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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5>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 (1689~1755)

삼권분립론 업적 남긴 佛 사상가…현대 법치의 근간 다지다

  • 서부국 국장 겸 교열부장
  •  |   입력 : 2020-10-22 19:37:16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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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법에 근간 뒀던 프랑스법
- 몽테스키외 문제 많다고 봐
- 자유사상 내건 영국법 토대로
- 20년간 법치 탐구한 걸작

- 자유·평등으로 세워진 법 아래
- 만민법·시민법·정법으로 구분
- 개인·권력이 자유·평등 누리는
- 사회 발전 방안 찾는 데 방점

- 오해 부를 반어법 문장 많지만
- 완독하면 법을 보는 눈 밝아져

부양 의무를 게을리한 직계존속이 1순위로 자녀 재산을 상속하는 사례를 금지한 민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다. 일명 ‘구하라법’이다. 지난 국회가 그 법을 묵힌 탓에 순직한 여성 소방관을 키우지 않았던 생모가 유족 연금을 챙겨 또다시 공분이 일었다.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 로마신화 속 여신으로 레이디 저스티스라고도 불린다. 저울은 형평, 검(劍)은 엄정한 집행, 눈가리개는 공정을 의미한다.
또 다른 ‘인명법(人名法)’인 ‘민식이법’.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안전을 강화한 이 법이 시행된 지 58일 만에 2세 아동이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후에도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가 크게 줄지 않는다면 이 법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까. 음주 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프랑스 사상가인 몽테스키외가 펴낸 ‘법의 정신’(1748년)은 이런 질문이 나올 때 떠올리게 되는 고전이다. 법이 가진 보편 정신은 무엇인가? 그는 숨 막히는 프랑스 절대왕정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로마법을 따른 프랑스법은 문제가 많았다. 그가 주목한 법은 자유사상 토대 위에 세워진 영국 헌법. 20여 년간 법치를 탐구한 결과를 31편에 담은 저작이 ‘법의 정신’이다. 그중 가장 반짝이는 결정체는 ‘삼권분립론’. 18세기에 탄생한 이 이론은 근현대를 맞은 법학 법철학 정치철학 법사회학 법인류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가 권력이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삼권으로 나뉘어 서로 견제·규제될 때 개인 자유가 확립된다.”

저자는 먼지투성이 법전이 아니라 펄떡이는 ‘현실’에서 법치를 건졌다. 연구 도구는 논증을 중시하는 자연과학이 애용하는 귀납법. 폭넓은 역사 사례, 인간과 사물이 가진 본성, 인간과 환경 간 상호 관계를 살펴 추출한 결론이 생생하다. ‘법의 정신’을 출간하면서 자화자찬했다. 책 부제가 ‘어머니 없이 태어난 자식’. 다른 학자 도움 없이 오롯이 내 머리에서 나왔다는 자랑이다. 엄살도 부린다. 서문(1편)에서 20여 년 집필하면서 엄청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자기 책을 꼭 읽으라고 독자에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독자가 책 전체를 조망해 의무와 조국 법률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현 위치에서 누리는 행복을 잘 감지하게 된다면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저자가 될 거라고 눙쳤다. 계몽 사상가다운 화법.

몽테스키외는 법치가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진다고 믿었다. 중반부 주요 논의 중 하나다. 법이 가진 보편 정신은 자유와 평등으로 구현된다는 주장.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그러나 사람이 그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사회가 평등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인간은 법으로서만 다시 평등해진다.”

   
샤를 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등장한다. 평등 정신은 지나쳐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민은 자기가 위임한 권력까지도 견딜 수 없어서 모든 것을 자신들이 하려고 한다…사람들은 원로원 의원이나 노인, 남편을 더는 존경하지 않을 것이고…이렇게 되면 습속도, 질서에 대한 사랑도, 마침내 덕성도 없어져 민주정체 원리는 부패한다.” 지금도 유효한 문장이다.

“위대한 성공, 특히 국민이 그것에 공헌한 바가 큰 성공은 국민에게 대단한 자만심을 가지게 해 지도를 불가능케 한다”는 대목도 나온다. ‘촛불혁명’으로 새 정부가 출범한 후 각종 민의가 분출하는 우리 사회상과 겹치지 않는가. 무자비한 군부독재 정권에 민심이 극한 고통을 받았던 터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개인 이익을 포장한 ‘과잉 평등’은 우리 사회에 무익하다. 공정성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국민·지도자가 평등 가치를 구현 못 하면 파국이 왔다. 역대 군부·보수 정부가 그랬다. 자유와 평등 정신은 중용을 이뤄야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실현은 미흡하다. 저자가 설정한 최종 연구 화두는 ‘개인과 권력이 자유 평등을 더불어 누리면서 정체(政體)를 발전시키는 방안 찾기’. 1편 ‘법 일반’에서 서양식 전통 자연법사상을 좇아 법을 자연법 실정법으로 구분하면서 대장정을 시작했다. 자연법은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기 전에 생기는 법. 식욕, 평화와 이성 간 애정 또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려는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사회가 구성되면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실정법이 등장한다. 민족 간에는 만민법(蠻民法), 모든 시민 상호 간에는 시민법(市民法), 국가와 개인 간에는 정법(政法). 시민법은 사법(私法), 정법은 공법(公法)이다. 저자는 이런 법 구분을 뭉뚱그려 “법은 인간 이성이다”고 단언했다. 전반부는 법 일반론을 다루는 데 할애했다. 정치 공동체(통치 구조)를 세 종류, 공화·군주·전제 정체로 나눴다. 각 정체는 덕성·명예·공포를 본성으로 갖는다. 이어 세 정체별 본성을 설명하고 그 아래 법 기능과 목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예를 들었다. 공화 정체(민주·귀족 정체)에서는 투표와 시민 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 덕성이 가진 가치를 일찌감치 꿰뚫어 봤다. 오늘날 시민 덕성은 민주주의를 발효하는 효모다.

저자는 동서고금 법들이 긴 세월 존멸하면서 남긴 크고 작은 발자취를 추적했다. 문장가답게 풍자와 익살로 여유를 보였다. 오해를 부를 만한 반어법 문장. 순박한(?) 독자를 당황케 했다. 후대 평론가와 번역자는 두통이 심해졌을 터이다. 18세기 프랑스어 원전이 쉬울 리가 없다. 국역본도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완독하면 보상이 뒤따른다. 명작 고전들이 그렇다. 높이 오르면 멀리 내다본다고 했다. 법으로 굴러가는 세상이다. 법이 추구해야 할 목적, 바람직한 기능, 갖춰야 할 합당한 조건, 법을 대하고 연구하는 자세에 일가견이 생긴다. 법을 보는 눈도 밝아진다. ‘법 없이 살 사람’이란 관용구는 ‘법이 없다면 그렇게 살 수 없다’는 뜻. 선거 출마자가 대담에서 얼마나 엉터리 소리를 하는지 판단할 지력을 얻게 되는 건 덤이다.

후반부는 보편성을 띤 법치를 좇는 각 나라에서 채택한 법률 제도 관습법 같은 실정법을 살폈다. 이런 법은 자연환경 풍토 종교 상업 정체에 따라 달라진다. 종교가 법을 교정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가. “법이 무력할 때 종교가 국가를 지탱시킬 때도 있다…아라비아의 여러 부족 사이에서는 매년 4개월간 모든 적대행위가 중지되는데, 극히 작은 분쟁도 불경으로 간주했다. 프랑스에서는 각 영주가 전쟁을 격렬하게 할 때 종교가 평화·휴전 시기를 정한다…국내에 커다란 증오 씨앗이 있을 때, 종교는 조정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만 봐도 종교 단체가 군부독재 세력과 반민주 정권에 쫓기는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던 전례를 상기하면 이 대목은 여운을 남긴다.

후반부에 잇따르는 이런저런 읽을거리는 지식욕을 자극한다. 결투 역사가 그렇다. 지금은 금지됐지만 19세기 이전까지 결투가 드물지 않았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란 속담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1953년 형법 제정 전까지 결투 금지법이 존속했다. 귀족과 상류층이 많았던 서양에서 ‘소극적 증명’ 방식인 결투로 재판하는 관행은 유서가 꽤 깊었다. 28편에서 결투에 얽힌 법률과 제도가 폐지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몽테스키외는 결투 유발 요소 중 하나로 체면을 들었다. 역사나 남녀 개인사에서 체면은 은밀한 괴력을 발휘해 왔다.

   
‘법의 정신’은 우리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 곧 이 나라를 이끌 새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코로나시대에 걸맞은 절대 가치와 덕목을 세우려면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오래된 미래’를 보여준다.

국장 겸 교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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