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시절 피란민 몰려와 밀집
- 40계단·국제시장·영도다리 등
- 고단한 삶의 풍경들 담아내
- 고향 잃은 청년의 딱한 처지
- 포근히 감싼 연인 노랫말에
- 부산 눌러앉은 실향민 공감
- 시련에 고통받는 사람들 격려
- 좋은 노래 시대적 책무 다해
하늘이 인간을 세상에 내보내실 때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기 편하도록 많은 것을 함께 내려 보내셨다. 노래도 그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노래를 함께 보내신 뜻은 인간이 시련과 환난으로 고통을 겪을 때 작은 위로와 격려라도 되라고 그리했을 것이다. 수많은 노래가 그런 뜻을 지니고 세상에 내려와 제 구실을 하였다. 우리가 다루어보려는 ‘경상도 아가씨’는 제 구실을 훌륭히 해낸 노래로 손꼽힌다.
■임시수도 부산 가사로 실감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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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초반 부산 중구 사십계단. 필자 제공 |
6·25전쟁이 이 땅을 할퀴고 간 지도 70년이 흘렀다. 전쟁 초기 살길을 찾아 남으로 떠나왔던 피란민들은 한반도의 맨 남동쪽 끝 항구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곳이 부산이었다. 당시 부산은 온갖 소란과 악다구니, 자동차 경적, 여기저기서 다투고 싸우는 소리가 종일 들렸으리라.
노래 ‘경상도 아가씨’(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 노래, 도미도레코드, 1953)의 가사와 곡조를 가만히 음미해 보노라면 당시 정경이 그림처럼 생생히 보이고 소리까지도 귀에 쟁쟁 들린다. 꼭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어도 노래는 그 시절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서 재생시켜 준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런 동정하는 판자 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 우는 이북고향 언제가려나
고향길이 틀 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장사 하더래도 살아 보세요/ 정이 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 그래도 눈물만이 흘러 젖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영도다리 난간 우에 조각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 얘기 들려주세요/ 복사꽃이 피던 날 밤 옷소매를 끌어 잡는/ 경상도 아가씨의 그 순정이 그립구나/ 그래도 뼈에 맺힌 내 고장이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노래의 중심배경으로 떠오르는 공간은 사십계단 층층대와 국제시장, 영도다리 부근이다. 이곳은 전쟁시절 피란민들이 가장 많이 몰려서 바글거렸다. 생존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가득한 삶의 막장이었으리라. 사십계단은 영주동 뒷산, 보수동, 동광동 주변에 움막을 짓고 흩어져 살던 피란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중심지였다. 이곳을 내려가면 곧장 부둣가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1절에서 부산 피란민 중 한 청년은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서 울고 있다. 옆에는 애인으로 보이는 부산 처녀가 함께 나란히 앉아 울음의 사연을 자꾸 묻는다. 처녀의 얼굴도 눈물에 젖었고, 목소리는 울먹인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처녀의 가슴 속에는 실향민 애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가득하다. 청년은 떠나온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부산 처녀는 실향민 애인이 오막살이 판잣집에서 살아가는 딱한 처지가 안스럽다. 청년은 부산 처녀에게 좀더 떳떳하고 당당히 다가가고 싶은데 전혀 그럴 처지가 되지 못한다. 그게 너무 속 상하다. 청년의 가슴 속은 고향 집에 남아계신 부모님 걱정,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산에서 앞으로 살아갈 걱정, 어떻게 하면 부산 처녀와의 귀한 만남을 성사시킬 것인가에 대한 걱정 따위로 편할 날이 없다. 어느 날은 애인과 둘이 소주를 한잔 하고 사십계단 돌층계에 앉아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뱃고동 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존재의 설움이 치밀어 올라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정 들면 타향도 고향… 연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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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도 아가씨’ LP음반 재킷. |
2절과 3절은 실향민 청년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감싸주는 부산 처녀의 토닥거림이다. 귀향의 날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니 그날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이 버티며 살아가야 한다고 격려해준다. 마땅한 일거리가 없다면 담배장사라도 해보라고 말한다. 담배장사는 주로 미국산 양담배를 작은 나무상자에 몇 갑 넣어서 길거리 노점이나 다방, 식당으로 다니며 판매하는 떠돌이 장사치다. 1950년 초중반에는 이런 거리의 장사치 군상들이 많았다. 담배는 낱개비로도 팔았다. 주된 활동 무대는 남포동, 광복동 등 국제시장 부근이었다.
2절 가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런 부분은 ‘정이 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이란 대목이다. 한반도는 남북을 합쳐도 미국, 중국을 비롯한 광대한 나라에 비하면 아주 협소하다.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의 반공동포들은 남녘으로 쏟아져 내려와 항도 부산 언덕배기에 밀집해 살았다. 부산 처녀는 고향 잃고 남쪽으로 내려온 청년을 애인으로 만났고 이곳 부산이 낯설어도 정 붙여 살아보라며 다정하게 권해본다. 청년은 그 말이 서럽게 느껴지면서도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결연히 다짐한다. 3절은 드디어 부산 처녀와의 사랑이 무르익어 복사꽃 피는 봄에 혼례식을 올리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남녀북남의 부부가 되어 부산에 눌러 살게 된 실향민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작사가 손로원은 1950년대 초중반 피란지 임시수도였던 항도 부산의 풍경과 정서를 노래 ‘경상도 아가씨’를 통해 참으로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다.
당시 40계단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 한 장은 참혹한 전쟁을 겪은 한국인 모두의 가파르고 아슬아슬했던 위기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칠게 깎아 다듬은 각석을 층층이 쌓아서 돌계단을 만들었는데 그 숫자가 마흔 개라고 한다. 흑백사진 속의 돌층계에는 예닐곱 여인들이 오르내리고 있는데 대개 물동이나 함지를 머리에 이고 있다. 하나씩 헤아려보니 어쩌면 마흔 개도 넘을 듯한 돌층계는 맨 아래쪽에서 석 줄 정도 허물어져 널브러진 돌로 발 딛기가 위험하다. 그 허물어진 돌층계를 딛고 한 여인이 힘겹게 한 발 한 발 살피며 내려오고 있다. 등에는 아기를 업고 머리에는 물동이를 얹었다. 곧 쓰러질 듯 위태롭게 보인다. 당시 한국인 모두는 바로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여인들처럼 아슬아슬한 위기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좋은 노래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시대적 역할과 책무를 노래 ‘경상도 아가씨’는 유감없이 나타내 보여주었다.
시인·가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