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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9> ‘삼국유사’의 체재와 의미

정치사와 불교사 대등함 기술 … 체재 구성 기존 역사서와 차별화

  • 정천구 고전학자
  •  |   입력 : 2020-10-25 19:29:20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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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역사 서술한 ‘왕력’‘기이’
- 불교사 다룬 ‘탑상’ 등 6개 편목

- ‘흥법’편에서 이 둘을 하나로 이어
- 과거 정치·불교 편향적 전개 타파
- 둘이 뒤얽힌 하나의 역사로 이해

- 일연은 소외된 민중 목소리 주목
- 책속에 그들의 문학사 함께 담아

‘삼국유사’의 신이사관은 대등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민중의 역사관이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지는 전체 구성 곧 체재에도 들어맞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국유사’는 ‘왕력(王曆)’과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 등 아홉 개 편목(編目)으로 구성돼 있다. 이 편목들에 대해서는 각기 따로 연구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체를 총괄해 특성과 의미를 밝히는 연구는 드물었고, 간혹 시도했어도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다.

대체로 이 편목들을 크게 둘로 나누어 ‘왕력’과 ‘기이’는 국가의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흥법’ 이하는 불교 신앙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본다. 이는 피상적인 이해이며, 안일한 해석이다.

‘흥법’의 위치가 애매하고 ‘탑상’의 기능이 모호한 점을 간과한 것도 문제다. ‘탑상’은 체재의 형식과, ‘흥법’은 체재의 의미와 관련 있다.
   
경주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의 원원사지 동서 석탑. 안혜(安惠) 등 고승 네 명과 김유신 등 대신 네 명이 발원해 세운 절로, 정치와 종교의 결합을 잘 보여준다.
■체재는 기전체 형식이다

크게 둘로 나누어 이해할 때, ‘왕력’과 ‘기이’는 기전체 역사서의 ‘표(表)’와 ‘본기’에 각각 해당하며, ‘흥법’ 이하 일곱 편목은 고승전의 체재를 따른 것이 된다. 그런데 탑과 불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탑상’은 본디 고승전에는 없던 편목이고 또 인물의 전기가 아니므로 이질적이다. 이 점을 먼저 해명해야 한다.

‘탑상’에는 30개 조목이 있다. ‘흥법’ 이하가 모두 79개 조목인 점을 생각하면, ‘탑상’편 하나가 ‘흥법’과 ‘의해’ 등 여섯 편목에 맞설 만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연이 비중에 따라 조목 수를 배정했다는 근거는 없으나, ‘탑상’편의 특이함을 고려하면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상’은 탑, 불상, 불전(佛殿), 범종, 사리, 불경 등 조형물이 조성된 연유를 서술한다. 이는 기전체 역사서의 ‘서(書)’나 ‘지(志)’에 대응되는 내용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예서(禮書)’, ‘악서(樂書)’, ‘봉선서(封禪書)’ 등이 있고, ‘한서’에는 ‘예악지(禮樂志)’, ‘형법지(刑法志)’, ‘지리지(地理志)’, ‘예문지(藝文志)’ 등이 있다. 서나 지에서는 인간의 삶에 꾸준히 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제도의 변화와 그 원리를 서술한다. ‘탑상’은 불교적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유형의 문화를 서술하고 있어 기전체의 서나 지처럼 구실한다.

‘탑상’을 ‘서’나 ‘지’로 본다면, 전체 구성을 기전체 형식으로 아우를 수 있다. ‘왕력’은 ‘표’, ‘기이’는 ‘본기’, ‘탑상’은 ‘서’ 또는 ‘지’, ‘의해’ 이하는 ‘열전’이 되어 각기 그 내용과도 부합한다. 이것이 일연이 의도한 구성이다. 이때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흥법’편이다. ‘기이’와 ‘탑상’ 즉 ‘본기’와 ‘열전’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사실, ‘탑상’을 어떻게 보느냐와 상관없이 ‘흥법’편은 그 내용으로 볼 때 이미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 것인데, 이제까지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체재의 의미를 밝히는 데에 핵심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정치사와 종교사의 융합

   
법흥왕릉. 법흥왕은 불교로써 정치를 일신하려 했던 제왕이다.
‘흥법’은 “불법을 일으키다”는 뜻이다. 역시 고승전 체재에 없는 편목이다. 중국 쪽 고승전에는 첫머리에 ‘역경(譯經)’이 놓인다. 중국의 불교가 범어(梵語)로 쓰인 경전들을 한문으로 번역함으로써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에서는 그런 번역을 한 적이 없으므로 ‘흥법’을 대신 두었다고 볼 수 있지만,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유통(流通)’편으로 시작하는 ‘해동고승전’이 참고가 된다. ‘유통’편은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삼국으로 전해진 내력을 고승들의 전기로써 밝힌다.

‘유통’ 1에서는 순도(順道), 망명(亡名), 의연(義淵), 담시(曇始), 마라난타(摩羅難陀), 아도(阿道), 법공(法空), 법운(法雲) 등이, ‘유통’ 2에서는 각덕(覺德), 지명(智明)과 담육(曇育), 원광(圓光) 등 10명 이상의 고승이 나온다. 여기서 법공과 법운은 각각 법흥왕과 진흥왕의 법명인데, 이는 두 왕을 승려로 간주한 것이다.

‘흥법’은 ‘유통’과 달리 순도, 마라난타, 아도, 염촉(이차돈), 보덕 등이 나올 뿐이다. 법흥왕과 진흥왕을 승려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망명과 의연은 빠져 있으며, 특히 ‘유통’ 2의 고승들은 모두 ‘흥법’이 아닌 ‘의해’편에 나온다. ‘흥법’편 각 조목의 내용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흥법’에는 모두 일곱 조목이 있다. 첫째 ‘순도조려(順道肇麗)’는 순도가 소수림왕 때 고구려에 처음 불법을 전한 일을, 둘째 ‘난타벽제(難陀闢濟)’는 마라난타가 침류왕 때 백제에 처음 불법을 연 일을, 셋째 ‘아도기라(阿道基羅)’는 아도가 신라에 처음 불법의 터를 닦은 일을, 넷째 ‘원종흥법염촉멸신(原宗興法猒髑滅身)’은 법흥왕과 염촉의 순교를, 다섯째 ‘법왕금살(法王禁殺)’은 백제의 법왕이 살생을 금지한 일을, 여섯째 ‘보장봉로보덕이암(寶藏奉老普德移庵)’은 고구려의 보장왕이 도교를 신봉하자 보덕이 절을 옮긴 일을 다루고, 일곱째 ‘동경흥륜사금당십성(東京興輪寺金堂十聖)’에는 신라 고승 열 명의 이름이 나열돼 있다.

이 ‘흥법’에서 소수림왕과 침류왕, 법흥왕, 진흥왕, 법왕 등은 불교를 적극 옹호한 제왕이다. 눌지왕과 미추왕은 불법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제왕이며, 보장왕은 불법보다 도교를 지원했다. 이런 제왕들이 불법을 일으키는 데 승려들과 대등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고승전을 비롯한 불교사서(佛敎史書)에서는 볼 수 없는 관점이다. 일연은 ‘흥법’에서 세간의 제왕과 출세간의 승려들을 함께 내세워 정치와 불교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과 성쇠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전체 구성에서 보면, ‘흥법’은 ‘왕력’과 ‘기이’의 정치사와, ‘탑상’ 이하 여섯 편목의 불교사를 대등하게 만들며 이어주는 징검다리 편목이다. 정치사와 불교사는 별개로 진행되는 역사가 아니라 둘이 뒤얽혀 하나의 역사를 이루어간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유교사서(儒敎史書)가 정치사만, ‘해동고승전’을 비롯한 불교사서가 불교사만 다루는 편향성을 체재 구성에서부터 바로잡은 것이다.

■정치사와 종교사가 전부인가

‘삼국유사’는 편목들의 구성을 통해 역사는 정치와 종교가 뒤얽혀 전개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실제 역사에 부합한다.

그러나 정치사도 종교사도 모두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 입장에서 서술돼 왔으므로 그 둘을 융합한다고 해서 온전한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정치와 종교를 떠받쳤던 민중과 그 역사가 소외되고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일연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민중은 늘 이야기와 노래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와 자신들이 바라보는 역사를 전해왔다. 일연은 이에 주목해 그 이야기와 노래를 ‘삼국유사’에 담았다. ‘삼국유사’가 주로 문학 연구의 대상이었던 까닭도 정치사와 종교사 이면에 문학과 문학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는 대립과 갈등, 분열을 조장하는 상층의 정치와 종교의 허울을 벗겨내고 하층의 문학이야말로 대등과 화합을 실현하는 방안이며 대안이라 주장한다. 민중의 이야기와 노래는 남녀, 노소, 상하 구별 없이 누구나 즐기지 않는가. ‘삼국유사’는 체재로써 정치사와 불교사의 대등을 말하면서 이면에 민중의 문학사를 펼쳐 놓은 고전이다.

정천구 고전학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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