‘신이’한 모습을 그렸다.
중국에서는 진한(秦漢) 이후로 고대의 신화나 전설 따위에서 비롯된 기이하고 신령한 이야기들이 널리 퍼졌고, 그런 이야기를 지괴류(志怪類)라 불렀다. 그 성격이 여기서 말하는 ‘신이’와 흡사하지만, 대체로 허황된 이야기로 간주되고 흥밋거리로 여겨졌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 ‘신이’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역사적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고승전(高僧傳)’(6세기 초)이 편찬되어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십과(十科)라는 체제에 ‘신이(神異)’편을 두어 신령한 자취를 보여준 고승들의 전기를 모으면서부터 주목받았다. ‘고승전’ 권10의 말미에 ‘논(論)’이 있는데, 거기에서 ‘신이’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혹은 신묘하고 기이한 일을 드러냈고 혹은 먼 훗날의 조짐을 기록했으며, 어떤 이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어떤 이는 무덤에 묻힌 뒤에 관이 텅 비었다. 신령한 자취는 괴이하고 속이는 듯한데 그러한 까닭은 헤아릴 수 없다. … 무릇 이치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불도(佛道)에 들어맞는 것이고, 일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만물(중생)을 구제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이라는) 방편은 상식에 어긋나도 불도에 들어맞고 이롭게 써서 할 일을 이룬다.”

불교에서 신이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불도에 들어맞아야 하고, 둘째는 중생을 구제하는 교화의 효과가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아무리 기이한 일이나 괴상한 일이라도 교화의 방편으로 구실하므로 수긍되고 허용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타행(利他行)의 효용이 있어야 ‘신이’라는 말이다. 이는 도교에서 자랑하는 기묘한 재주나 방술(方術)을 비난한 아래의 글에서 한층 잘 드러난다.

“만약 방술을 뽐내며 팔고 좌도(左道, 도교)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시대에, 신비한 약을 써서 하늘 높이 날고 향기로운 지초(芝草)에 기대 오래 사는 일이라면, 저 닭이 구름 속에서 울고 개가 하늘 위에서 짖으며 뱀과 고니가 죽지 않고 신령한 거북이 천 년을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는가?”

도교에서 불교를 적대시해 정치 권력과 결탁해서 배척하는 일이 적지 않았으나, 불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승전’과 같은 저술들을 통해 도교가 이타성을 결여하고 속임수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행태를 비판했을 뿐이다. 그러나 불교가 도교에서 벌이는 유사한 일들을 대하는 자세는 차별적이고, 그 근거와 논리는 불교를 믿고 받드는 사람들에게만 통용될 뿐 보편적으로 타당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유교 지식인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게 되었고, 과거제를 시행하면서 유교 지식이 관료의 조건이 된 고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

고려 시대 문장가 이규보가 쓴 ‘동명왕편’ 서문. 한국고전종합 DB
고려 시대에는 불교와 더불어 도교도 성행했다. 그러다 보니, 불교의 신이와 도교적 신비가 갖가지 이야기를 통해 널리 퍼졌다. 특히 비합리적이고 비일상적인 현상이라도 불교와 관련이 있다면, 수용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그러나 유교 지식인들이 관료로서 정치와 문화 전반을 담당했으므로 공식적으로는 ‘신이’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이’의 비합리성을 비판하면서 편찬된 ‘삼국사기’는 그런 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12세기 말쯤부터 ‘신이’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유교 지식인들이 나타났다. 무신 집권기에 관리 생활을 시작해 외교 문서를 도맡아서 작성했던 문장가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쓴 ‘동명왕편’(1193년)의 서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강화도에 있는 이규보의 묘.
“세상에서는 동명왕의 신이한 일을 많이들 이야기한다. 어리석은 사내와 아낙들까지도 그 일을 자못 이야기하는데, 내가 일찍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웃으며 … 지난 계축년(1193) 4월에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얻어 ‘동명왕본기’를 보니, 그 신이한 자취가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어 귀(鬼, 귀신)나 환(幻, 허깨비)이라 생각했다. 세 번 거듭해서 깊이 읽고 새겨서 그 근원에 차츰 들어가니 환이 아니라 성(聖, 성스러움)이었으며 귀가 아니라 신(神, 신이함)이었다.”

이규보도 처음에는 동명왕의 이야기를 듣고는 비웃었으며, 나중에 ‘삼국사기’ 이전의 ‘구삼국사’를 얻어 보고서도 귀신이나 허깨비 따위와 같이 황당하게 여겼다. 그러나 계속 읽으며 음미하다가 그 근원에 다가가자 비로소 “동명왕의 일은 변화의 신이함이어서 뭇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거나 헷갈리게 하는 것이 아니고 참으로 나라를 세운 신령한 자취”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동명왕편’은 영웅서사시이자 민족서사시다. 민중의 이야기에 담긴 주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노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유교적 이데올로기의 한계와 횡포에 대한 반성이자 반발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장구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사관(史觀)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한계가 뚜렷하다.

■사관으로서 신이의 과제

고승전 저술의 전통을 이어받은 각훈은 ‘해동고승전’(1215)을 저술하면서 ‘신이’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을까? ‘담시전(曇始傳)’에서는 “스님은 그(척발도)를 위해 인연의 보응은 어긋남이 없음을 설하고 손바닥을 펴 보이며 신이(神異)를 대충 드러냈다”는 대목이 나오고, ‘마라난타전(摩羅難陀傳)’에서는 “승려 마라난타는 서역의 중이다. 신이(神異)와 감통(感通)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며, 곳곳을 두루 다니려는 뜻이 있어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각훈은 ‘해동고승전’을 통해 불교의 신이가 괴이한 일이 아니라 상서로운 것이며 유교의 성(誠, 지극함)이나 성(聖)을 갖추어야 나타나는 일이어서 믿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불교의 역사서를 저술해 유교의 합리주의나 역사인식에 바탕을 둔 유교의 역사서에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고승전’부터 내려온 불교적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탓에 한계만 보여주었다. 이규보처럼 인식의 전환을 하지 못해 ‘신이’를 ‘신이사관’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 과업을 일연이 떠맡아 했으니, ‘삼국유사’가 그 결과물이다.

정천구 고전학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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