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 시작된 공자의 주유천하는 70여 나라를 거쳤다는 기록도 있지만 ‘사기’의 ‘공자세가’를 따져보면 예닐곱 나라에 그친다는 이견도 만만찮다. 하지만 30세 무렵부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공자는 평생 인치를 위한 구도의 여정을 이어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남긴 이야기가 많다. ‘가정맹어호’가 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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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일대기를 그림과 간단한 설명으로 표현한 ‘공자성적도’ 중 ‘태산문정’(泰山問政). 태산에서 정치를 묻는다는 의미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가혹한 정치의 실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공자와 제자 자로, 그리고 시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호랑이에게 잃은 가엾은 산골 아낙네가 등장한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제공 |
노나라 정치가 군주보다 힘쎈 가신들의 전횡으로 매우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를 응징하려던 군주 소공이 오히려 이웃 제나라로 쫓겨났다. 이를 지켜본 공자가 소공을 따라 가다 태산 근처 깊은 산속에서 겪은 일이다. 한 여인이 무덤을 세 개나 앞에 두고 울고 있었다. 공자가 자로를 시켜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기가 막혔다. 시아버지와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못된 정치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으로 ‘예기’(禮記)의 ‘단궁하’(檀弓下)편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줄인 ‘가정맹호’는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떠올리게 한다. 백성에게 여러 구실로 세금을 지독하게 거둬들이거나 재물을 억지로 빼앗는 일을 말한다. 백성이 불편한 정치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편한 정치적 현실은 뭘까. 바로 온나라를 둘로 쪼개고도 모자라 서로 원수 보듯하는 진영 논리 아닐까. ‘가정맹어호’가 아니라 ‘진영맹어호’라면 정치인의 잘못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