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도소 간수 등 공무원 명퇴 후
- 글쟁이로 살고 싶어 산청에 귀촌
- 산청·함양사건 알게 된 뒤 충격
- 유족의 恨 소설로 풀어주자 결심
-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자락 배경
- 가상의 마을 '한짓골'서 일어난
- 민간인 학살·소녀의 죽음 다뤄
책과 관련한 일을 해오면서 우리가 한국소설 문학을 바라보는 잣대가 너무 엄격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문학적 성취도 있어야 하고, 재미도 있어야 하고, 작가에게는 티끌만 한 도덕적 흠결도 있어선 안 되고…. 장르소설이 더 많이 팔리고 웹소설이 더 많이 읽히는 세상에서도,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대치는 갈수록 높아진다. 작가들의 고민이 얼마나 깊을지 짐작된다. 필자는 독자로서 그저 읽을 뿐이다. 소설은 사람이 살아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장편소설 ‘지리산에 바람이 분다’를 읽었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자락 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 한 마을에서 일어난 소녀의 죽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설이다. 재미있었다. 이인규 소설가를 경남 산청 원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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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산청군 신안면 원지 고수부지에서 만난 이인규 작가가 최근 펴낸 장편소설 ‘지리산에 바람이 분다’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소설도 쓰고 노래도 하는 작가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진주로 가는 길, 진주에서 다시 원지로 가는 길에는 가을 햇볕이 따뜻했다. 은은한 황금빛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왕성한 녹음을 뿜어내던 산과 들이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원지 버스정류장에는 이인규 소설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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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에 바람이 분다- 이인규 지음 / 전망 |
이인규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2012년에 직장에서 명퇴하고 산청 원지로 귀촌했다. 그의 안내로 원지 고수부지로 발길을 옮겼다. 잔잔히 흐르는 강을 따라 걸었다. “저에게는 특별한 장소에요.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 마을에 빨리 적응하기 힘들기도 했고, 부산이 그리우면 혼자 여기 와서 앉아 있곤 했죠.”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그는 무엇을 풀어내고 또 무엇을 가슴에 담았을까.
이인규는 소설도 쓰고 노래도 한다. 그는 2006년 제9회 공무원문예대전 장려상 수상과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외에도, 2018년 한국문학예술 신인상(작사 부문) 수상과 음반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 발표라는 음악 경력을 가지고 있다. 소설집 ‘내 안의 아이’ ‘지리산 가는 길’ ‘동굴 파는 남자’ ‘여름’, 장편소설 ‘아름다운 사람’ ‘지리산에 바람이 분다’, 산문집 ‘누가 귀촌을 꿈꾸는가?’ 등을 냈다.
“책 좋아하고 기타도 잘 치던 형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초등학교 때, 형과 누나가 읽던 ‘폭풍의 언덕’ ‘안나 카레니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음악도 좋아했어요. 고3 때 작곡을 하고, 친구와 듀엣을 결성했죠. 싱어송라이터도 되고 싶었어요.” 대학 진학 때, 대학가요제 출전을 생각하며 학교를 선택했다니 그 마음을 알만하다. 그렇게 예술적 감상이 충만했던 그의 첫 직장 이야기는 엉뚱했다. “공무원 시험을 치려는데 ‘교정직’이 있더라고요. 문자 교정인가 하면서 시험을 치고 합격했는데, 발령지가 김해교도소지 뭡니까.” 그 이야기를 하면서 한동안 웃었다. 얼마 후 그만두긴 했지만, 교도소 간수는 소설가 이인규를 만드는 경험 중 하나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소설을 놓지 않았다. 진해에서 해군 군무원으로 근무할 때는 부산과 진해를 오가면서 부산소설가협회의 소설창작교실에서 습작을 했다.
■갈등과 대립, 해원상생
“산청에 와서 농사도 짓고, 군청 직원을 대상으로 문예 강사도 했어요. 글만 쓰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그러다가 산청군청 공무원 임시직에 합격했어요. 제가 관리해야 할 곳 중에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이 있었습니다. 무슨 사건인지 궁금해서 알아보았고,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억울한 가족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유족의 한을 소설로 풀어내서 많은 사람이 읽기를 원했지요. 그러자니 재미있게 쓰고 싶어 현재에 일어난 또 다른 죽음 등 소설적 장치를 고민했죠.” 소설 ‘지리산에 바람이 분다’에 몇 개의 사연이 중첩된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소설은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자락의 마을(소설에는 ‘한짓골’이라는 가상의 마을로 표현된다)에서 마을 주민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 성폭행을 당한 소녀의 죽음이 묻혀버린 사건이 큰 줄거리이다. 그리고 학살사건 당시 피해자 유족과 피해를 보지 않은 주민들의 대립, 토착민과 귀촌민의 불편한 관계, 기독교 이단세력과 전통무속 신앙까지 다양한 갈등이 이어진다.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이 누구일까 궁금해서 소설을 읽는 동안 그 많은 갈등이 마음에 들어왔다.
소설에서 가장 마음 아프게 읽었던 대목은 한짓골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이 오래 묻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 마을 노인의 말이다.
“그건 마을 주민 중 일부만 당해서 그래. 불행 중 다행인지 그때 그놈들이 마을 사람들 모두 학살한 게 아니라, 그중 인민군에 입대한 사람과 동조하여 산에 들어간 사람들 가족만 끌고 갔거든. 그래서 당한 가족들이 먼저 쉬쉬했던 거요. 한동안 당하지 않은 주민들은 우리더러 빨갱이 가족이라고 말도 안 섞었어. 지금이야 세월이 좋아졌지만 당한 우리는 그놈의 빨갱이란 딱지, 평생 들어야 했던 그놈의 빨갱이란 소리가 겁이 났던 게야. 우리 새끼들이 그런 소리 들어가면서 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거지. 지금이야 많이 알려져 보상도 받고 추모공원도 세워지고 좋아졌지만, 그 이전까지 그 사람들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니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던 사람들의 서러움까지 풀어질 수 있어야 정말 세월이 좋아졌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소설 속 이야기가 복잡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복잡한 갈등과 대립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 소설은 그런 세상을 한짓골이라는 마을을 통해 보여준다. 나라가 격동의 세월을 관통하는 동안 억울한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폭력적인 힘에 유린당한 소녀처럼, 억울한 상처가 아물기 전에 계속 다른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인규는 그 사람들을 소설 속에서 해원상생하고자 한다.
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