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사시는 구순을 앞둔 친정엄마에게 들르면 종일 트롯 경연프로그램 재방송만 보고 계신다. 옆 동네 시아버지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채널을 돌리고 돌려봐도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눈에 띄지 않는다. 몇 번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돌아누워 버리거나, 잠을 청한다. 그나마 흥이 있는 분들은 유행가를 따라 부르기도 하지만, 삶의 활력이 필요한 이들을 활짝 웃게 할 TV 프로그램은 참으로 빈곤해 보인다.
OTT 무한 경쟁 시대를 선언한 미디어 시장은 내년 초 마블과 픽사, 애니메이션 콘텐츠로 무장한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상륙과 CJ E&M과 JTBC의 합작 법인을 앞두고 한껏 들떠 있고, 넷플릭스는 KT와 제휴해 가입자 수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코로나 상황은 집안에서 볼 SVOD(월정액 주문형 비디오) 선호량을 늘려 국내 OTT 시장을 키운다. 그러나 넘쳐나는 다국적 콘텐츠의 풍요 속에 노인층이 편하게 즐길 프로그램의 상대적 빈곤은 더 크게 다가온다.
몇 해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실버 프로그램 공모 지원작 심사를 간 적이 있다. 그때 당선작 중 하나였던 ‘같이 삽시다’는 지금도 KBS에서 방송 중이다. 평균연령 66세인 김영란 혜은이 등 당대 최고 여자 스타들이 남해 박원숙의 집에 모여 함께 생활하는 방송인데 몇 안 되는 실버 프로그램 중 ‘시즌2’까지 나왔다. 이제는 희끗해진 머리를 넘기며 근육통을 호소하고 텃밭을 가꾸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모습에서 비슷한 연령대 시청자는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보다 고령화 사회로 먼저 접어든 일본만 해도 NHK를 통해 노년층의 인물 다큐나 요리,집 가꾸기,수납정보 등 취미생활을 조명하며 실버 라이프 프로그램을 30% 이상 편성한다.
국밥집을 운영하던 부산 출신 김칠두 할아버지가 평생 소원이었던 패션모델로 성공하고 박막례 할머니가 공개한 반찬 만드는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만 이들 또한 신자유주의 마케팅에 선택된 대상일 뿐이다. 일반 노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기 쉬운 일인가.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주는 철학적 울림처럼 우리도 노인을 위한 TV가 있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할 때다.
동명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