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가 아쉽게도 끝났다. 포스트 코로나시대, 연휴 마지막 코스는 그동안 못 본 드라마 몰아 보기였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눈에 띄는 게 없다. 2019년 초 큰 인기를 끈 ‘SKY 캐슬’부터 올 초 종영한 ‘사랑의 불시착’까지 재밌게 본 드라마가 많건만, 요즘은 통 눈에 들어오는 드라마가 없다. 한동안 유행했고, 지금도 방영 중인 법정 드라마는 대한민국 부패·비리를 고발하고 위선을 파헤쳐 신선했지만, 유사한 소재가 반복되니 피로감이 쌓인다. 안 그래도 현생은 고달픈데 그걸 또 화면으로 만나는 심정은 괴로울 뿐, 이젠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 점에서 철 지난 드라마지만 ‘동백꽃 필 무렵’의 황용식은 어쩌다 재방으로라도 마주치면 웃음이 피식피식 나는 그립고도 정이 가는 캐릭터다. 바닷가 마을 옹산의 동네 경찰 황용식은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정의 청년이지만, 아들 딸랑 데리고 아무 연고 없는 전 남편 고향으로 온 동백이한테 반해 불도저처럼 직진한다. 이런 황용식 캐릭터를 두고 2019년 ‘촌므파탈’이니 ‘청국장 직진남’이니 하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였다. 재벌 2세 실장님, 초능력 차도남 같은 금수저 주인공과 다른, 촌스럽지만 든든한, 잘 찾아보면 내 주변에도 있을 것만 같은 현실감 넘치는 치유의 판타지를 선물한 것이다. 평생 못 가질 것 같은 대상보다 투박해도 진정성 있는 사람의 진가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황용식 캐릭터 유행의 내면을 살피면 지난해 대한민국을 강타한 B급 문화의 정서가 깔려있다. 이 유행은 2020년에도 지속된다. 비의 역주행 곡 ‘깡’열풍으로 시작한 인터넷 밈 문화에는 ‘따라 하기’를 통한 나만의 ‘새로 쓰기’ 법칙이 있고 그것이 치유의 놀이로 번졌다. 그런 관점에서 눈에 들어오는 드라마가 있다. 남편의 18살 때로 돌아간 ‘18 어게인’이다. 제목만 보면 ‘수상한 그녀’의 중국판 ‘20세여, 다시 한번’이 떠오른다. 이혼 직전 남녀가 상대의 어린 시절로 가 서로 이해하고 해피엔딩을 맞는 내용이다. 그 시절 멋있던 남자를  찌질이로 변하게 한 세월을 탓해야 하나, 그 세월 속에 내가 있음을 탓해야 하나. 드라마를 보다 이래저래 세월이 미워진 하루다. 동명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