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 지혜, 신의, 정직, 용기, 굳셈
- 사람에게 여섯 가지 덕행 있어도
- 배움 멀리하면 폐단 생기기 마련
- 끊임없이 실천하려 한 호학 정신
- 공자의 가르침에서 교훈 얻어야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學問)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독립했고, 마흔 살에 그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 듣는 귀가 순조로워졌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 행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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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공자의 자기소개서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연필로 꾹꾹 눌러쓴 듯한 한마디 한마디에서 천금같은 무게가 느껴집니다. ‘과정을 차례로 밟아야지 함부로 뛰어넘을 수 없으며,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논어집주’ 주석이 엄정합니다.
지우학(志于學), 학문에 뜻을 둔다는 말은 지식을 축적하여 박학다식한 인간이 되려함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의 길을 가려는 다짐입니다. 인간의 길은 인(仁)의 길이고 인의 길은 사랑의 길이며, 그 길은 끝없는 덕행(德行)으로 가능하지요. 그러니 이 도에 스스로 설 수 있고, 의심할 바가 없고,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들은 바를 모두 순하고 조화롭게 해서, 자유롭게 살더라도 법도에 알맞은 처신을 하게 되었겠지요.
이처럼 덕을 이루는 사람이 공자께서 가르쳐 기르려한 사람인 군자요, 군자들이 만들려한 새로운 세상이 원칙과 순리를 바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대동사회일 수 있습니다.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앞세우기 보다 사랑의 실천을 우선하는 공부법이 바로 공자의, 공자학단의 공부법입니다.
덕행의 모델이라는 공자의 수제자 안연이 좋은 예입니다. 덕행이란 도를 체득하고 뜻을 돈독히 하여 힘써 실천하니 말하지 않아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詩)를 외우고 예(禮)를 높이며, 잘못은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지요. 모든 행동이 법도를 따르므로 ‘훌륭하다, 너는 오로지 덕으로 언행을 조심하는구나’ 하는 스승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공자가어’에 실린 안연의 모습입니다.
‘논어’(論語) 첫 구절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배움이란 본받는 일이며, 익힘은 새가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주자의 해석이 공자의 말씀만큼이나 또렷합니다.
MC 스나이퍼의 ‘인생’(Feat. 웅산)(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h3sdYv3Ky40)을 들으며 시작하겠습니다.
■육언과 육폐에서 찾는 교훈
‘논어’ 17편(양화) 8장. 공자께서 자로에게 덕행은 학문으로 계속 보완해야 함을 역설하는 대목에 육언(六言)과 육폐(六蔽)가 나옵니다.
공자 말씀입니다. “인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어지는 것이고, 지혜를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방탕해지는 것이고, 신의를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진리를 해치는 것이고, 정직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박절해지는 것이고, 용기를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난폭해지는 것이고, 굳센 것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경솔해지는 것이다.”
핵심은 호학(好學)입니다. 인, 지혜, 신의, 정직, 용기, 굳셈의 육언 즉 여섯 가지 덕을 좋아하는 데서 그칠 수 없지요. 그래서 여섯 가지 부작용, 육폐가 생기는 것입니다. 호학은 배우고 실천하며, 생각해서 다시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했습니다.
공자의 호학 정신은 “열 집쯤 사는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성스럽고 진실한 사람이 있겠으나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 대상은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라는 여섯 가지 교육 과목인 육예(六藝)에서 유가의 기본 경전인 육경(六經)으로, 더 나아가 인륜의 사덕인 인의예지(仁義禮智)로 깊어집니다. 배움이 기쁨을 넘어 즐거움이 되고, 나와 친구가 함께 군자로 성숙해 가는 이유입니다.
■군자의 허물은 일식과 같으니…
학문의 목표는 ‘도에 뜻을 두며, 덕을 굳게 지키며, 인을 떠나지 않으며, 예에서 노니는 것’이라 했습니다. 또 ‘시에서 일으키고, 예에서 서며, 악에서 인격의 완성을 이룬다’며 그 단계를 밟습니다. 그래서 ‘덕을 닦지 못함과 학문을 익히지 못함과 의로움을 듣고도 옮겨가지 못함과 선하지 않음에도 고치지 못함이 바로 나의 걱정거리’라는 공자의 간절함이 두드러집니다.
공자의 호학 정신이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끊임없이 실천하려는 의지입니다. 덕행을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하려는, 박시어민 이능제중(博施於民而能濟衆)하려는 뜻이지요.
이와 관련하여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학문을 위해선 구사(九思)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고, 몸과 마음을 다잡는 데 구용(九容)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구사는 ‘논어’ 16편(계씨) 10장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하는 바가 있다. 볼 때는 분명하게, 들을 때는 똑똑하게, 얼굴빛은 온화하게, 몸가짐은 공손하게, 말은 진실하게, 일은 신중하게, 의심스러울 때는 물어볼 것을 생각한다. 또 분할 때에는 어려움을 겪을 것을, 이득을 본다면 의로움을 고려한다.”
이번엔 구용. “발 모양은 무겁고, 손 모양은 공손하고, 눈은 정면을 보고, 입은 필요한 말만 하고, 목소리는 가다듬고, 고개를 항상 똑바로 하고, 엄숙한 자세를 유지하고, 서있는 모양은 덕스럽게 하고, 얼굴빛은 정중하게 한다.”
이런 몸가짐과 마음가짐이라면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겠지요. 그것이 진짜 학문과 덕행을 아우르는 태도 아니겠습니까. “군자의 허물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서 잘못을 저지르면 사람들이 모두 보게 되고,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게 된다.” 제자 자공이 스승의 가르침을 이렇게 알뜰하게 이어받았습니다.
양희은의 ‘인생의 선물’(QR코드 또는 인터넷 주소 https://youtu.be/3aqG-iM5zFs)을 들으며 마치겠습니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