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적인 자본에 희생된 시민
- 억압적 가부장제 모습 그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투쟁을 다룬 ‘밀양아리랑’(2014), 생탁 노동자 파업기 ‘깨어난 침묵’(2016),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일상을 그린 ‘소성리’(2017) 등으로 소외된 이들의 삶을 세상에 알려온 부산 대표 다큐멘터리 감독 박배일(39). 그가 이번에는 부산 사상과 그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기록한 장편 다큐 ‘사상’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선정됐다. 2011년 ‘나비와 바다’ 이후 BIFF에 5번째 초대된 박 감독을 영화의전당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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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 다큐멘터리 ‘사상’의 한 장면. BIFF 제공 |
“‘모래 위에 조성된 마을’이라는 뜻의 사상은 과거 낙동강을 중심으로 농업과 어업이 성행한 곳이에요. 이후에는 공업단지로서 지역 부흥을 이끌고, 관광업 성행에 발맞춰 공원에서 각종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현재는 4차 산업에 대비해 첨단산업단지를 조성 중이고요. 자본의 이동이 선명한 곳입니다. 자본이 휩쓸고 간 공간의 풍경,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카메라는 두 가장을 따라간다. 첫 번째 가장 ‘성희’는 사상구 모라동을 터전으로 삼아 성실한 노동자로 살아왔지만 산업재해를 당한 후 점차 쇠잔해진다. 두 번째 가장 ‘수영’은 2016년 철탑 농성 당시 ‘부산의 용산 사태’라 불릴 정도로 치열했던 만덕5지구 재개발 현장에서 주민공동체 대표를 맡아 마을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성희도 수영도 결국에는 자신의 거처에서 밀려나가고, 영화는 이들의 고된 삶이 어디에 토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종국에는 자본이 무엇을 무너뜨리고 세우는지, 가부장제가 만든 우울한 현실의 모습은 무엇인지 기록하며, 어떤 삶과 공동체가 필요한지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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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5회 BIFF 와이드앵글 진출작 ‘사상’을 연출한 박배일 감독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이원준 프리랜서 |
박 감독은 “한 마디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생각을 담은 작품이다. 자본은 노동을 지우고 공동체를 없애면서 건물을 부수고 짓는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다. 억압적이고 경쟁적인 가부장제는 자본이 이 같은 방식을 이어가도록 부추긴다. 이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사실 ‘성희’는 박 감독의 아버지다. 한 번도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그가 드디어 자전적 작품을 완성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사적 다큐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아버지의 자기 소개는 5분 안에 끝난다”고 웃으며 “언제나 폭력적인 자본주의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영화를 해왔다. 이 작품 역시 앞선 작품들의 연장선이다. 아버지에게서 관련된 면면을 발견해 영화로 풀어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사상’은 9년 만에 탄생했다. 중간 중간 시의성 있는 사건을 다룬 영화를 하게 되면서 완성이 늦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세상을 보는 박 감독의 눈이 달라졌고 영화도 그만큼 깊어졌다. “언제나 차기작이 뭐냐고 물으면 ‘사상’이었다. 그러나 밀양처럼 제가 당장 머물러야 할 자리가 계속 생기면서 완성이 미뤄졌다. 이전 작품에서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연대를 끌어낼까 고민했는데, 이 영화는 다르다. 세상을 진단하고 이를 바라보는 방식을 고백하면서 같이 사유하자고 대화를 거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박 감독은 “9년 동안 만든 작품인 만큼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다. 다른 영화제에서도 상영하고 자체 상영회도 열 계획”이라며 ‘사상’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