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던 지난 주말 한 배우의 부고를 들었다. 송재호. 건강하신 줄 알았는데 이미 1년 동안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백발에 사람 좋은 눈웃음, 치매 아내를 수발하는 옆집 할아버지, 공원에 산책 나온 노신사…. 그렇게 배우 송재호는 동네에서 마주칠 법한 편안함을 주는 배우였다.
‘국민 아버지’란 수식을 가진 배우가 몇 분 있지만, 송재호는 또 다른 푸근함의 대명사였다. 1980년대 청춘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이상아와 똑순이 김민희의 다정다감한 아버지로,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아들을 따라온 거짓말쟁이 여인을 따뜻하고 지혜롭게 대하는 마을 촌로의 아우라를 보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연기는 영화 ‘해운대’에서였다.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해운대를 개발하는 데 앞장서는 구청장이지만, 점차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비장한 죽음을 맞는 ‘억조’ 역할이었다.
평양이 고향인 송재호는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 와 부산에서 성장하고 동아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온, 부산에서 청춘을 보낸 배우였다. 1959년 부산 KBS 성우로 데뷔한 뒤 연기자가 되면서 상경하지만, 부산이란 토양에서 성장했기에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속 때밀이 창수와 같은 리얼한 70년대 청춘 군상을 표현할 감성이 생겨났으리라.
필자는 고인과 35년 전 인연을 맺었다. 10대 학창시절 내가 다니던 서울의 교회에는 유독 배우분이 많았는데 윤석화 한인수 송재호 선생님이 계셨다. PD, 기자, 작가 같은 방송인을 꿈꾸던 10대들에게 송재호 선생님은 토요일마다 직접 MBC 견학도 시켜주시고 방송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그리고 교회 ‘문학의 밤’사회를 맡은 나에게 MC와 아나운서 역할을 개인교습해주셨다. 고교 방송반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꿈에 다가가던 시절, 감사함을 표현하기도 전에 송재호 선생님은 교회를 옮기셨고 더는 뵐 수 없었다.
이제 소탈하게 웃음 짓는 영정사진을 보며 뒤늦게 감사 드린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던, 아버지 같던 편안한 미소와 연기, 감사했습니다.
동명대 외래교수·대중문화평론가