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에 가족 남기고 홀로 와
- 부산 여성과 살림 차린 남성
- 환도 바람에 고심 끝 떠나기로
- 부산역서 헤어지는 이들 모습
- 한 편의 연극 보듯 생생한 가사
- 증기기관차 기적·쇠바퀴 소리
- 연상케 하는 실감나는 곡조
- 애틋함 잘살린 가수의 창법도
- 불후의 애창곡 자리잡은 비결
-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 생활고·취업난 등 다양한 주제
- 가사 바꿔 부르는 형식으로
- 꾸준한 사랑 받아오고 있어
세상엔 온갖 노래가 많고도 많지만 이 노래만큼 대중이 열광한 노래는 많지 않다. 바로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다. 열광의 이유는 첫째 가슴을 울리며 깊은 공감에 빠져들게 하는 가사, 둘째 출발을 앞둔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와 철로에서 들리는 쇠바퀴소리 등을 연상케 하는 실감나는 곡조, 셋째 애절함의 극치와 감동에 곧장 다다르게하는 가수의 창법. 세 가지의 기본이 어우러져 기막힌 조화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했으니 그것이 바로 이 노래가 절창인 이유다. 지금부터 이 노래의 비결에 대해 파헤쳐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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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부산역 광장의 모습. |
■대중 열광시킨 절창의 노래
6·25전쟁이 3년 동안 온갖 파괴와 살륙으로 이 땅을 유린해놓고 1953년 7월 휴전이란 어정쩡한 이름으로 일단 막을 내렸다. 휴전협정 조인은 부산에서 힘든 피난살이로 살아가던 실향민들이 고향, 혹은 새로운 삶터를 찾아 떠나는 이동의 계기로 이어졌다. 휴전선 이남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귀향 채비를 서둘렀지만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은 고향 가까운 쪽으로 삶의 근거지를 옮겼다. 관북지역 출신들은 강원도 속초 등 동해안 쪽, 관서지역 출신들은 인천, 강화 등 서해안 쪽에 삶터를 잡고 떠나갔다. 그리하여 1953년 8월부터 그해 12월까지 부산역 광장과 플랫폼에는 이별의 통과의례로 넘쳐났다. 가장 흔한 이별의 의례는 악수와 포옹, 눈물과 흐느낌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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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별의 부산정거장’ 포스트. |
단신으로 부산에 왔다가 환도할 때 식구가 불어서 떠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부부가 왔다가 헤어져 홀로 떠나는 외톨이도 있었다. 그 환도행렬 중 유난히 애처로운 이별장면이 있었으니 그것은 고향에 가족을 두고 홀로 부산에 내려와서 부산 여인과 정분을 맺고 새살림을 차렸던 유부남이었다. 우리는 결코 도덕적으로 그를 나무랄 수 없다. 부산 여인의 극진한 내조와 사랑으로 힘들고 쓰라린 피란시절을 잘 견디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환도라는 느닷없는 돌풍이 불어 닥쳐 사내는 혼돈 끝에 가족들 곁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부산 여인의 통 큰 양보가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사내는 이제 부산역을 떠나려 한다. 여인은 역까지 따라와 이별을 슬퍼하며 흐느낀다.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고 두 눈은 퉁퉁 부어올랐다. 홀로 남은 여인에게 사내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으리.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어/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
서울 가는 십이열차에 기대앉은 젊은 나그네/ 시름없이 내다보는 창밖에 등불이 존다/ 쓰라린 피난살이 지나고 보니/ 그래도 끊지 못할 순정 때문에 기적도 목이 메어/ 소리 높이 우는구나 이별의 부산정거장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유리창에 그려 보는 그 마음 안타까워라/ 고향에 가시거든 잊지를 말고/ 한두 자 봄소식을 전해주소서 몸부림치는 몸을/ 뿌리치고 떠나가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한 편의 연극… 시의 공백 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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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의 부산정거장’ SP음반. |
이것은 한 편의 완전한 시작품이다. 1950년대 한국시는 자기에게 맡겨진 시대적 책임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대중가요가 오히려 시의 공백을 대신했다. 작사가 유호는 원래 극작가였으므로 이 노래 가사를 만들 때 마치 한 편의 연극장면처럼 생생한 효과로 되살려내려 했다. 각 소절에서 활용된 작품의 소도구는 보슬비, 정거장, 기적, 피난살이, 판잣집, 설움, 부산사투리, 열차의 창문, 고향, 몸부림 따위의 친근한 생활정서와 사물들이다. 그것이 오히려 이별의 슬픔과 애절함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부산역 플랫폼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노라면 1950년대 초반, 이곳에서 들리던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와 이별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의 기막힌 이별 때문에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은 찢어졌으리라. 이 노래는 대중의 엄청난 사랑 속에 불후의 애창곡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형식으로 다양하게 활용돼 왔다. 노가바의 내용은 주로 격동기의 생활고, 가족갈등과 해체, 극심한 경제위기와 취업난, 부패관료에 대한 비판과 풍자 따위의 주제가 많았다. 여러 노가바 가운데 우리는 오늘 부드럽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며 긍정적 삶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가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곡조를 이 가사로 불러보는 것도 삶의 작은 즐거움 중의 하나이리라.
우리 인생 길지 않아요 명품으로 살아봅시다/ 남은 인생 나의 인생 멋지게 살아봅시다/ 한 많다 신세타령 하지를 말고/ 멋지게 사는 방법 찾아봅시다/ 인생은 즐겁습니다 여기저기 하하 호호호/ 내 나이가 정말 어때서//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멋지게들 살다가보세/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사는 건 매 한 가진데/ 한 많은 나이 탓은 우리가 왜 해/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뿐인데/ 인생은 길지 않아요 멋지게들 살아봅시다/ 우리네 멋진 인생을
시인·가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